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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10시간전

배움의 힘

서른 이 넘어서도 자격증 공부를 놓지 않았다. 보다 좋은 직장으로 언젠가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직을 준비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못했다.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경쟁에 밀려 자꾸만 뒤처지는 기분에 우울증까지 생겼다.


그러던 중 우연히 티브이 속 광고에서  사이버 대학이라는 대학 입시 제도를 알게 됐다.  '서울 사이버 대학을 다니고~ 나의 성공신화 달라졌다.'라는, 한 번쯤은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노래 가사 덕분이었다.

처음엔 '저게 뭐야' 했다가 자주 들으니 입에 맴돌았다.  '나의 성공신화 시작됐다'


한 직장을 오래도록 다녔다. 20년 차 근속 근무까지 얼마 안 남았다. 그동안 지나쳤던 시간이 떠올랐다.

다른 팀원과 협업이 안되어 사업이 전면 무산된 일, 재주는 곰이 부린다고 했던가, 순탄하게 진행되던 사업을 중간에 누가 가로채간일. 이럴 때면 옛 말이 틀린 것 하나 없었다.

말 그대로 우당탕탕으로 버텨낸 직장이었다.


후배들이 보기에는  오랜 시간 축적한 노하우를 가진 인생 선배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직장을 떠나보면 나도 사회 초년생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투성이다. 오죽하면 후배 중 한 명이 '선배는 일 말고는 좋아하거나 잘하는 거 없어요?'라는 을 했을까.


우리나라 직장인 중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적성, 대학 시절 공부한 전공과 연계된 일을 하는 사람이 열에 한 명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좋아하는 일이란 생계를 유지하는데 있어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과 자신의 선호도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다.

그런가  하면  '지금 까지 하고 있는 일'이다 보니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 부분이라는 의미다.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늘 현실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과정에서 퇴사를 희망하며 사직서를 써놓고 과감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게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거쳐온 일들이 전혀 쓸 모 없다거나, '처음부터 이 선택을 했었으면 더 좋았을 걸'이라는 후회는 없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나 다움'이라는 무늬를 새긴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앞으로도 나의 무늬를 더 다양하고 진하게 새길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찾아보던 차에 사이버대학 광고를 들었고 바로 편입 신청서를 냈다. 이미 4년제 졸업을 마친 뒤였으니 두 번째 대학의 입학 인 셈이었다.


작년 일이다.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학과를 선택할지,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미래의 나에게 어떤 무늬를 주어야 할지.


고민 끝에 상담과 문예창작으로 좁혀졌고, 최종선택은 문예창작으로 택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한다는 건. 그것도 대학교 수업이라니.


퇴근 후 학교의 시험 기간 중 만난 후배의 말이 우습다. '이야, 선배하고 전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래도 멋집니다.'


그 말을 들어서일까, 앞으로 나의 삶을 위해 새로운 형용사를 붙여가며 살고 싶어졌다. 과거 체념과 포기라는 표현 대신, 가슴 뛰는 일을 찾아 하나씩 이루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대상이 직장에서 승진이나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한 일이 아니어도 좋다. 단지 온종일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만큼  '소중한 무언가'를 마음에 품을 수 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의 삶을 예찬하고 있을 테니까.


비록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적성과 맞지 않다고 툴툴거리더라도 이유를 찾기보다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국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내 삶은 오직 금 내가 선택한 결과의 연속 일 테니. 

그것만이 오늘의 내가 새길 수 있는 삶의 무늬가 아닐까.


마흔에 시작한 대학 수업. 부족한 시간과 이해하기 힘든 수업 내용이 많았다. 그럴수록 내가 나에게 더 깊게 새겨지길 바랐다. 때로는 이 삼십 대에 하고 싶은 꿈을 찾지 않고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했었던 나에게 내려지는 체벌처럼 느껴지는 날도 많았지만, 서툰 삶을 살아온 나를 위로하는 순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보통은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 전에 하는 말이 있다. '지금 해봐야' 거나, '이 나이에 무슨'. 정말 그럴까?.


당장 내가 수강 중인 사이버 대학만 봐도 학생 평균 나이가 50대다. 또 퇴근길에 헬스장에 들러 둘러보면, 머리 희끗한 분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슷한 비율이라는 것만 봐도 도전 앞에 나이는 상관없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의지는 나이가 스물이든 마흔이든, 육십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 상관없다는 말과 함께.


연세대 교수이자, 저자 김형석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이 보람 있는 인생의 선택을 했을까. 다시 태어나도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그가 최선의 인생을 산 것이 아닐까 싶다.

- 백 년을 살아보니. 225. 김형석-


나는 성공한 삶이 어떤 모양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떻게 살면 보람 있는 인생을 선택했는지를 대학을 다니며 배웠다.


내 인생 두 번째 대학에서 첫 번째 인생 공부를 위해,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위해. 오늘도 나는 마흔의 대학생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강의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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