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마치 누가 온몸을 짓누르는 기분 탓에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인 끝에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저녁 시간마다 운동에 한창 열을 올린 이유에서였다. 오늘이 30일째다.
다이어트 과정이 쉬운 길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배고픔을 참으며 운동을 해야 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일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6월 1일부터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땐 주변에서 그 힘든 걸 왜 자꾸 하느냐고 물었다.
누구는 중독이라고 말했다. 또 누구는 할 일 없느냐고 핀잔을 던진 적도 있다. 처음엔 사람들의 이런저런 말에 마음이 쓰였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점차 목소리도, 그들의 관심도 희미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 마음은 한결같다. 덜어내기를 연습한다. 삶에서 불필요한 관계, 생각, 소비 등등. 나를 살찌웠던 음식, 술보다도 혹시 불필요한 관계에 얽매이지는 않았나 하고 뒤돌아본다. 그런 의미로 이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 살 빼기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자기 성장과 성찰의 숭고한 시간인 셈이다.
지난해 다이어트 때가 생각났다. 당시는 좋았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식욕을 참지 못해 자꾸만 체중이 불어나는 걸 멈추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이왕 한 김에 바디프로필 사진 촬영까지 도전했다. 겨울철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잔하자는 동료들의 유혹도 뿌리치며 헬스장에서 보낸 시간이 힘들지만 보람찼다. 그 결과가 그대로 촬영장에서 드러났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운동선수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프로선수가 되지 못했을 뿐 내 삶 속 운동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만 본다면 초보 딱지를 뗀 지 오래다.
티브이 속 등장하는 영화배우, 가수, 운동선수가 멋지게 몸을 만들어 사진 찍는 걸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라는 욕심으로 시작했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깨닫는 무언가가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생각했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하는 진실이다. 대학교 졸업 후 사회에 발을 들인 이후 줄곧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며 보내야 했었던 시간.
퇴근길 대부분 곧장 헬스장에 들렀다. 주말에도 빠뜨리지 않았다. 온종일, 몇 날 며칠 동안 직장과 헬스장, 집이 내 생활 반경의 전부였다. 간혹 퇴근을 일찍 하는 날엔 집 근처 공원을 더 달렸다. "아니, 몸도 몸이지만 얼굴이 너무 피곤해 보여. 맛있는 것도 좀 먹어가면서 해. “매일 아침 출근하면 사무실 동료들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 될 때까지 하겠다는 마음
다이어트를 맨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 직장에 근무한 지 10년 이 넘으면서 공허함이 찾아왔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도 마음 구석이 허전했다. 늘 지금 하는 일을 꼭 하고 싶다며 자신을 채찍질했던 시간만 해도 몇 년이었다.
때를 같이 해 부모님의 건강 이상 소식이 들렸다. 한 분은 고혈압, 다른 한 분은 당뇨. 둘 중 하나는 유전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마음속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술과 음식으로 잔뜩 채우고 있던 시기였다. 오래 근무하다 보니 무감각해져서일까, 인제 와서 내가 다른 일을 시작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어떤 사람은 자격증을 공부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지금 하는 업무 분야를 조금 더 확장할 방법을 연구해 보라고 했다. 승진이든, 부서 이동이든 그러다 보면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사실 이전에도 늘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나였다. 학창 시절에도 정확한 진로를 결정하지 못 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바람에 지방의 전문대에 입학했다. 말 그대로 수능 시험 성적에 따라 결정한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니 어른이 되어서도 막막했다. 온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뒀다. 자격증 공부, 여행, 운동, 취미 등 남들이 하면서 좋아 보이는 일은 나도 따라 했다.
그러다 헬스라는 운동을 배웠다. 말 그대로 건강을 뜻하는 의미인 이 종목은 특별히 누구와 경쟁하기 위한 시간보다 자신과 싸움이 더 잦았다. '오늘 날씨도 그런데 술이나 한잔할까?', '힘들다.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 포기할까?' 등의 유혹에 맞서 이겨내는 연습이 곧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순간이었다.
