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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드리더 Oct 17. 2018

주인이 되고
비로소 책이 보이는 지금

엠프티폴더스 김소정



기어코 책방을 열었습니다



좋아서 모아놓은 곳, 엠프티폴더스(empty folders)


2018년 봄, 관악구 행운동에 책방을 열었습니다. 책방이라기엔 너무 낯선 empty folders. 이름 그대로 '빈폴더'라는 뜻입니다. 발음이 어렵기에 줄여서 엠폴이란 애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어떤 책방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문득 제 방 책장을 보았는데 온통 사전, 도감이나 모음집, 아카이브 북과 인터뷰집, 매거진과 시리즈와 같은 책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왕 책방을 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이런 책들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한참 동안 책을 전부 끄집어내어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문득 ‘작가들은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모으고, 또 얼마나 많은 문장들을 모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모아놓은 거겠지 뭐.' 하고 혼자 툭 내뱉었습니다. 


그렇게 ‘좋아서 모아놓은 곳, 엠프티폴더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관심사가 생겼을 때 컴퓨터 새 폴더를 만들어 관련 정보를 모으고, 새로운 노트를 사서 글을 쓰고 사진을 붙이고 그림을 그려 넣듯. 이 공간이 앞으로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질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책방에 오신 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취향이나 지식이 가득한 이곳에서 본인도 몰랐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책방을 열게 되었나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제가 책방을 연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인 '어떻게 책방을 열게 되었나요?', '왜 하필 책방이었나요?' 그리고 '책방 주인이 되고 나니 어떤가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해보려합니다. 저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약 4개월 정도 오픈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때 정말 국내에 출판된 책방과 책에 대한 책들을 거의 다 읽어보았습니다. 책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들과 책방 주인 인터뷰 등을 읽으며 책방을 꿈꿔 왔습니다. 여름의숲 출판사의 <앞으로의 책방>과 민음사의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들> 그리고 출판사 하루의 <책의 역습>이라는 책으로부터 소중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습니다.



그 후, 5평 정도 되는 가게 임대 계약을 하고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습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며 고르고, 공사도 직접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습니다. 로고를 만들어 간판 대신 붙이고 화분도 들여놓으며 하나 둘 꾸려나갔습니다. 오픈 전날까지 공사를 했지만 다행히 맞춘 가구들이 제시간에 도착했고, 제법 그럴싸하게 공간이 꾸려졌습니다. 그런데 문득 빈 책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일부터 당장 어떤 책을 팔아야 되지?'라는 걱정이 뒤늦게 몰려왔습니다. 이름 따라간다고 정말 빈 폴더처럼 텅 비어있는 공간을 열고 만 것입니다. 


서둘러 오픈이 아닌 ‘가오픈’으로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코 책 구입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픈 한 달 전부터 출판물 유통업체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전화를 하고 책을 대량 구매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후까지도 거래를 시작하자는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책방인데 소비자와 동일하게 책을 구매해서 동일한 가격으로 되팔 수는 없다며 버티고 버텼습니다. 가오픈이었던 한 달 동안 정말 ‘책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꼭 다시 들러주세요.’란 인사를 줄줄 읊으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놓을 자리가 없어 걱정이라는 행복한 푸념도 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출판사와 직접 거래를 하고 있고, 출판물 유통업체와도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독립출판 작가에게 책을 보내달라는 입고 요청을 하기도 하고 또 작가가 책방에게 직접 입고 제안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한 권 두 권 권종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가오픈 1개월 후인 6월 8일에 정식으로 책방 오픈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겠는, 폭풍 같았던 준비 기간


'책방 오픈'이라는 저 네 글자를 얼마나 쓰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왜 하필 책방이었나요?



사실 저는 1990년대 ‘글사랑’이라는 작은 책 대여점 집 딸이었습니다. 소설부터 여성 잡지, 그림책, 그리고 만화책까지. 지금 저의 책방보다 공간은 작았지만, 초등학생이던 제겐 세상에서 제일 큰 도서관이었습니다. 저의 유년시절은 모두 이 엄마의 작은 책방에 안에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제가 ‘책 아저씨’ 라고 불렀던 유통업체 직원이 신간 도서를 봉고차에 싣고 왔습니다. 당시 저의 담당업무는 그 많은 신간들 중 엄마가 고른 책들의 제목을 컴퓨터에 등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견출지에 일련번호를 적고, 책에 붙이는 것까지가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혼자 가게를 보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물론 손님보다는 만화책을 보느라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책을 훔쳐 가도 전혀 몰랐지만 말입니다. 대학생 때도 책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물론 그때만 해도 매일 새로 입고된 도서들을 지금도 엑셀 파일에 기입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렇듯 어쩌면 책보다 ‘책이 있는 공간’이 저에게는 더 당연하고 익숙했습니다. 아마 저처럼 책 대여점이나 만화방, 도서관에서의 추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왜 카페가 아니고 책방일 수밖에 없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펼쳐놓은 것 처럼 보이는 저, 서가에 '월간서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기획자인 제게 책방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전 회사에서 저는 글쓰기와 인문학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와 함께 수업을 만들거나 혹은 수업 내용을 책으로 엮는 일을 했습니다. 책은 제게 새로운 기획의 영감을 주는 재료이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책과 사람에 엉켜 5년 동안 일만 하다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딱! 가게 보증금을 내고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만큼의 퇴직금이 들어왔습니다. 책방을 내기 위해 퇴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퇴사를 하니 책방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귀하디 귀한 퇴직금으로 저는 5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책과 함께 제가 하고 싶은 기획들을 맘껏 하고있습니다. 그 중, 매월 주제를 정해 추천도서와 관련 작품을 소개하는 '월간서가(monthly bookshelf)'라는 큐레이션 서가 기획을 가장 열심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http://bit.ly/monthlybookshelf





