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스마트폰 액정을 새것으로 바꿨다. 누구는 책상 앞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지만, 나는 그럴 여유가 없다 보니 스마트폰으로 글을 쓴 탓이다. 특히 액정에서 양손의 엄지손가락이 자주 닿는 곳이 언젠가부터 터치감이 좋지 않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센터를 찾았더니, 액정을 새것으로 바꾸기를 추천하길래 어쩔 수 없이 그러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지출에 마음이 쓰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마트폰이 없이 글 쓰는 걸 상상할 수 없으니, 얼른 고쳐 달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열었다. 회의 중에도 폰의 메모 앱을 이용해 정리했고 문득문득 생각나는 글 감이나, 장편의 수필, 독서 모임에 있었던 대화 정리, 운동 후 일지 기록까지. 모든 건 스마트폰에서 시작해서 스마트폰으로 끝날 정도였다.
한 번은 스마트폰 대신 볼펜으로 글을 써보겠다며 손바닥만 한 수첩 한 권을 구입했다가 불과 하루를 넘기질 못한 적 있다. 한 손으로 펜을 눌러가며 자음과 모음을 이어 쓰는데, 엄지 두 개를 이용해 쓰는 것에 비해 속도가 현저히 느렸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쥔 양손에 엄지 두 개는 쉬지 않고 액정 위에서 움직였고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손가락이 춤을 춘다'라며 신기해했다.
계속 글을 써왔다. 습작으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뒤로부터 7년. '그땐 그랬구나' 싶을 때도 있다. 처음 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읽었던 책의 귀퉁이에 남겨둔 말이었다. '이런 내용도 책으로 써? 그럼 나도 쓰겠다!' 나는 생각했다. 나도 글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오만이었다. 어디 새로 옷을 만들어내는 일이 쉬운 일인가. 블로그에 몇 시간 동안 공들여 올려도 나중에 읽어보면 어디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만 해도 지인 중에서는 내가 글 쓰는 일을 한다는 걸 모른다는 거였다.
고민했다. '내가 글을 좋아는 하지만 쓰는 일까지 좋아하는 걸까?' '글쓰기에 소질은 있는 걸까?'.
꼬리를 무는 질문의 연속에서 깨달은 건, 그나마 글을 쓸 때만큼은 잡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과, 무엇보다 살면서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를 직접 대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직접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몇 시간 동안 앉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 있는 순간만큼은 불행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직은 글쓰기 자체를 포기하기는 일렀다. 나아가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름의 마음속 해방구가 되기도 했으니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쓰기를 위해서는 최대한 여유 시간을 만들어 내야 했다. 야근을 해도 어떻게든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카페에 앉아 그날의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소감을 정리했다.
이 모든 일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지만 집에 와서도 늦은 밤까지 스탠드 불빛에 의존하여 남기는 하루하루의 일기가 조금씩 위로로 다가왔다. '그래,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은 잊자. 괜히 마음에 둬봤자 기분만 상할 일이니까.' 육체적으로 고됐지만 적어도 내가 원해서 하는 만큼 보람은 있었다. 한 편씩 쌓여가는 내 삶의 역사를 돼 돌아와 읽을 땐 눈이 시큰거릴 때도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선 무엇보다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틈나면 여행을 다녔다. 스마트폰의 여유 배터리는 필수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말없이 동행할 친구도 한 명 미리 섭외해 뒀다. 그의 이름은 책. 여행지로 떠나는 설레는 마음, 그 기분을 함께 만끽하는 덕분에 즐거움은 배가 됐고 그 기운으로 틈틈이 글을 쓸 수 있을 건만 같았다.
그러나 여행의 끝은 현실로 돼 돌아와야 여행인 법, 늘 여행지에서 느꼈던 낯 설움과 친해질 즈음 다시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한 번은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공모전을 준비해 볼 생각도 했었다. 그동안 저축해 둔 돈으로 몇 개월 정도는 생활을 할 수는 있었으니, 오로지 글 쓰는 일에만 전념해 보고 싶었다.
욕심과 욕망 사이에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목표를 찾기 위해 방황하며 보내던 시간이었다. 제대로 된 실력은커녕,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제 막 글을 좋아하기 시작한 내가 섣불리 가까이한다는 건 실패한 짝사랑에 그칠까 두려워 전업 작가라는 꿈은 잠시 미루었다.
그러면서도 일상에 일어나는 일을 계속 썼다. 나중에 알고 나니, 그게 바로 수필이었다. 내가 남긴 기록을 누군가 읽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공감이었고. 직장과 도서관을 다니며 어떻게든 매일 한 페이지라도 쓰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쌓인 원고를 모아 공모전에 내기로 하고 퇴고를 병행했다. 17년도부터 시작된 모든 내 일상의 흔적. 세어보니 자그마치 1000편이 넘는 수필, 시였다.
19년도 즈음 공모전 주최했던 A 기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수많은 공모전에서의 탈락과, 출판사의 거절, 끝에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글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이번 한 번만', '이번이 마지막', '정말 진짜 마지막'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던 주문과도 같았던 말들을 뒤로하고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늘 아침에 일어나 책상 위에 써 놓은 문구를 읽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만약 내가 중간에 포기했다면 나는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실패와 쓰라린 경험들이 모두 모여 글의 영양분이 되었으니까.
아직까지 대 서사 소설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일렁이는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의 즐거움, 기쁨,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소재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최종 목표는 슬픔과 분노, 비애, 고통 등의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의 시간은 지나가면 돼 돌릴 수 없기에 그 조차도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예전엔 낯선 경험이 많아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 여행을 자주 다녔다면, 이제는 하루를 더 낯설게 바라본다. 그 안은 신기하게도 매 순간이 새롭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손톱의 길이, 머리카락, 수염도 어제보다 길어졌지 않은가. 하루에 문학이 있고, 삶 자체가 축약되어 있었던 것이다.
'흔들릴지언정 넘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넘어지지 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더 세게 흔들바람을 찾으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처음엔 힘겨워하겠지만 어느 시점엔 더 강하게 내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을 테니까. 각자의 평범한 삶에 녹아 있으면서 자신을 흔드는 바람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용기라는 말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