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하면 몇 번째지? 어딘가 적어 놓은 기억이 나긴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국내 월간 잡지사에 기고한 적이 있다. 물론 내 글을 제출한다고 해서 무조건 당선되는 건 아닐 거라는 걸 예상하였지만 자꾸만 쌓여가는 거절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망은 있는 걸까……?;’
몇 년째 반복되는 도전. 성공의 가능 여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들기는 이유는 단 하나. 실패와 거절에 무덤덤해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승승장구를 달렸다. 많은 월급은 아니더라도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 사이에서 가장 먼저 취업이 됐던 터라 나름 만족하며 지냈다. 어쩌면 이 만족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입사 초기 입금된 급여 수준은 당시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점차 연차가 지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물가상승률에 비하자면 그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으니까.
지금껏 직장을 옮기지 않고 한 곳에만 있었으니 올해로 18년 차. 민간기업으로 따지자면 중견간부급의 직책을 맡으며 월급 또한 그랬어야 했다. 삶은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바뀐다는 말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그동안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인사고과 점수를 높이려고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부서의 일도 몇 년째 도맡아 했다. 그런데도 내 상황은 제자리걸음. 승진 누락이었다.
몇 년째 반복되는 승진예정자 명단에서 빠지는 내 이름. 연말마다 회사 공고문에 게시되는 다음 해 승진예정자명단을 확인하는 것도 이제는 남의 일이 됐다. 어차피 올해도 틀린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날이면 안 좋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재능이 없는 걸까?’‘내가 이 회사에 불필요한 존재일까?’ 등등.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면 자연스레 뒤따라 낮아지는 자존감. 주변에서는 ‘다음에 하면 되지!’‘너무 신경 쓰지 마’‘잘될 거야’라는 위로를 건넸지만 들리지 않았다.
2019년 여름, 한 달 치 급여로 저번 달보다 몇백만 원이 더 들어왔다. 그동안 공제회에 가입해 급여의 일부 금액을 정기적으로 내왔던 것을 일부 해약했기 때문. 이유는 하나,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할 목록을 지우고 남은 잔액은 200만 원. 며칠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될 정도의 금액이었지만 선택지를 다른 곳으로 바꿨다. 지금까지의 경험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 중간에 돈이나 시간, 기타의 이유로 더 하지 못한 일을 해보기로 했다.
비싼 카메라를 사 취미를 배운다거나, 음악학원 등록, 쇼핑, 골프 강습 등이 생각났다. 지금의 글쓰기를 배우는 일이 처음부터 순위에 있었다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랬던 내가 마음을 굳힌 건 ‘제대로 된 글쓰기 수업을 들어보자’였다.
그로부터 딱 9개월. 받은 메일함에는 수천 개의 거절 메일이 쌓였다. 몇 달 동안 짜내어 쓴 글을 국내 굵직굵직한 출판사는 물론 독립 출판사, 잡지, 지역 신문까지 보냈지만 하나같이 ‘거절’ 의사를 밝힌 것. 글쓰기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어 받은 수많은 거절이었다.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처음으로 몇 달을 고생해서 쓴 글’에 진이 다 빠져 며칠을 앓아누웠다. 직장에 출근했다가도 상태가 좋지 않아 조퇴까지 한 적도 있고. 이쯤 되니 자존심의 문제였다. ‘겨우 종이 몇 장에 나를 판단할 수 있다는 거야?’,‘더러워서 안 보낸다.’식의 생각으로 자기 위로를 하며 거실 식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덮어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 처박아 뒀다.
“에고, 내년에는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
“마음 쓰지 말고 다음에 소주 한잔하자.”
“......”
마치 작년의 일을 녹화해서 다시 틀어놓은 기분. 또 없다. 올해도 공고문에는 내 이름이 없다. 이제는 체념했다. 언젠가 되겠지 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괜히 되지도 않는 일에 스트레스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메일함에 쌓인 수천 개의 거절을 이미 겪어봐서 일지는 몰라도 올해는 작년보다 확실히 무덤덤해졌다.
