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번호 5. 루게릭병 남편과 아내의 사랑
구급차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자택에서 진료를 받는 병원으로 가길 원한다는 전화를 받고 언제나처럼 출동을 나갔다.
주택가 초록색 녹슨 철문, 환자분은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집밖을 나오셨다.
50대 남성의 환자분은 마르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기 불편한 상태로 아내로 보이는 보호자와 함께 계셨다.
환자와 보호자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구급대원과 내가 환자분을 부축하여 구급차에 탔다.
구급차는 곧 도로위를 달렸고 환자분에게 모니터기계를 연결하고 나서, 출동기록지를 작성하기 위해 환자분의 성함과 주소 등 인적사항을 물었다.
“어디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가시는 거세요?”
환자분의 주 질환명을 물어보자 보호자분이 작고 가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루게릭병이요”
루게릭 질환은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은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근력 약화 및 근위축이 특징인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환이다.
사지의 근력 약화와 근위축, 사지마비, 언어장애, 호흡기능 저하로 말미암아 수년 내에 사망하는 만성 퇴행성 질환이다.
초기에는 손∙팔의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 경우와 어눌한 말투∙삼킴 곤란부터 나타났다가 병이 진행하게 되면 전신근육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되며 환자의 약 50%가 3~4년 내에 사망한다.
간호학과 학생시절, 전공서적의 루게릭은 팔,다리 근육을 못 쓰게 되다가 호흡근도 위축되어 숨도 쉬지 못하는 무서운 질환이라 생각했었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배우 김명민이 주인공으로 루게릭병 환자를 뛰어나게 연기해 실제 환자처럼 뼈밖에 안남을 정도로 극심하게 빼고, 사지를 쓰지못하는 장면을 감명 깊게 보았었다.
요즘 sns를 통해 많이들 하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과 기부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머리에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이 활동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루게릭병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
병원을 가는 내내 환자분은 보호자인 아내분과 손을 꼭 잡고 계셨다.
두 분의 놓지않고 꼭 잡고 있는 손을 보며 환자분의 사지육신은 점점 마비되는 무서운 질환을 앓고 있지만 두 분을 서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강해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도착하여 휠체어를 타고 진료받으러 들어가시는 두분의 모습을 보고 사무실로 복귀하였다.
그 일이 있고 5개월 지나 두분에 대한 내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 갈 때 쯤 언제나처럼 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원한다는 출동전화를 받았다.
자주 출동을 나가는 2차급 병원의 응급실 안에 들어가자 눈에 익은 보호자가 있었다.
먼저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는 분은 루게릭 병 환자의 아내였다.
“안녕하셨어요? 저희 남편이 오늘 숨쉬기 힘들다고 해서 다니던 병원에 원장님과 통화해서 그 쪽으로 가려구요.”
호흡곤란으로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는 환자분은 전에 만났을 때 보다 더 마르고 얼굴이 까맣고 안색도 좋지 않았다.
병원 이송을 위해 구급차 이동침대에 눕혀 드리려 하자 환자가 다리에 힘이 없고 팔도 겨우 들고 움직일 수 있으니 들것을 이용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보호자분께서 말씀하셨다.
처음 뵜을때는 다소 힘은 드셨지만 직접 걸어서 구급차를 탔는데 이제 팔,다리 근육이 많이 마비 되어 움직이기 힘들어지셨다는 얘기를 듣자 안타까웠다.
가는 동안 환자분이 가래를 쉽게 뱉을 수 있도록 가슴을 두드려 드리고, 산소포화도를 계속 체크하며 산소량을 변경하기도 했다.
구급차 뒤 보호자가 환자에게 말을 걸자 환자는 겨우 내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호자는 나에게 말했다.
“남편이 점점 갈수록 약해져서 내가 강해져야 하는데... 괜찮다 싶다가도 한번씩 힘드네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눈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환자분의 질환이 점점 나빠질수록 보호자분의 몸과 마음의 짐이 무거워지고 있으시라.
얼마쯤 더 갔을까 병원에 도착하였고 보호자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다음에 보게 될 때는 남편이 좀더 건강해져있기를 기도해줘요.”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럼요”
첫 번째 출동 때 보다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는 루게릭환자분과 보호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두분의 마음에 위안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요양병원에서 병원으로 이송을 원한다는 출동전화. 환자, 보호자분과 세 번째 만남이였다.
허름한 건물의 요양병원 중환자실로 들어가자 환자분은 더 깡 마른 뼈밖에 없는 몸으로 자가호흡이 되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하고 계셨고 보호자분도 핼쓱해진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집에서는 힘들어져 한달 전에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나도 병원 밖을 못나갔더니 얼굴 꼴이 말이 아니죠?”
보호자분은 나에게 살짝 미소를 띄우며 말씀하셨다.
“아닙니다.”
내가 미소로 대답을 하자 보호자는 빙그레 웃으신다.
“남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인공호흡기를 해야해요. 이동형 인공호흡기를 갖고 구급차에 타야하는데 무겁고 커요. 우리 선생님 힘들게 해서 내가 미안하네요.”
“아닙니다. 저희가 당연히 하는 일인데요.”
구급차 안에 부피가 큰 이동형 인공호흡기를 넣어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키고, 나는 의료진 의자에 다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지만 온몸을 꾸겨 탔다.
보호자분은 구급차 뒤 공간, 큰 병원 입원을 위한 짐과 이동형 인공호흡기 등으로 보호자분이 앉기에는 턱없이 좁은것을 확인하고 보조석에 앉으셨다.
가는 내내 뒤돌아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보호자를 보며 두분의 사랑과 보호자의 헌신이 존경스러웠다. 부디 두분 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몸과 마음의 안정이 오길 간절히 바랬다.
병원에 도착하여 환자분을 침대에 옮겨드리고 나오는 우리의 손을 보호자분이 꼭 잡았다.
"정말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진심이 담겨져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 손을 잡은 보호자의 손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마지막으로 두 분을 뵌지 1년이 지났다.
두 분은 현재 어느 병원에 계실지 아니 환자분은 아직 살아계실지 알 수 없다.
사실 보호자분께서 거신 병원 진료를 위해 이송을 원한다는 출동 전화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환자분이 아직 살아계시고 보호자분이 옆에서 손을 꼭 잡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호자의 사랑과 헌신이 환자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지 옆에서 볼 수 있어 감사했다.
두 분 모두 평안이 있시길 마음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