출판사 프시케의 숲. 아마 여러분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책을 여섯 권밖에 내지 않았고, 책을 낸 분야도 여러 군데로 흩어져 있거든요. 에세이, 역사, 과학, 그래픽노블, 심리학. 모두 다섯 개의 카테고리에서 독자들과 만났군요. 여섯 권이 저마다 다른 분야의 책이라...하하;;
잘 아는 지인분은 "내는 책마다 서점 엠디가 다 달랐겠다"며 웃기도 했습니다. 엠디란 "인터넷서점에서 출판사에서 책을 구입해 판매하는 일을 맡는 사람"(네이버 지식백과)으로, 보통 분야별로 담당자가 다릅니다. 그래서 아닌 게 아니라, 프시케의 숲에서는 책마다는 아니지만 퍽 다양한 엠디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엠디님들과는 다들 처음 만난 사이이지만, 다행히 프시케의 숲 책들을 좋게 봐주셔서 독자들에게는 소개가 잘된 편이었습니다. 인터넷서점에 가면 첫 화면에 '오늘의 책' '편집장의 선택'이라는 항목이 있는데요. 사이트 방문자들에게 가장 눈에 띄는 자리라, 모두들 자신의 책이 해당 자리에 소개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3~4일에 엄선된 4권만 채택되기 때문에 운이 많이 따라야 합니다. 일주일에 신간이 평균 900종 넘게 나오거든요.
프시케의 숲은 이제까지 세 권의 책이 '오늘의 책'에 선정되었습니다. 여섯 권 중의 세 권이면 꽤 확률이 높은 편이지요. '오늘의 책'은 엠디님들이 독자분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꼽은 책이라, 프시케의 숲을 운영하는 데 꽤 큰 응원과 지지가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프시케의 숲은 현재 두 가지 축으로 도서목록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묵직한 지식교양('출판의 지성화')
, 다른 하나는 그보다는 가벼운 대중교양('출판의 대중화').
전자의 축으로 발행한 것이 유발 하라리의 <대담한 작전>과 제니퍼 다우드나의 <크리스퍼가 온다>입니다. <대담한 작전>은 서구 중세의 역사에서 '특수작전'에 주목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묶은 책입니다. 저자가 필력이 있는 분이라 한편 한편의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습니다. 또한 서구 중세라는 배경이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죠.
<크리스퍼가 온다>는 이른바 '유전자가위'라는 생명공학의 첨단 기술의 연구 개발기입니다. 우리 DNA 염기쌍이 30억 개가 넘는데 그중의 표적 염기를 아주 정밀하게 삭제하거나 다른 유전자로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무슨 SF 같지 않나요? 그러나 매우 현실적인 기술로,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기술입니다.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심각한 윤리적 도전도 함의하고 있는 기술로, 단지 과학기술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철학적, 윤리적, 사회적 논의를 필요로 하는 주제이지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독서 성향이 하드한 편인데요. 예전에 출판사 경력을 묵직한 인문서로 시작하기도 했고, 제가 감동하는 책들은 하나같이 철학과 역사, 과학 분야의 학술적인 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인문 출판 편집자 경험에 비춰볼 때, 그런 책들은 대부분 독자들의 수가 아주 적고, 그래서 손해를 보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책 한 권을 내려면 적어도 2~3천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게 되는데, 손해가 누적되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죠.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을 하기 위해서는 아주 신중한 독자 분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프시케의 숲은 새로 시작하는 출판사이기 때문에, 실패하면 아주 타격이 크죠.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독자가 있을 것 같은 책을 정말정말 신중하게 선택해 <대담한 작전>과 <크리스퍼가 온다>를 발간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종류의 인문/과학 지식교양서들을 꾸준히 내고 싶습니다.