현생에서의 거절을 받은 뒤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받은 메일함의 목록을 봤다가 가슴이 뛰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답장이 도착했기 때문. 떨리는 손가락으로 메일을 열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OOO 출판사입니다. 작가님의 내용은 좋으나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어 우리 편집부의 수정을 거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몇 차례 토의하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매번 짧은 거절만 받아서 인지는 몰라도 글 몇 줄에 가슴이 뛴 건 사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사 내용의 메일이 몇 번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땐 거절과 거절 사이에 끼어 있는 ‘보류’,‘검토’라는 말은 이미 한풀 꺾인 내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소파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켰다. 한 달 넘도록 서랍 안에만 있던 노트북을 꺼냈다. 식탁을 싹 치우고 자리에 노트북을 올려 전원을 연결했다. 의자를 당겨 앉아서는 물 한잔을 마셨다. 한참을 사용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다시 해볼 의지를 잡기 힘들어서인지 몇 분째 노트북은 부팅 화면에 멈춰있었다. 겨우 몇 분이 몇 년은 지난 기분이 들었다. 휴지통에 넣어두었던 원고를 복원시켰다. 마지막 문서 수정일은 한 달 전이었다.
출판사의 검토를 다시 받기 위해 2차 퇴고를 시작하기로 했다. 퇴고에 피눈물 날 정도는 돼야 출간의 기회를 얻을까 말까 한다는 말에 직장과 집 외에는 시간과 장소 모두를 포기했다.
제일 먼저 포기한 일은 퇴근 후 집에서 누리는 편안한 휴식이었다. 그동안 퇴근 후 거실에 앉아 글을 썼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써야 잘 써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불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도서관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원고를 퇴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 집에서 혼자 즐기는 혼 술도 포기해야 했다. 그 시간을 쓰는 데에 투자했고 가끔은 책을 빌려다가 자리에서 읽었다. 짧은 문장의 시와 분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소설을 많이 읽었다. ‘이 시가 이런 내용이었어?.’ 학창 시절 국어 시험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나태주 시인의 글이 새롭게 느껴졌다. 심지어 그의 딸도 시인이라는 말에 그녀의 시를 찾아 읽는 재미도 생겼다.
다음으로는 야금야금 새어나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기로 했다. 하루 ‘5분’‘30분’……. 생각 없이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유튜브 영상이나 인터넷 쇼핑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고민하며 스마트폰 속 즐거움을 포기했다.
얼마 전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와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다. 한동안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소소하게라도 얼굴이나 보자며 부른 자리. 둘이 마주 보고 앉아한 잔 두 잔 넘기는 술잔 중에 그가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퇴근하면 매일 도서관으로 가느냐?’‘글 쓰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재미가 있느냐?’ 등의 내용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이 질문을 머릿속에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 망설임 없이 단번에 대답했으니까. ‘글쓰기에 매진하는 게 아니라 거절받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수많은 거절 끝에 얻은 게 하나 있다.
삶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이전까지 내게 삶이란 그저‘평범한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남긴 기록의 흔적을 다시 꺼내어 되돌아보면서 당시의 반성과 후회, 앞으로의 다짐을 반복한다. 과정에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건설적인 생각은 덤이고.
퇴근 시간이 되면 얼른 도서관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퇴고할 내용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부족한 게 많아야 성장할 수 있다. 내일의 어느 날에는 나의 글도 쑥쑥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삶의 의미를 분명히 알았다는 것에, 내일을 꿈꾸며 기다린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오늘의 내가 있게 해 준 어제의 기록에 고마움을 갖고, 내일을 보다 나은 모습으로 만들기 노력하고 있다. 이제 나에게 거절은 실패가 아니다. 다시 일어나 도전하라는 격려다. 수많은 거절 끝에 얻은 나만의 인생 문장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거절을 찾아 일어서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