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개인 SNS에 정리해 올리는 일이 취미가 됐다.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기본 두세 시간은 붙잡고 있어야 끝날 수 있었다. 노력이 반복되면 실력이 된다고, 이제는 큰 힘 들이지 않고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됐다. 책을 도중 스마트폰의 노트 기능을 열어 정리한다던가, 첫 문장을 써놓은 뒤 비공개로 전환해 놓고는 중간중간 초안을 열어 내용을 수정하는, ‘나만의 비법’을 터득한 덕분이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시작한 일명 ‘독서 일기’는 이제 브런치 이야기로 옮겨갔다. SNS 고유의 특성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 1위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경우 대부분 사진이 중심이 되었고,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엔 사진과 정보 전달 성격을 가진 내용의 글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독서 일기, 서평과 수필을 쓰는 나와는 결이 다를 수밖에. 그러다 우연히 카카오톡 채팅 목록 제일 상단에서 깜박이는 광고 하나를 봤다. 브런치 스토리였다.
3년을 도전했다. 매번 씁쓸한 결과만 받았다. 작가 신청서를 내고 회신 메일을 기다리는 시간은 수능 시험성적 결과 발표보다 더 떨렸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서일까, 아니면 그동안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서였을까. 무슨 이유든 상관없었다. 신은 결국 내 손을 들어 줬으니까.
합격 메일을 확인하고 곧바로 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쓰다가 멈춘 첫 책의 초고, 일기, 책의 서평 등. 때로는‘내가 이런 글을 썼었나?’ 싶을 정도로 오글거리는 내용도 있었다. 세상 모든 불만과 불평을 혼자 다 하는 사람이 나였지만, 글쓰기를 통해 삶을 스스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문장을 다시 읽었을 땐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러웠다.
이어 블로그에 소식을 올려뒀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내 블로그를 방문한 분이 꽤 있었나 보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분들이 축하한다는 답글을 달아 주셨다. 가입하고 제대로 글을 올리지 못한 글쓰기 카페에도 사실을 알렸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카페 회원 중에서는 이미 그곳에서 활동 중인분들이 많이 있었다.
글쓰기 카페와 브런치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세 곳을 수시로 접속했다. 매일 들어가다시피 하는 세 곳에서는 늘 다른 작가분들의 출간 소식과 서평단 모집에 선발되어 인증하는 기록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건 ‘서평단 모집’ 글이었다.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책을 선물로 받아 정해진 기간 읽고 개인 SNS 및 지정된 사이트 (출판사 홈페이지, 주요 인터넷 서점)에 서평과 검토를 올리는 일이었다. 책을 읽고 감상을 쓰는 일과는 달랐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읽은 후의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Review까지 함께 올리는, 일종의 도서 홍보 판매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가 잘못된 정보를 올리는 날에는 작가에게 도움은커녕 나쁜 이미지만 심어줄 수도 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실력이 중요했다.
특히 주기적으로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에는 관심이 더 갔다. 내용이 궁금해 자세히 읽어봤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마치 오래도록 만나온 사이인 듯 잘 알고,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다른 유사한 내용의 게시물도 찾아봤다. 신기하건 전업으로 작가를 하는 사람보다는 회사원, 주부, 선생님, 사업가, 학생, 여행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그사이 ‘나도 계속 도전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집 요강을 보다가 자격 조건에서 턱 걸렸다. 단순히 읽고 소감을 쓰는 차원을 넘어 내용 요약과 함께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작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까지 해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청서에는 그동안 자신이 읽었던 독서 기록이나 활동 실적이 담긴 개인 SNS 주소를 첨부하는 공란이 있었다. 신청 계기를 몇 줄씩이나 적어놓고도 다시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서평을 쓰겠냐’싶은 생각만 들었다. 연습,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첫 서평단 신청을 포기하고 그때의 일조차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 즈음 또 다른 도서의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게시글을 봤다. 이런 기회는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해 바로 신청했다. 부족하지만 몇 줄 남겨둔 개인 블로그 주소를 첨부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태어나 처음으로 책을 선물로 받았다. 물론 조건부 선물이었다. 약 2주 동안 책을 읽고 Review를 올려야 했다. 길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현관문 앞에 도착한 택배 포장지를 뜯어 신발장에 그대로 올려두고는 깜박 잊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덧 약속된 날짜는 3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떻게든 읽어야 했다. 부랴부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서평을 썼는지 찾아봤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책의 겉표지를 사진으로 찍는 일이었다. 대충 찍을 수는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찍었는지 인터넷에 찾아보며 찍었다.
다음으로는 작가 소개, 책의 목차,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등등. 이 외에도 인상 깊은 구절과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누가 읽으면 좋을지까지 문항을 세어보니 대략 열 가지는 넘어 보였다. 이 모든 걸 할 수는 없었다. 우선 쉬워 보이는 다섯 가지라도 해보기로 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쓰다 보면 내용도, 속도도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품고 첫 장을 넘겼다. 퇴근 후 거의 모든 시간을 책 읽는 데에만 쏟아부었다. 마침내 결과는 성공. 다른 멋진 서평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손으로 완성한 첫 서평이었다.
며칠을 고생하느라 힘이 들었지만, 재미도, 보람도 있었다. 수 백 페이지에 이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단 몇 장에 정리하는 일을 하면 할수록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첫걸음이 어색하고 늦었지만 결국 끝까지 해낸 덕분이었을까, 이어 신청하는 서평 모집단에서도 연이어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길어졌고 서평 실력 역시 늘어갔다.
서평단 활동을 시작한 지 일 년 지나자 개인 SNS에는 도서 서평과 수필, 영화감상 등의 여러 분야의 글이 쌓이기 시작했다. 쓰기 위해서는 읽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많은 글을 읽었던 덕분이었다. 때를 맞추어 수필 관련 공모전이 열리는 곳에도 몇 편의 글을 골라 응모했다. ‘설마 될까?’ 하는 의심이 더 컸지만, 그동안의 노력을 믿고 발휘한 용기였다. ‘안되면 또 쓰면 되지 뭐.’
걸음마를 이제 막 시작한 아기는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거나 앞으로 넘어져 손과 무릎에 시퍼런 멍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도 포기하는 법을 모른다. 아기의 목표는 오로지 걷기이고, 넘어지는 두려움보다 걷기의 목표가 더 크기 때문이다. 나에겐 글쓰기가 혼자만의 걷기 연습인 셈이었다. 느리고 부족한 글쓰기지만 세상에 나만의 속도로 걸을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도구였다.
불현듯 생각난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약 2년 정도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퇴직 후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20대 후반의 여성 작가분이 있었다. 아직 출간 서적은 없었지만 같은 브런치 스토리에서 활동 중이라 더 눈길이 갔다. 당시 그녀의 선택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점도 그랬지만 주변에서의 만류도 뿌리치면서까지 시작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그 계기로 나 역시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이루리라는 꿈을 안고 직장과 퇴근 후에는 도서관으로 출근 도장을 다시 찍고 있다. 목표를 세웠으니 노력만 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도 아니라는 희망과 함께.
어느 날, TV 속 인터뷰 방송에서 윤여정 배우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나 같이 살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지혜가 생기고, 실수는 잦아들지만, 여전히 처음 살아보는 오늘이니 완벽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윤여정-
완벽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는 말은 실수해도 괜찮고, 넘어져도 괜찮으니 그래도 내 삶을 돌보며 나만의 속도로 차분히 살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중요한 건 느리게 가는 것 같아도 지금의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힘으로 꾸준하게 걷고 있으니 분명 나만의 길을 찾아 걸을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