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북스에 향기를 주는 이들
지난 월요일 페미니즘 글쓰기 모임인 ‘불확실한 글쓰기’ 시간에 이후북스 초단골(초단위로 책방에 방문해 초단골임)이 이렇게 자기 소개를 했다.
“저는 지현서라고 하고요. 여기 단골인데 이후북스에 뼈를 묻으려고요.”
사람들은 크게 웃었는데 그 중에 가장 크게 웃은 건 나였다. 이후북스의 주인장인 나도 책방에 뼈를 묻을 생각이 없는데 아니 손님이 책방에 뼈를 묻는다니?! (살짝 소름 돋을 수도 있지만) 나만큼이나 책방을 애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단골 지현서 님은 올여름 <에어컨 없이 여름날 뻔>이라는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다. 그 책은 에어컨이 필요 없어진 가을에 강제 절판되었다. 낮에 공무원 신분으로 일하는 그녀는 퇴근 후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으로 책방에 온다. 독서모임에도 참여하고 소설 쓰는 모임에도 참여하고 방금 말한 불확실한 글쓰기에도 참여하고 지난 수요일 북토크에도 참여했다. (오는 날 보다 안 오는 날을 꼽는 게 더 쉽겠네.) 지현서 님은 평범한(?) 공무원으로 책방을 알게 되어 책까지 만들게 되었다. 아니 책을 내고 싶었는데 책방을 알게 되어 마침내 낸 것이기도 하다. 그게 꿈이든 잠깐의 일탈이든 새로이 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 일상에 활력을 준다. 그런 활력은 이후북스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글은 책방에 대한 글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책을 내는 이중 신분으로 사는 작가 중 서귤 님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책 <고양이의 크기>로 고양이와 집사들의 눈물, 콧물을 쏙 빼는 이야기를 쓰더니, 두 번째 책 <책 낸 자>로 독립출판을 꿈꾸는 이들에게 강제로 인생책을 만들어버렸다. 두 가지 일을 하며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책 낸 자>는 독립출판의 시작과 과정, 그 안의 내밀한 고민을 네 컷 만화로 전달하면서 많은 이들을 공감을 이끌어 냈다. 서귤은 이후북스 제3의 직원이라는 얘길 들을 정도로 자주 출몰한다. 혹자는 서귤 님이 책방에서 움직이기는 하냐며 의문을 품는데 그만큼 책방에 앉아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하는 일은 에이드 주문, 커피 마신 후 ‘맛있다’ 세 번 외치기, 책방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곡 신청하기, 저녁 메뉴 정하기 등이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신청곡을 외치는 서귤 님이지만 우리가 공동으로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데 바로 이내. 이내 님은 부산에 산다. 근데 이후북스 소속 가수라고 할 만큼 또 이후북스에 자주 출동한다. 노래도 잘하지만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해서 내가 가만히 두질 않는다. 글쓰기 워크숍 진행도 맡기고 책도 자꾸 내자고 한다. 이내 님은 거절하지 않는다. 포기를 모르는 인간 정대만이 있다면 책방에는 거절을 모르는 ‘이내’가 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한쪽에는 기타를 들고 부산과 서울을 오고 가지만 작은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불씨를 키우는 능력이 있으니까 건수만 생기면 움직인다. 글 쓰고 노래하는 이내는 최근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출판사는 이후진프레스. (이후북스와 이름이 비슷하죠? 네. 이후진프레스는 이후북스가 만든 출판사입니다.)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의 표지는 우드파크픽처북스의 그림 작가 미바가 그렸다. 우드파크픽처북스는 조쉬와 미바 두 명이 만드는 출판사인데 <다시 봄 그리고 벤>, <셀린 & 엘라>라는 두 권의 그래픽노블을 발간했다. 둘 다 따뜻한 색감, 아름다운 그림,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스토리텔링과 그림 실력이 뛰어난 이 둘이 가장 잘하는 건 ‘간식 사주기’이다. 아니 ‘간식 퍼나르기’. 이 둘은 참으로 선량한데 책방에 빈손으로 오는 일이 거의 없다. 어디서나 만났다하면 먹을 것을 준다. 그것이 언제나 너무 달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지만 둘을 만나면 당이 떨어질 일은 없다. 어쨌든 태양처럼 노랗고 붉은 색을 사람으로 만들면 미바와 조쉬가 될 것이다.
(저는 이후북스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는 중입니다.)