앞서 두 가지의 축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두 번째 축은, 조금 가볍게 볼 수 있는 대중교양서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어쩌면 괜찮은 나이>와 한종수 작가의 <서서울에 가면 우리는>, 그리고 너새니얼 브랜든의 <자존감이 바닥일 때 보는 책>입니다. '출판의 대중화'는 '출판의 지성화'만큼이나 제가 관심 있게 간직하고 있는 모토인데요. 워낙 독자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출판인으로서 꽤 의식이 되는 화두입니다. 교양 부문에서 대중적인 성과를 내기가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끈기 있게 시도해 출판의 저변을 넓혀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괜찮은 나이>는 기획 당시 '나이 듦' 그리고 '오십 대' 키워드에 독자군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선택한 책입니다. 주로 일본 작가들의 책들이 반응을 얻고 있어서 차별화를 위해 서구 쪽의 책을 찾아봤고, 첫 책이었던 터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저작권이 소멸된 작가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1962년 사망 이전의 작가는 저작권이 소멸되어 적용이 안 되니, 혹시 기획하시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헤르만 헤세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어쩌면 괜찮은 나이>가 발행되던 작년 10월에만도 신간 매대에 2~3종 놓여 있었을 정도니까요. 차별화를 위해 제가 취했던 전략은 제목을 요즘의 느낌으로 가고, 표지를 동네서점에 어울릴 듯하게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헤세와 연관 있는 국내 작가 두 분에게서 추천사를 받았습니다. 판매가 아주 잘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1년이 조금 안 된 현재 4쇄까지 간 상태입니다.
<자존감이 바닥일 때 보는 책>은 제가 독자로서 접한 <자존감의 여섯 기둥>의 내용이 좋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존감'이라는 키워드는 이미 확인된 거대한 독자군이 있기는 하지만, 기존에 자리 잡은 도서들이 많아서 런칭할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직접적이면서 비교적 자극적이게 가는 방향으로 했고, 그러면서도 제목의 강한 느낌을 중화하기 위해(텍스트는 굉장히 점잖거든요) 표지 일러스트를 아주 평온한 느낌으로 골랐습니다. 언론 보도가 되기 어려운 성격의 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홍보 방안이 아주 막연했습니다만, 트위터를 한번 타고 또 일러스트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소개되면서, 시장에서 아주 외면받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프시케의 숲에서 '대중화'를 의식하고 낸 책보다 '지성화'를 의식하고 낸 책, 즉 <대담한 작전>과 <크리스퍼가 온다>가 독자들의 선택을 더 많이 받았다는 점입니다. 프시케의 숲은 대중 독자에 대한 이해와 접근에서 아직 빈구석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미 벌려놓은 분야가 많은데, 프시케의 숲 다음 책은 '소설'입니다. 책 일곱 권으로 종합출판의 위용을 갖추는...쿨럭;; 이라기보다는 사실은 '대중화'의 한 방편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그래픽노블 <빌어먹을 세상 따위>도 그런 맥락에서 기획된 것이고요. 아무래도 소규모 출판사이다 보니, 늘 홍보 방안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원 소스 멀티 유즈'되는 콘텐츠를 기획해보고 있는데요. <빌어먹을 세상 따위>는 넷플릭스에서 영상 서비스되는 것의 원작이고, 곧 발간될 소설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작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의 원작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책이 원작인 영상물이 허다하게 있는데요, 제 나름으로 출판 독자와 겹치는 영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골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직장에서 편집자 10년을 하다가 출판사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뒤에도 출판사가 원활하게 지속되고 있을까? 장담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만 보면 이 작은 모험을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출판이 더 재미있어졌거든요. 예전에 직장에서는 주로 편집만 담당했었는데, 지금은 기획과 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꽤 만족감을 줍니다. 왜 이 업무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명쾌해진다고 할까요. 많은 분들이 저마다의 모험을 떠나 출판계에 신선한 활기가 돌길 바랍니다.
"이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은 스토리펀딩의 "모험을 시작한 작은 책들"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작은출판 컨퍼런스의 참여권은 펀딩을 통해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