6월 <방점> 

- 작은 가게에 관한 주목할 만한 이야기들
- 수수진 작가의 '수수한 드로잉 클럽' 오픈


7월 <그해, 여름 책방> 

- 여름 책 그리고 여름 영화

- '여름밤 여름 영화' 상영회와 음감회


8월 <너와 나의 아이돌> 

- 우리가 아이돌을 이야기할 때

- 아이들을 소재로 한 일러스트/디자인 작품 전시

  

9월 <다시, 모라토리움> 

- 유예하는 우리를 위하여

- 'empty track' 인디밴드 모놀로그 공연

- 채은 지용 작가의 '온전히 혼자가 되는 순간' 원데이 클래스


10월 <안녕, 낯선 친구들> 

- 어느 날 요괴를 만난다면

- 돌곶이 요괴협회 북토크 '요괴, 좋아하세요?'




어떤 분들은 '책을 파는 것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책 한 권을 더 큰 주제로 생각해보고, 수업이나 행사 등의 모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책을 좀 더 풍성하게 읽고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방 주인이 된 덕분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획자가 책방을 열어 이런 책방, 엠프티폴더스가 생겼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채로운 직업만큼 다양한 책방 주인이, 새로운 책방이 잔뜩 생기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곰곰이 되짚어보며 본인만이 열 수 있는 책방을 열길, 힘껏 응원합니다. 



책방 주인이 되고나니 어떤가요?



좋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아침에 눈을 뜨고, 책방으로 출근하는 매일이 행복합니다. 아마 아직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초보 책방 지기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마냥 좋다고만 말씀드릴 수는 없기에, 책방 운영의 쓴맛은커녕 단맛도 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단짠 느낀 점과 가벼운 팁을 (감히) 전해드리려 합니다.



회사를 나오고 나니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고, 결국엔 남의 도움이 필요한 일들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책의해' 행사나 '서울 서점인 주간', 그리고 이 '작은 책 프로젝트'처럼 보이진 않지만 많은 이들이 책을 중심으로 같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엠프티폴더스를 비롯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다섯 책방이 함께 만든 '관악구 동네 책방 모임'이 제게 큰 힘이 되어줍니다. 공간에 혼자 있다고 해서 꼭 '혼자'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책방 주인들이 그렇듯 저도 인스타그램의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SNS를 운영하며 제가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하나는 SNS도 엄연히 독자가 있는 글쓰기라는 것입니다. 책방이 올리는 소식과 사진, 그리고 책방 주인이 쓰는 글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것을 보고 싶어 하는지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가며 피드를 올리고 있습니다. 하루 하나씩의 글과 사진을 올릴 때에도 '엠폴 다운' 것들을 올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좋아요 하트 하나에 웃고, 누가 보아도 홍보인 댓글에 우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매일 낯선 분들과 작은 공간에 있다 보니 처음엔 무척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금세 행복해집니다. 책방에서 만난 분들에게 정말 책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굳이 짠맛을 찾자면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 일을 못 끝내고 야근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손님이 더 많이 와서 더 일을 못하고 싶으니, 엠프티폴더스에 마구마구 와주시길 바랍니다!



글을 마무리 하며,




모두가 본인의 취향이나 지식, 글과 작품들을 모으며 저마다의 빈칸을 채워가는 것처럼.




어쩌면 책도, 단어와 문장이 모여 페이지가 되고 한 장 한 장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방도 결국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 전달하는 사람들, 그리고 읽는 사람들이 모여 비로소 책방을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책과 사람이 있는 곳, 작은 동네 책방을 많이 찾아주세요.


덧붙여, 아직 책방 주인이라고 소개하기도 부끄러운 제게 이렇게 '작은 책의 모험 프로젝트'의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기어코 책방을 어찌 되었던 열고 말았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열심히 배워서 ‘마침내’ 책방을 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한 번 버텨보겠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곁을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은 스토리펀딩의 "모험을 시작한 작은 책들"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작은 출판 컨퍼런스의 내용을 정리한 단행본은 스토리펀딩을 통해 예약 구매 가능합니다. (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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