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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Nov 20. 2024

우리는 왜 써야 할까?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 C가 있었다. 성격이 워낙 외향적이어서 주변에는 늘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 나를 찾아와 커피 한 잔을 요구했다. 평소에도 격 없이 차 한잔에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인 사이었었던 까닭에 흔쾌히 자리를 내주었다.


"선배님, 선배님은 퇴근하면 뭘 합니까?"

"나? 보통은 도서관을 가서 글을 쓰지. 몇 년 동안 여기저기에서 글감을 얻어다가 A4용지에 가득 써놓은 글이 많거든. "

"예? 대충 듣기는 했지만, 매일 갑니까? 그게 재미있습니까? 글쓰기, 그거 돈은 됩니까?. 가사에 도움이 됩니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의 대사 성대모사. '영화 그거 돈은 됩니까? 우리 순양에 도움이 됩니까?)"

"돈은 안되지. 부 수입으로 공모전이나 출판사 의뢰를 받아 쓰는 칼럼 정도라서"

"예? 그래도 대단합니다?. 글쓰기로 돈을 벌긴 하셨네요?"

"돈이라, 그렇지 돈은 돈이니까. 맞네 돈을 벌긴 했네'

"근데 저는 뭘 해야 합니까?."

"응?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아니 퇴근하고 요즘은 할 일이 없어서 자꾸 술만 마시게 됩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어제는 팀장님께서 집에 혼자 있다고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하셔서 같이 갔다가 3차까지 갔습니다. 그것도 이번주에 두 번이 나요."

"너는 퇴근 후에 뭘 할지 고민인 거야, 술을 안 마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거야?"

"음 퇴근 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핵심이겠네요."

"책 읽어. 할 일없으면 책! 책 좀 읽어. 내가 얼마 전에 선물한 책은 읽었어?"


"아, 그거. 데미안의 제목이 뭐더라...?

"아니. 책 제목이 데미안이라고.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고"

"아. 하하하하하. 그럴 수도 있죠. 제가 좀 무식합니다."

"아니 무식하다고 말한 게 아니라. 헤르만 헤세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는 거야. 지금 너랑 마주하고 앉아서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너도 백 년 전에 같은 고민으로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거지. 사람의 고민은 하나야. 행복.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접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것을 우리는 노력이라고 부르지"

"아...... 독서가 이야기를 듣는 거였군요."


 이어 후배에게 내가 책 읽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작가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강제로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가?' 등의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 나를 찾아온 적 있다. 한 참을 우울과 비난, 분노에 휩싸여 있다가 제 풀에 지쳐 쓰러져 있을 때였다.


물론 이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머리 아픈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노력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과 하지 못한 사람으로 나뉠 것이고 그 결과는 오랜 시간 후에 판가름 난 다는 걸 어렴풋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


 지금 사용 중인 노트북은 5년째 사용 중이다. 아마도 내부에 보관된 문서를 하나씩 세어보면 마침표를 찍지 못한 글이 수 천편은 족히 넘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등의 질문형 글이 대부분이었을 듯.

한 참 후에는 이 과정을 '모르겠다'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제2의 인생을 준비했지?', '도대체 저 사람은 어떻게 성공했지?'의 질문으로 바꿔봤다. 평범한 회사원이 겪을 만한 번-아웃 증후군을 극복한 사례에 대해 찾아 읽어 보기도 했고, 한 참 운동에 빠져 있을 땐 나와 비슷한 운동을 하는 사람이 집필한 책을 찾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질문의 해답을 '0'의 상태에서 찾기란 어려울 수 있다. ' what'이라는 질문의 대답은 무엇이든 될 수 있듯 삶이라는 유한한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답답함만 늘어갈 수밖에.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How'. '대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로. 그 사람의 행동, 생각, 일상을 훔쳐보는 것이다. 그리고 따라 하는 거고, 필요하다면 나의 삶에 대입해 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독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독서광이었다는 사실도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뒷 받침 하고 있었다.


 다음은 글 쓰기를 시작한 계기다.  글쓰기는 what의 해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나도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필요한 key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미 남이 사용한 key는 내가 다시 사용할 수 없다. 그건 모방이고 내 삶이 아니다.


 학창 시절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그림일기는 필수였다. 부모님과 여행 간 기억, 친구들과 저녁 늦게까지 축구를 했던 기억, 자전거 타다 넘어진 기억까지. 그때 남겨놓은 낙서, 행복, 기쁜 순간 남겨놓은 글은 모두

겉모양만 다를 뿐 결국에는 '나'라는 사람이 기록한 역사. 즉 일기인 셈이었다.


 17년도부터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행복의 정의. 행복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질문이 더 구체적이고 많아졌다.

'책 속의 저자는 이런 일을 했는데도 행복했구나' '이 사람은 슬픈 일을 겪었음에도 금방 극복할 수 있었구나, 방법이 뭘까?' 어린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면 어른은 아니다. 어쩌면 본인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엄마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아이가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는 게 대부분인데.


구체적인 질문이 많아질수록 머릿속 생각은 넘쳐흐른다. 그럼 자연스레 손이 움직이고 처음에는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 그다음은 A4용지 여백에 한 줄 두줄. 그렇게 몇 개월. 질문과 해답을 찾게 되는 시간. 우리는 어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생각의 크기가 아이보다 넓거나 더 깊게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자신의 아이에게는 공부해라, 책 읽어라 하면서 왜 어른은 공부하지 않을까? 아이에게는 일기를 쓰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그렇게 시작된 나의 글쓰기가 올해로 만 5년 차. 처음에는 지역 신문사에 기고를 시작했다. 겨우 1000글자 내외의 신문 한 구석이었지만 나에게는 10만 자 이상을 쓰고 지운 나날의 마지막날이었다. 글의 제목은 '스몰스텝전략. 작은 반복의 힘'. 어쩌면 이 글이 내 생각을 넓히는데 신호탄이었을지도.


무조건 글을 쓰고 작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잘하는지 종이에 나열해 보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 하지 못 하는 일, 정말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 등을 생각해 보라는 것.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겪었음에도 잘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찾아보라는 것뿐.


 유튜브에는 김미경 작가가 있고 김창욱 교수가 있듯 책의 저자 또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전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존경스러운 선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성공한 이야기, 사례, 극복과정을  말로 하면 그건 꼰데다.  글로 표현하면 작가고. 그러니 쓰라는 거지  전문 작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쓰면 쓸수록 자신의 생각은 넓어지고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점차 많아질 것이다. 그러니 읽고, 써보는 습관을 한번 가져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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