지난 여름 미바와 같이 한강공원을 걸으며 책 파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우리 옆에는 우세계라는 신묘한 제작자도 같이 있었다. 우세계. 나는 올해의 독립출판제작자로 우세계 님을 꼽고 싶다. <달밤책장>,<유감의 책방>, <캐서린 666>을 올해 발간했다.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소름 돋도록 이상하고도 사랑스러운 책이다. 최근 출간된 <캐서린666>은 좀비 잡지이다. 좀비들이 읽는 잡지. 진짜 좀비들 말이다. 우세계 님은 이후북스에서 잠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주 이틀 근무였는데 근무 중 포스터 작업을 맡기면 근무 시간이 끝나고 작업물을 줬다. 누가 이렇게 일 열심히 하래?! 하나를 하라고 하면 열을 해오는 직원이었다. 그만둔 지금도 북토크 등의 행사가 있으면 자리 정리, 설거지 등을 척척 한다. 우윳빛깔 우세계 님이 안정된 수익을 내서 계속 재미난 책들 만들게 해야되는데...
최근 우세계 님은 조금 의기소침하다. 큰 북마켓에 셀러로 지원했다가 연달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북마켓에 같이 지원했다가 떨어진 제작자들이 몇 있는데 올해 <평양냉면>이라는 희대의 맛집 에세이를 쓴 원재희 님과 제주도 여행 에세이 <탐라일기>와 <제주도는 가고 싶고 운전은 못 하고>를 쓴 시와 님이다.
원재희 님은 이후북스에서 북바인딩 원데이 수업을 하기도 했고 내가 책방을 비웠을 때 며칠 맡아서 봐주기도 했다. 수업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을 하니 평양냉면을 책이 아니라 얼음 동동 띄워서 가져다드리고 싶은데 동그란 얼굴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붉게 타올라도 원재희 님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원재희 님한테 책방을 맡기면 내가 있었을 때보다 매출이 훨씬 높은데 도대체 그 비결은 무엇일까? 책방을 원재희 님에게 맡겨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다.
북바인딩 수업하면 시와 님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바늘구멍만큼 디테일한 수업으로 정평이 났다. 세상 꼼꼼해서 한 가닥 실밥의 움직임까지 허투루 보지 않는다. 참고로 나도 북바인딩 수업을 받았는데 너무 잘 만들어서 세상이 깜짝 놀랐다지. 시와 님은 도대체 이후북스에 무슨 애정이 있는지 다른 곳에서는 수업 제안이 들어와도 이후북스 아니면 안 한다고 한다. 아니 돈 많이 주면 다 하지 왜 안 하세요? 이쯤 되면 나는 이후북스 접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계속 이후북스에 대해 얘기하는 중입니다.)
워크숍 얘기가 나왔으니 독립출판 글쓰기를 또 말해보자. 이후북스에서 가장 역사 깊은 워크숍이다. <영향력>이라는 문예지를 만드는 은미향 님과 이내 님, 임시제본소를 운영하는 강민선 님 세 분이 진행을 맡아주고 계신다. 은미향 님과 강민선 님은 빼어난 글쓰기를 자랑하는 분이다. <영향력>은 발행 10호를 기념했다. 키친테이블라이팅을 표방하여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게 자극하는 <영향력>은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단비 같은 곳이다. 강민선 님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로 올해 독립출판에 큰 획을 그었다. 이후에 <월요일 휴무>, <시간의 주름>, <여름 특집>, <가을 특집> 등 올해만 해도 스스로 만든 책이 5종이 넘는다. 쉼 없이 글을 쓰는데 그 글이 모두 좋다는 건 더 놀랍다. 난 이 두 분의 성실함과 노력을 매우 높이 산다.
그러고보니 이 글의 시작은 불확실한 글쓰기였지. 불확실한 글쓰기는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로 대한민국 출판계를 강타한 홍승은 님이 진행하신다. 이번 기수는 승은 님과 <붉은 선>의 승희 님이 같이 참여하는데 난 두 분을 보니 자매가 뿜어낼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궁금해졌고 그것을 책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두 분도 흔쾌히 응하여 세상 귀한 작가 두 분과 작업을 하게 되었다. 두 분은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다투시는 것 같은데 그래도 책방에 올 때면 다정하다. 안심이다. 싸우면 어떠랴 나도 동업자와 맨날 싸운다.
동업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동업자는 오행 중 화(火) 기운을 가졌다. 동업자가 불의 기운을 가진 건 이번에 승희 님이 진행하는 사주명리학 2주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예정에 없는 수업이었는데 승희 님이 사주명리학에 대한 재미난 얘기들을 들려주어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살펴보니 또 낯설지가 않다. 이미 책방에서 다른 워크숍을 듣고 있는 000님 ㅁㅁㅁ님... 잠깐 이렇게 계속 적으면 이 글은 언제 끝날 것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제 온 손님과 내일 올 손님도 얘기할 수 있다. 책방에 오는 이들과 만나 자꾸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의 책방이다. 이들 없이 이후북스를 얘기할 수가 없다.
루쉰의 조화석습(朝花夕拾).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는 떨어진 꽃을 많은 이들이 바라보고 난 후 저녁에 줍는다는 말이다. 나대로 해석하고 싶다. 아침에 떨어진 꽃이 누군가의 발에 밟혀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주워 더 멀리 알리고 싶다. 책방에 더 많은 꽃잎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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