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완성하고, 첫해에 무조건 끝내겠다.'라는 다짐이 흐려진 게 언제인지, '정말 내가 할 수는 있는 걸까?' 하는 자괴감까지 들 즈음 스승님께서 남기신 답장이다.
글쓰기 수업에 참석하는지도 어느덧 5년 차, 그사이 나보다 늦게 입문한 사람은 몇 권씩 책을 냈다는데, 나는 아직도 초고만 잡고 있다. 그 모습에 참다못한 스승님께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초고만 붙잡고 있을 겁니까?" 수백 명이 넘는 문하생이 있을 텐데 출판을 완료하지 못한 명단을 확인하는 줄은 몰랐다.
한 편으로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나를 기억해 주시는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책 출간하고 자신의 이름 뒤에 ‘작가’라는 명함 한 장 만들어 스승님께 선물했다는데,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인정받는 제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과 다짐의 거리를 마음만큼 좁히기는 어려웠다.
단문과 장편의 글을 번갈아 쓰다 보니 어느덧 쌓인 글의 수는 수 백 편이다. 퇴고를 마치지 않은 글까지 더 하면 책 몇 권은 된다. 물론 그중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도 있다. 문학 대전이라든지, 지방 신문, 잡지사에 내 글이 몇 번 실리기도 했다.
이런저런 발자국을 남기자 주변에서 하는 말이 ‘책 한 권 내 보면 어때?'가. 내가 책 쓰기 초고에만 몇 년째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니 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 한편에 대충 접어 던져놓은 ‘작가'의 꿈을 슬며시 다시 꺼내 본다.
"대체 너는 뭐가 되려고 그러니?"
중학교 입학 이후부터 졸업하기 전까지 어머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이다. 꿈이라기에는 거창하지만 나도 되고 싶은 사람은 있었다. 처음에는 대통령이었다가, 운동선수, 가수, 공무원, 선생님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리 실력으로는 될 수 없겠다는 생각에 학교 수업보다는 방과 후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그렇게 원대했었던 꿈은 점차 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라는 고민은 고등학교 입학한 이후부터였다. 당시 지독했던 입시지옥을 겪으면서부터다. 그나마 중학교 시험 기간에는 벼락치기로 성적이 고만고만하게 나온 덕분에 인문고를 진학했지만, 그 선택은 잘못된 길이었다. 당시 가장 친한 친구 몇 명과 함께 입학했지만, 인근 도시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곳에 입학하다 보니 내 성적은 늘 하위권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고, 1.2학년 시험 성적표는 항상 전교 꼴찌를 도맡아 했다.
‘ 그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라는 아주 고차원 질문의 해답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 번은 아버지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가 멋져 보여 ‘나는 사진작가를 하겠습니다.'라고 중학교 때 희망 직업란에 적었다가 ‘너 집에 돈 많아?'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아…….;' 했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영화 속에서 본 ‘경찰 특공대'를, 2학년 때에는 ‘체육 선생님', 3학년 때에는 ‘사회복지사'를 적어놨다.
학기마다 희망 직업란을 채우는 일이 제일 곤욕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작가'라는 일은 상상 못 했다. 글쓰기는커녕 초등학교 시절 방학 숙제로 내주는 그림일기도 벼락치기를 했었으니까. 그래도 개학하기 며칠 전부터 밤늦게까지 식탁에 앉아 소설을 쓴 덕분에 오늘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쓴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모방을 통해 배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점차 성장하며 가족을 흉내 내고, 새내기 직장인은 사수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운다. 사람은 흉내 내기를 통해 성장한다는 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몇 년 전에는 '웰다잉'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제는 죽음도 누군가 이렇게 하면 어떨까,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미리 학습하는 시대다. 한 번밖에 찾아오지 않는 순간을 당장 겪을 수는 없으니 이렇게라도 준비하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남들을 따라 한 것도 어쩌면 조금이라도 마지막 순간 ‘잘 죽기 위해' 배움을 이어온 것은 아닐까.
그동안 내가 보고 배워온 모든 것들이 멋져 보인 이상, 나도 그런 존재가 한 번쯤은 되어보고 싶고, 후회하지 않기 위한 그런 모든 순간의 반복. 나는 이 과정을 내가 사는 삶의 방식이라 부르기로 했다. 매 순간 나타난 갈림길에서 선택은 다를지언정 결국 모든 길은 하나, 내 삶이라는 큰 강으로 이어지는 건 사실이니까.
나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걸어가 남겨놓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밟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몰라도 ‘나도 한 번 해봐?'라는 다짐은 지금과 전혀 다른 시간이다. 적어도 편하게 누워 휴식한다거나 의미 없이 하루를 낭비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니까. 새해 다짐으로 시작하는 자격증 공부나, 금연, 금주, 다이어트 등 도전 외에도 나에게는 책을 완성해야 한다는 목표가 몇 년째 반복되고 있으니 이전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으리라.
글 쓰는 시간도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작가라는 호칭이 멋있어 보여서 시작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쓰다 보면 재미있다. 이미 세상에 있는 이야기를 나를 통해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은 창조주의 역할과도 비슷한 일이다. 어차피 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방과 학습을 통해 성장해 왔으니 누가 내 이런 모습을 가지고 ‘누굴 따라 하려고?'라고 핀잔을 준다면 현대 고 정주영 회장의 말을 해줄 거다.' 임자, 한번 해보기는 해 봤어?'. 한 번 해보고 나에게 좋다고 느껴지면 계속하는 거다. 아니면 말고.
직업 선택도 그렇게 했고, 적어도 지금 직업을 가지고 책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작가라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매진하다 보니 삶이 재미는 있다. 진정한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데, 한참 고민 끝내 내린 결론은 ‘재미'다. 나라는 사람이 사는 삶은 정해져 있지만, 매번 장소와 시간을 각기 다르게 살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재미있지 않을까.
출근 전 아침, 앞서 걸어가면서 글을 남겨놓은 스승님 글 몇 편을 보며, '나도 이런 적 있었는데'의 기억을 더듬어 오늘의 작가를 모방해 봤다. 창조적으로 살고 싶은가? 내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고 싶다면 나보다 먼저 걸어간 이들의 발자취를 좇아라.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