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4년도 수능 시험이 있는 날이다. 인터넷에서는 시험 관련 기사가 쉬지 않고 올라왔다. 어려운 수능이니, 쉬운 수능이니, 경쟁률이 작년도에 비해 어떻다는 등의 내용뿐이었다. 2003년도 수능 시험을 치렀다. 말 그대로 보기만 했다. 특히 수리영역 I에서는 아예 문제를 풀지도 않았다. 어차피 내가 풀 수 있는 수준의 문제는 없었으니 포기한 상태였다.
고등학교 생활은 졸업하기 전까지 대부분 시간을 교실에 앉아만 있었다. 남들은 그만큼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냥 앉아만 있기에 불편하니 선생님 몰래 만화책을 꺼내 읽다가 교실 뒤편으로 가 손 올린 적이 많다. 그 외에도 수업보다는 거의 반 수면 상태로 시간을 보낸 기억뿐이다.
그런데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다들 공부를 잘했다. 중간, 기말고사 시험에서 평균 90점 이상을 받았는데 나는 반 평균 점수를 깎아 먹는다고 담임 선생님께 혼난 기억뿐이다. 그만큼 나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 나도 진로 걱정은 많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터라고 2부터 모의 수능 시험에서 받은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골라놓고 미리 준비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공부는커녕 앞으로 졸업 후 어떤 사람이 될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미래의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럼 최소한 남들 하는 만큼의 공부는 하지 않았을까.
2017년도 겨울, 서울 강남 YES 24 지하 서점을 들렀다. 책과는 거리가 있던 나였지만 당시 약속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한 까닭에 추위를 피하려 선택한 곳이었다. 사람이 많았다. 서점 한가운데에 수많은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마치 손길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그 들을 향해 있었다.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책꽂이에 등을 기대어 읽기도 했는데 다들 집중력이 대단했다.
시선 가는 대로 책등의 제목을 읽어가며 그사이를 걸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색깔의 노란색 표지의 책 한 권이 있었다. 존 맥도널드가 쓴<꿈의 기술> 이었다. 꿈의 기술 앞에는 ‘내 삶을 움직이는 마음의 비밀’이라고 작은 글씨가 있었다. 지은이에 대해 알려진 바는 얼마 없다고 적혀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읽었다는 그 흔한 리뷰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끌렸다. 약속 시각까지는 한 시간 넘게 남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명확한 목표를 정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것에 주파수를 맞추려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의 지배를 받고 그 탓에 혼돈과 고뇌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 꿈의 기술 78페이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새해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1월이 넘었다. 곧 한 달만 지나면 또 다른 새해를 맞는다. ‘나는 지금껏 세운 목표를 얼마나 이루고 지내왔을까?’. 답답했다. ‘토익 공부를 시작해 점수를 올리겠다’라는 다짐은 한 달이 되기 전에 포기했고,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려 준비하다가도 얼마 못 갔다. 그렇다고 내가 게임에 빠져있다거나 흥청망청 노느라 시간을 낭비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고 이것저것 도전을 해봤으니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위로도 해봤다.
문장 하나에 내가 왜 도전만 반복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명확한 목표’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느낀 ‘명확한’ 의 뜻은 이랬다. ‘내가 왜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이라는 자조적인 질문에 흔들리지 않을 만한 명확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늘 시작은 창대했다. 그렇지만 얼마 못 가 포기를 밥 먹듯 했다. 그러니 고등학교 때도 인문계 전교 꼴찌를 했을 터다. 그만큼 나는 끈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태도가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가 됐다. 내가 하는 일에 금방 싫증을 느꼈고 습관처럼 나와 남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확고한 목표가 있는 반 친구들은 유명대학에 입학했다. 각자 희망하는 직업을 찾았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더 집중했다. 친구 A가 한 번은 모의고사 등수가 이전보다 떨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어차피 전교 손가락 안에 드는 순위이므로 별 차이가 없었지만, A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석하고 다시 준비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바람이 불어도 더 강렬하게,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는 걸 직접 보여준 셈이다.
24년 11월 10일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그것도 하프코스. 처음엔 21km가 넘는 거리인 줄 모르고 있다가 대회 일주일을 앞두고 알았다.마지막으로 가장 길게 쉬지 않고 달린 거리는 18km. 처음 10km를 완주했을 때가 3개월 전, 한여름이었다. 그땐 정해둔 목표지에 도착하니 무릎이 굽혀지지 않을 정도였다. 기록은 한 시간 20분. 계속 달리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며칠 뒤에도 달리기를 했다.
대회 당일, 출발을 알리는 신호에 수천 명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애초부터 이번 대회 목표는 완주였으므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두 시간 넘도록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거리다. 남들을 따라 달리다 무리가 발생하면 안 되었기에 나만의 속도로 달리기를 이어 갔다. 왼팔엔 스마트폰 거치대를 부착해 놓고 음악을 작게 틀어놨다. 연습 때도 그랬다. 퇴근 후 저녁 시간 근처 공원과 하천을 따라 달리다 보면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대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나와 같은 코스를 달리는 선수가 2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중 나는 꼴찌라도 좋으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삶에 명확한 목표만 있다면 열등감도 고칠 수 있다. 세상은 나보다 더 잘 달리고, 공부 잘하는 사람이 많다. 그걸 머리로는 아는데 자꾸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고민하던 차에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옆에서 빨리 달리는 건 마라톤에 출전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단지 한발씩 앞에 두는 걸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기만 하기로 했다. 그럼 완주는 할 수 있을 테니까.
21.0975km. 짧은 거리가 아니다. 완주하려면 철저한 연습과 준비가 필수다. 대회 일자로부터 몇 개월 전부터 달리기 더 오래, 더 멀리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3개월을 준비했는데 첫 달은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출발지점으로부터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연습했다. 처음엔 5km. 그다음엔 7km, 9km 순으로 거리를 점차 늘려나갔다. 두 번째 단계에선 구간 속도를 확인했다. 스마트폰 앱의 역할이 컸다. 속도를 실시간으로 안내 해주어 내가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알려줬다. 빈도가 쌓이면 실력이 된다. 특히 달리기가 그렇다. 근육이나 마음가짐 자체가 달리기에 맞게 변한다.
속도가 빠르면 금방 지칠 테니, 내가 정해놓은 목표를 향해 나만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연습. 이것만이 내가 남을 의식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의 좋지 못한 습관을 고치려 노력하느라 애쓰는 것도 좋지만, 내가 가진 좋은 습관을 성장시킬 방법을 연구하는 편도 좋다. 그렇기 위해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걸어가겠다, 어떤 그림을 그려보겠다 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한 법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좋다는 말처럼 사람이 가진 시각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니까. 조금은 이루기 힘들 것 같은 목표를 정하고 해야 하는 작은 일의 실천 계획을 세워보자. 습관을 고치는 데에는 명확한 목표가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