내 인생 마지막 '좋아하는 일 찾기'의 여정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다. 일단 체력이라도 뒷받침하고자 근력운동에 비중을 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몇 년을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하다 보면 좋아지겠지 하며 잡은 지푸라기였다. 티브이 속 다른 사람들처럼 멋진 몸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건강과 공허함을 지울 수 있길 원했다.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고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들었다. 늘 하던 운동이 이제는 습관이 됐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의 계획이 있다. 나이 60, 70,100살 이 되어도 멋지게 늙고 싶다는 정말 이루어질지는 모르는 계획이었다.
* 내 삶은 내가 정한다.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대략 시간을 따지자면 하루 평균 9시간 정도를 직장에서 보낸다. 점심시간에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독서와 자기 계발을 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하루 30분에서 40여 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책과 스마트폰 하나, 인터넷만 접속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무조건 사내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는 기준이 없었던 터라 같은 사무실 동료 중 절반은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 후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글쓰기에 한몫했다.
한 번은 점심때만 되면 책을 들고 사라지는 나를 보며 동료 중 한 명이 물었다. "대체 점심때마다 어디를 가시나요?"
환경이 안 되면 만들면 됐다. 시간이 없다면 하루 24시간 중 기본 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간 외에 글 쓰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뭐든 처음 시작할 땐 낯설고, 어려운 것 천지겠지만 조금씩, 매일 쉬지 않고 반복된 노력만 할 수 있다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덤볐다. '할 수 있을까?' 의심으로 시작한 브런치 이야기 작가 등단 기는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지만 결국 해냈다. 부단히 노력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쓰기도 읽기도 반복해야 한다. 매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장시간 동안 씨름하고 있으면 눈이 뻑뻑한 날도 많다.
세상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몇 가지 일을 묶어보면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깨달은 계기였다. 매일 반복하는 읽고 쓰기는 단순하면서도 쉬지 않고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므로 에너지 소모가 컸다. 더군다나 작년 시작한 늦깎이 문예 창작과 대학생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수업과 과제,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하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힘들지만 매일 쌓이는 글을 보면 내 자존감도 오르는 것 같았다. 과정엔 이렇게 남겨둔 글이 모여 대학의 과제로 쓰이기도 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은 들었지만 글쓰기를 하며 보내는 하루는 이전의 24시간보다 훨씬 성과가 컸다.
* 내 삶의 목표 만들기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지 약 4개월이 지났다. 현재까지는 이 과정이 수익이 된다거나 어떤 인정을 받지는 않는다. 매주 1명이라도 더 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만의 경험이 특별한 이야기가 됐다. 독자에게는 나의 글이 도움이 됐다며 응원의 메일도 받는다. 단순 돈을 버는 기쁨의 이상이다. 나도 성장하고, 독자도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일이야말로 적성에 맞는다는 의미다. 이제는 그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언제나 내가 쓰는 글은 또 다른 ‘나’라는 생각으로 숨을 불어넣는다. 덕분에 삶의 만족도까지 채워지는 기분이다.
정식 출간 작가라는 목표가 생겼다. 이미 e-book을 출간한 경험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나는 늘 이미 꿈을 이룬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펴놓고 저자 사인회를 꿈꾼다. 요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그동안 있었던 기쁨을 배가 되는 방법과 위기, 시련 극복 비결을 알려준다.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겠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배울 수 있을 터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가능한 일. 이런 목표를 하나, 둘 만들어 두고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나도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아침, 직장에 전화를 걸어 연차를 냈다. 꾀병이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몸은 무리가 없었지만 머릿속은 무언가로 가득 차 복잡한 상황이다. 그럴수록 고민 한 가지에 글 한 편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해결될 일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툭’ 하고 나에게서 떨어져 버리는 별것 아니었던 고민처럼, 막연한 걱정과 불안 대신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삶이란 늘 지금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오늘이라는 계단 하나를 하나 올라서며 내 빛나는 삶을 기대해 본다.
* 저번 목, 이번주 월요일로 이어지는 글 두 편이 연속 지연, 미 연재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민을 안고 사는 성격이라 일어나지도 않은 막연함을 미리 걱정하느라 전전 긍긍했습니다. 그러다 과했는지 오늘에서야 회사에 휴가 처리를 요청했고요. 덕분에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고 잘으면서 하루를 보냈으니 내일부터 힘을 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