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임신중에 가장 힘들었던것은 입덧도, 배가무거워지면서 심해지는 요통도, 먹는것도, 숨쉬는 것도 조심해야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가장 절망적이게 만든건 매일 매일을 똑같이 살아가는 시계같은 일상이었다. 숨쉬는 것도 힘든 임신 생활(?) 덕에 작은 일탈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시계추같은 일상이 너무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회사에 가서 일을하고 퇴근 후 밥먹고 씻고 골아떨어지고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똑같은 일상. 가끔 기분전환으로 회사사람이나 친구들을 만나 급 맥주를 하거나, 심야 영화를 보고 늦게까지 놀거나 갑자기 뭔가를 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그 전엔 생각없이 하던 일들이 이젠 제법 많은 고민을 하게되었다. 결국 피곤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을때가 많았다. 임신 막달에 회사 송년파티가 있었다. 모두가 와인에 고기를 씹고, 뜯고 맛보던 때, 눈이 많이와 넘어질까 조심조심 걸어 파티장에 도착해 지쳐앉아있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난다. 거기서 내가 했던말을 동료는 아직도 얘기하곤한다. “사방이 물인데도 못먹는 바다위를 표류하는 것 같아요” 모두가 술을 먹을때 만삭인 내가 했던 말이란다. 사실 임신 기간 내내 내 심정이 그랬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을 두번 세번 생각해야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매일같이 중얼거렸다. “애만 낳아봐라! 다 해줄테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게되니 더 하드코어한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유수유덕에 먹는 것은 더욱 조심하게 되었고, 먹고, 자고, 싸는 본능적인 것조차 내맘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매일이 고문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먹어야하고, 같은 시간에 자고, 씻겨야 했다. 임신때의 일상이 느슨하게 몇 시간 단위로 되어있는 엉성한 시계추였다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초단위로 쪼개져있는 시계추의 세계에 살게된 느낌이었다.
매일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피곤이 날숨처럼 나갔다가 들숨처럼 들어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가장 큰 소원은 일주일중 단 하루 만이라도 늦잠을 자보는 것이었다. 내가 몸이 아파도, 내가 집안일에 치여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아이는 시계처럼 제시간에 일어나서 나를 찾았다. 새벽에도 긴급호출 하는 날이 허다했다.
급 치맥을 하러 모이는 친구들,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주말엔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노닥노닥 거리는 사람들, 나도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들인데 갑자기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왜 난 못하지?, 왜? 왜?” 숨쉬듯이 한숨을 쉬는 날들이었다.
아이가 조금 자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나 자신을 힘들게 했던건 마음의 정착을 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잃어버린 모든 것에대한 포기. 잃은 만큼 얻게된 새로운 것들에 대한 적응.
아이를 낳고 일년 6개월이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조금 마음의 정착을 하게된 것 같다. 나의 가족에 대한 책임감,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기위한 노력, 그러면서 조금씩도 돌봐야하는 나 자신.
내 마음이 살아야할 이 곳에 나는 이제 길게 머무를 준비를 한다. 길게 살 집이 생기면 제법 좋은 의자도 하나 사고, 감촉이 좋은 베겟보도 구비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이곳에 꽤 오래 머물 준비를 시작했다. 마음에 정확한 시계를 하나 놓았다. 시계추의 째깍소리를 음악처럼 흥얼거린다. 매일 봐도 매일 반가워해주는 나의 아이, 남편에게 시계처럼 정확하고 시계처럼 믿을만한 마음을 만들고 있다.
나는 지금 이 곳에 더 오래, 더 단단하게 머물기위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