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블로그에 시를 몇 편 올렸다. 매일 하루 하나의 시. 주변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에 관해 썼다. 쓰면 저절로 알게 된다. 소중한 건 어떤 특별함보다 평범함에 더 많이 숨어있었다는 걸. 그동안 나는 놓치고 있었다는 것도.
그래도 영 봐주지 못할 만한 글은 아니었나 보다. 블로그에 방문하는 몇 사람이 ‘좋아요’와 공감된다며 댓글도 남겼다. SNS를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데, 글 쓰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구나'하는 마음에 쉬지 않고 쓸 수 있었다. 내 이름으로 시집 하나 낸 것도 아닌데, 가끔은 진짜 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썼다. 나에겐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운 놀이였다.
한 번은 지방에서 거주하시는 60대의 중년의 여성이 남긴 인사말이 인상 깊었다. 요약하자면 ‘시는 어떻게 쓰는가’였다. 물론 내가 쓴 시를 읽고 난 소감도 잊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우선 써야지요. 계속 쓰다 보면 저절로 압니다. 어린아이가 걷기 위해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걷기를 도전하는 것처럼, 계속 쓰면 자연스럽게 늡니다.”
"그럼 어떤 걸 써야 할까요?”
"지금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요. 양팔을 벌려 손에 닿는 모든 존재에 관해 쓰세요. 자신으로부터 반경 1m 안에 있는 모든 존재에 관해 쓴다는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제 주변에는 특별하게 쓸 수 있는 내용이 없는데요?”
"잘 찾아보셨어요? 어제는? 오늘은? 지금은요?”
"아니, 특별히 재미있는 기억도 없고, 작가님처럼 글 쓰는 재주는 더더욱 없어서 하는 말이죠.”
"아…….;”
하루 이틀 건너 댓글의 댓글, 다시 이어지는 댓글의 연속. 나이, 성별, 직업, 사는 곳을 떠나 사람으로서 나누는 글에 관한 이야기. 어쩌면 내가 그동안 글을 쓴 건, 이런 분을 위해 글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대답해 줬다.
다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가슴에 돌을 하나 얹어놓은 기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라고, 충고하거나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는 수준도 못 된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책을 하나 선물 드려도 될까요?'라는 말과 주소를 물었다. 혹시나 했다. 나한테 물었는데 뜬금없이 책 선물이라니. ‘대답하기 싫어서 그런 거냐고 핀잔을 듣기라도 하면 어쩌지?'.
기우였다. 흔쾌히 승낙했고 고맙다는 말과 주소가 찍혔다. ‘어?. 주소가 지방?, 그것도 완전 시골이네?’
고민 끝에 ‘이은대’ 작가의 책을 하나 선물하기로 했다. <작가의 인생 공부. 22.10.05>. 온라인에서 바로 보낼까 하다가 서점에 들러 정가 그대로 구매했다. 진열대에 선물 포장지를 하나 골라 계산하고 혹시라도 찢어지지 말라고 뽁뽁이까지 겹겹이 둘렀다. 얼굴도 모르고 인터넷에서 만난 사이다.
그게 전부다. 그렇지만 인생 친구 한 명 만든 기분이다. 그것도 저 멀리 내가 아직 가보지도 않은 전라북도 산골의 어딘가에 있는 할머니 친구. 이왕 하는 김에 손편지까지 하나 더 했다. ‘책을 선물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만난 적 없는 사이지만, 그동안 저희 사이가 한 참이나 가까워졌네요. 읽으며 행복을 기분 좋은 날 되세요.’
사람 손 붙잡고 물가에 데리고 가 ‘여기 경치가 좋아!’라며 보여 줄 수는 있어도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다. 마시기 싫다는 물을 떠먹여 줄 수도 없다. 나는 길잡이 역할만 할 뿐, 엄마가 아니다. 옆에서 든든히 지켜주는 아빠도 아니다.
미군에는 유명한 명언이 있다. ' We are not babysitters'. ‘우리는 베이비시터가 아니다.!’라는 문장이다. 전 세계에서 현존하는 군 사력 중 가장 강력한 곳인 미군의 군인 한 명을 양성하는 데에는 강한 체력과 전투기술을 가르치는 교관은 있어도 당신의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베이비시터는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하루 두 편도 쓴다. 아무리 직장 일이 바쁘더라도 점심시간에 하나, 퇴근 후에 거실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또 하나. 체력이 되면 늦은 밤에도 쓴다. 대부분이 오늘, 혹은 수십 년도 더 된 과거의 기어이다. 창피한 일도 있었고 눈물 흘릴 만큼 기쁘고 행복한 기억도 많다.
가슴 뛰는 일도 있다.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다가 사려니숲길을 가는 도로에서 전복된 차량을 발견한 적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제주도 날씨가 원래 변덕이 심하지만, 그땐 유독 심했다. 워낙 외진 길이라 지나는 차도 없고 나 혼자뿐이라 ‘어쩌나…….;'만 하고 있었는데 도로바닥과 차 지붕이 맞닿아 있는 사이에 사람이 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다. (나중에 보니 내가 운전한 차는 길옆 배수로에 반쯤 걸려있었다.) 두 명이 있었다. 다행히 안전띠를 매고 있어 거꾸로 매달려 있느라 힘들어했지만, 구조하는 데 별 무리는 없어 보여 팔을 뻗어 둘을 꺼냈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에 미끄러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분명했다.
다행히 특별히 외상은 없다고 했다. 차에 우산을 가져다가 씌워 119를 기다렸다. 그다음 특별한 건 없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쾌유를 빈 뒤, 내 갈 길 갔다. 특별한 사례는 거부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그다음 해까지 SNS를 이용하여 두 사람과 연락했다.
그날의 일을 계기로 제주도 여행에 있었던 일화를 모아 수필집을 써냈다. 세상 한 권의 책. 출판사를 찾아 한 권만 냈다. 집에 누가 찾아올때면 자랑스럽게 책을 보여준다. '이런 일이 있었고 그 뒤로 작가가 되기로 했다'며 이야기를 나눈다. 다행히 듣는 사람 중에 신기한지 더 재미있는 일 없었느냐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쪽이 더 많다. 그럴 때면 한낱 지워질 뻔한 내 기억을 글로 옮겨 놔서 다행이었다. 내가 남겼기 때문에 사실이 된 일이고 내 삶 속 특별한 일 이 많았던 시간이 되었다.
글쓰기란, 내 삶을 흥미 있게 만들어주는 놀이다. 기분 탓인지 쓰지 않았을 때 보다 즐거운 일이 더 많아졌다. 시를 쓸 땐 읽는 사람의 마음 한구석 담겨있는 기억의 상자를 열어보게 만들기 위해 단어 하나까지 신경 쓴다. 한 번은 선배 중 한분 께서 ‘너의 시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나더라…….;’라는 말도 들었다.
글 쓰는 방법은 별것 없다. 눈물 콧물 나도록 매콤하게 쓰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노래할 땐 상대를 떠올릴 수 있도록 달콤하게 써야 한다. 설령 그 일이 조금 힘들지 몰라도 읽는 사람이 그 순간만큼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 그것만이 작가의 의무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