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스스로의 힘으로 땀 흘려 결과를 만들 때 느끼는 감정이 있다. 바로 만족이다. 유명 디자인의 옷, 유명 관광지, 멋지고 값비싼 차, 넓은 집 같은 소유에서는 그 만족을 쉽게 얻지 못한다. 잠시나마 작가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아도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반면, 땀과 숨으로 만든 결과는 다르다. 달리기는 그걸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사실은 내 속도는 느리고, 버틸 수 있는 거리는 짧다는 사실이다. 머릿속의 기대와 실제 몸의 반응은 어긋난다.
앞서가는 등은 늘 많다. 누군가는 저만치 가 있고, 누군가는 내 앞에서 천천히 멀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내 등을 바라보며 따라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걸 확인하는 일에 점점 의미가 없어지는 것도 달리는 순간이다. 속도와 순서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나만의 리듬을 잃지 않는 일이라는 걸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안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숨을 쉬느라 바쁘다. 내 시선 또한 내 발과 호흡에 대부분 머무른다. 그 사이 조용한 틈이 생기면 그때가 러너스 하이구간인 셈이다.
다리에 모여드는 뜨거움과 어디쯤 가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나는 그저 조금씩 앞으로 나갈 뿐이다.
그렇게 몇 번의 호흡을 더 지나고 나면
문득, 이 모든 걸 이어주는 건 언제나 똑같은 단순한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따라오지 않아도,
생각만큼 빠르지 않아도 그냥 끝까지 가보고 싶은 그 마음 하나. 그게 나를 계속 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