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작가다. 오해마시라. 글을 써야만 작가라고 부르는 건 아니니까. 각자의 삶에 자신만의 경험을 하나 둘 남겨놓는 존재라면 충분히 작가다. 도구만 조금 다를 뿐 사진, 그림, 음악, 일기, 등 등 어떠한 수고를 감수하면서라도 우리는 기꺼이 삶의 한 장면을 남겨두는 일을 마다 하지 않는 존재 아닌가.
19년도 겨울 글 쓰기를 시작했다. 처음 책을 읽고 몇 줄 남기는 것에서 나아가 감상과 서평, 일기까지 쓰고 있다.
22년도에는 목표를 하나 세웠다. 매일 느끼는 일상의 순간을 글로 옮기는 것. 중간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핑계로 포기할 수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짧은 내용을 쓰기로 했다. 또한 일정 기간을 정해놓으면 목표 달성에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하여 이름하여 '백일 시 쓰기'를 도전했다.
단조로워 보였던 삶이었다. 매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평범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재미를 찾아 여행을 떠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결국 여행의 끝은 현실이었으니까.
시를 쓰자 삶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 교차로에 길게 늘어선 차량을 보며 늘 불평불만 만 늘어놓던 나였건만 '가족의 삶을 위해 오늘도 수고하는 당신'이라는 문장이 떠오르기도 했고 점심시간엔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지나치면 다시는 느낄 수 없는 하루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삶의 사유가 늘어날수록 시는 한 편씩 늘어갔다. 삶에는 지우개가 없는 대신 신중하게 다음의 점을 찍을 수 있는 여유를 배웠다. 글 이란 그런 것이다. 사유와 깨달음, 다짐과 실행의 반복을 이끌어내는 도화선 같은 존재.
몇 년 사이 SNS에는 개인의 수필이 눈에 띄게 등장했다. 그만큼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중요한 건 그 어떤 글도 '옳다 ' '그르다'라는 내용은 없다.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길 앞에 시련과 슬픔이 있더라도 묵묵히 이겨내며 걸어간다는 다짐이 전부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손 길이 줄을 있는다. 화려한 수식어 없이 평범한 일상을 옮긴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나 또한 그랬었는데' 라며 공감하기도 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가지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앞에 앉으면 온통 하얀색뿐인 여백이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 걷기 위해 일일이 세기도 힘들 만큼 넘어졌을 터다. 그러다 점차 시간이 지나 다리에 힘이 생기고 몸의 균형을 잃지 않게 되었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첫걸음을 옳길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은 누구나 같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성장하는 한다. 글 쓰기 역시 이와 같다. 흰 여백을 어떤 내용으로 채워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첫 문장을 옮겼다가도 다시 지우는 과정의 수많은 반복의 결과가 한 편의 글이다.
여백에서 유일하게 쉬지 않고 움직이는 존재가 있다. 바로 마우스의 커서다. 모니터의 흰 여백이 삶이라면, 쉬지 않고 깜박이는 마우스의 커서는 나에게 책과 운동, 강연, 글쓰기, 음악감상, 여행 등의 수많은 경험이었다. 순간순간의 한 장면을 기록을 남기는 데 있어 경험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책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처음 책을 읽었을 때가 17년도의 여름 즈음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술에 의존도가 높아 중독에 가까운 상태였다. 여러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스스로 이겨내리라는 다짐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의사의 추천을 받아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봤다. 그중 하나가 책이었다.
그땐 '무슨 책이냐'했다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으면서도 슬기롭게 극복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책을 통해 알았다. 창피했다. 나는 이럴 용기조차 없었으니까. 다들 자신의 가장 화려한 날을 기록하고 싶어 했을 텐데 이들만큼은 힘들었던 순간을 더 소중히 여겼다.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을 읽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그저 '좋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나와 멀리 떨어져 상관없는 사람들의 자랑처럼 느껴졌다.
반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짐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사람냄새가 났다. 마치 바로 옆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기교나 필력보다 감정과 공감에 마음이 갔다.
종종 서점에 들러 진열된 책 중 베스트셀러 분야를 볼 때면 '부동산으로 돈 버는 방법' '주식 '이나, 소설과 같은 문학장르가 맨 앞에 와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바라는 건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많이 읽혔으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