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의 타이머를 맞춰두고 100번의 글쓰기를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다가오는 연말엔 분명 회식으로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짧은 글을 쓰며 나만의 연말정산을 해보겠습니다.
독서라는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무겁고 두꺼운 책을 몇 시간씩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독서는 얼굴 없는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에게는 친구 같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도 있다. 단순히 책에 쓰인 글을 읽는다고 해서 독서가 아니다. 읽으면서 뜻을 헤아리거나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다. 책 한 권에는 한 사람의 삶이 녹아 있었다.
그만큼 한 권을 완독 한다면 작가의 경험을 배울 기회다. 그런데도 ‘빨리빨리’라는 말에 자꾸 밀려난다. 나 역시 그랬다. ‘바쁜데 무슨 책이냐’,‘그럴 시간에 차라리 뭐 하나라도 더하겠다.’라는 주의였다. 정보를 얻으려거든 인터넷과 유튜브 영상을 찾으면 쉽다.
그러나 지혜를 배우려면 독서가 필수다. 읽고 난 이후 내 삶에 무엇을 적용할지, 어떻게 내일을 걸어갈지에 대한 고민과 다짐은 분명 누군가의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실수 연발, 우당탕 삶을 살아온 나에게 최고의 보호자 이자, 자기 계발일 수밖에. 그동안 괜한 편견 때문에 책과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후배를 통해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1주일 동안 지정된 책 한 권을 읽고 매주 토요일 저녁 8시에 모여 소감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성격유형 검사(INFP)를 할 때면 항상 ‘I’가 나올 정도로 소심한 나였다. 책을 읽긴 해도 혼자 조용히 읽기만 했지 누군가와 책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건 상상 못 했다. 독서 모임에는 순서가 있었다. 순서대로 소감과 느낀 점, 다짐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사람의 질문에도 대답해야 하는 상황도 불쑥 생기곤 했다. 작가의 경험을 빗대어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할 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원래 처음 모임에 가입했어도 정기 모임에 참석하려면 다른 회원의 결원이 생겨야만 가능했지만 운 좋게 다음 주부터 참석할 수 있다는 안내 문자에 신이 났다. 이왕 시작했으니 독서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기로 했다.
유튜브에 접속해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 법’, ‘올바른 독서 모임’ 등의 제목을 검색했다. 모임을 진행하는 방법이나 장소가 다양했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책을 읽고 난 후의 내 이야기보다 상대방의 소감을 듣는데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러려거든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태도,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인터넷 블로그에 모임 후기가 많았다. 조금 어려운 내용의 책을 나눈 모임에 참석한 어느 블로거는 그래도 다른 사람의 설명에 책을 이해하기 쉬웠다는 소감이 있는가 하면, 벌써 다음 선정될 도서가 기대된다는 만족감 넘치는 소감도 있었다. 낯선 사람들과 책 한 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소통의 기술을 익히는데 이만한 것도 없었다.
1주 1 책에 진심이 생겼다. 읽으면서 동시에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도 터득하고 싶었다. WHO, WHY, WHAT, HOW 4개의 질문을 이용한 독서법은 이곳 사람들에게 알게 되었다.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이 책을 썼고, 누구에게 어떻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의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아보면서 읽는 독서법이었다. 모임에 참석했었던 인원은 보통 10명 남짓, 주말 오후 다 같이 모여 나와 상대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토요일 저녁이다. 7시 40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체 채팅방에 줌 주소를 올렸다. 때가 코로나 19로 인해 집합금지 명령이 시행되던 시기였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나, 둘 사람들도 모임에서 떠났다. 끝까지 남은 건 나를 포함 5명뿐. 그사이 모임 장도 나로 바뀌었다. 덕분에 해보지 않았던 모임 진행을 미리 연습해 보느라 주말이건 평일이건 한 달 넘도록 도서관에 가 살다시피 했다.
모임을 이끌어가는 방법이라던가 도서 선정 방법 등에 관해 연구했다. 미리 시나리오를 적어두고 시간을 맞추어 읽었다. 목소리 좋은 동료에게 조언을 받아 다음 모임에서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상냥한 목소리 톤과는 거리가 있어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고 했다. 모임을 마친 뒤 ‘진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어깨가 올라갔다. 누군가에게 칭찬과 박수를 받을 수 있다니, 보람이라는 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나서서 무엇을 해본 적 없다. 그런데 한 시간의 경험은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괜한 일 하는 건 아닌가?’ 하며 으레 포기를 먼저 생각하던 내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일주일 잘 지내셨나요? 지난 시간 동안 누구는 힘들고 지쳐있었을 수도 있고, 또 누구는 행복 가득한 경험이 많았던 사람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책 읽고 모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어 볼 책은 데미안입니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고, 소설 형식이다 보니 쉽게 읽을 수 있으셨을 텐데요.
이야기 속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단계를 알에 비유합니다. 그리고는 알을 깨뜨리고 세상 밖으로 몸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데요, 혹시 최근 나의 삶에 당면한 어려움이나, 주인공처럼 깨 드리고 싶은 알이 있으시다면 한 분씩 이야기해봤으면 합니다.”
이어 순서대로 약 5분간 자신의 겪었던 알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치 지금 내가 그 앞에 마주 보고 앉아 듣는 기분이다. 듣는 동시에 나는 어떤 피드백을 해야 하는지,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떠올렸다. 심리학 관련 서적이든, 시집이든, 수필이든, 그것도 아니면 작가의 이름을 대어서라도 상대의 이야기 값 정보를 돌려줬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던 내가 모임을 진행할 수 있을까?. 의심 대신 ‘나라고, 못 할 건 없지!’ 확신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유와 핑계 대신 방법을 찾았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망설이는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 이 일을 이루어 냈을 때 나의 모습, 성취감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삶에서, 직장에서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은 분명 온다. 그때마다 포기하거나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 해결할 방법은 어디든 있다. 그걸 내 것으로 만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시작된 거리 두기가 없어지면서 1주 1 책 독서 모임도 없어졌다. 작년부터는 나의 성장을 위해 더 큰 규모의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줌으로 진행되는 ‘천무’다. 전국 각지, 지구 반대편에서 접속하는 분도 있다. 모두 자기 생각을 말하고, 듣기를 원해서 모이는 시간이다.
순서가 되면 나도 마이크를 잡는다. 순간마다 가슴 떨린다. 이럴 때 잠시 숨을 고른다. 이 순간을 즐기고 성장한 나의 모습을 천천히 호흡하며 상상한다. 어느새 긴장된 목소리는 없어지고 한층 고요해진 나를 만날 수 있다.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 마법 같은 주문을 외워보자. ‘나라고 못 할 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