찝찌름하면서 고소하다. 입에 하나만 들어가면 아쉽고 두세 개가 한꺼번에 들어가면 새우깡의 감칠맛이 떨어진다. 새우깡은 맥주 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퇴근 후 호프집에 들르면 기본 안주로 간장종지만 한 그릇에 여나무개 나오는 새우깡의 감칠맛은 더하다. 갈증 나고 배고플 때 새우깡이 들어가면 입은 더 마르고 물이 먹힌다. 그때 시원한 500cc 맥주 한잔은 사막여행 중에 신기루로 보이는 오아시스만큼 반갑다.
내가 아는 후배 한 명은 소주를 정말 좋아했다. 나이도 어린애가 소주만 마셨다. 수업만 끝나면 학교엔 안 보이고 어쩌다 학교 앞 술집에 가보면 어김없이 취해있는 후배였다. 한 번은 MT를 가서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게임을 하는데 후배가,
“선배 날도 더운데 운동장에 있지 말고 저 앞에 슈퍼 가서 술이나 한잔해요”
”애들이랑 같이 왔는 데 있어야지“
”선배 있으면 애들이 더 불편해해요. 따라와요. “
시골 동네 연쇄점 앞 툇마루에 앉아 박스에서 소주 몇 병 하고 출시가 언제인지도 모르는 먼지 쌓인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나왔다.
”시원한 맥주나 한 병 가져오지“
”선배! 술은 소주죠“
하곤 종이컵에 소주 한잔을 따라주었다. 나는 첫 잔을 입에 대자마자
”난 안 먹어. 소주가 뜨거워“
더운 여름 양지바른 슈퍼 담벼락에 쌓여있던 박스 안 소주는 뜨겁게 데워져 있었고 빈속에 강소주는 내 입맛에 정말 아녔다. 후배는 맛있다고 소주 한 병을 게 눈 감추듯 먹고서는
”오늘은 술이 안 받네요“ 하곤 혼자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해가 지고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는데 후배가 안 보였다. 궁금해 낮잠 자던 방 안에 들어가도 보이질 않았다.
”아까 나랑 있었는데 안보이다“ 하고 동기에게 물어보니,
“방에서 속 아프고 머리 아프고 토하더니 병원 간다고 갔어요”
그 후로 후배를 술집에선 본 기억은 없다. 뜨거운 소주를 먹고 체해 엄청나게 고생하고 술을 끊었다고 한다. 쓰고 뜨거운 소주 안주로 먹은 새우깡은 뜨겁고 퍽퍽했다.
내가 처음 새우깡 맛본 건 할머니와 시골 살 때였다. 70년대만 해도 하남시의 지명은 광주군 동부면이었다. 신장 읍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일 년에 가을 운동회를 동네잔치처럼 크게 열렸다. 학생들만의 운동회가 아니라 동네잔치였다. 할머니도 운동회를 좋아하셨다. 키가 유독 크신 할머니는 치마를 질끈 묶고 뜀박질도 잘하시고 동네 사람들이 참가하는 종목에 어김없이 참가하셨다. 그중에 하얀 광목천으로 만든 통에 낚시를 집어넣고 휘휘 졌다 들어 올려 낚싯바늘에 상품이 걸리면 상품을 챙기는 게임이 있었다. 할머니는 어린 손주에게 선물 하나 주려고 갑자기 나가서 낚싯대로 광목천을 휘휘 저으시더니 뭔가 걸리셨는지 낚싯대를 하늘로 휙 올리셨다. 그러자 낚싯바늘에 투명한 비닐봉지가 하나 딸려왔다. 할머니 지는 엄청나게 좋아하시곤 투명한 비닐봉지에 포장된 과자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생생히 기억나는 건 기막힌 과자 맛이 나의 기억에 강렬해서이다. 과자 이름은 바로 새우깡이었다. 어려서 새우깡 포장지는 투명했고 포장지엔 빨갛게 잘 익은 허리가 꼬부라진 새우 한 마리와 궁서체로 쓰인 새우깡이란 글씨가 적혀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문방구엔 새로운 새우깡이 등장했다. 주머니가 궁색한 학생들을 위해 미니 새우깡이 출시되었다. 그때 돈으로 50원에 팔았는데 일반 새우깡 반절 크기였다. 아버지 구두도 열심히 닦고 엄마 심부름도 해 등굣길에 문방구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사 들고 학교에 갔다. 수업 시간에 책상 속에 넣고 선생님 몰래 아이들과 나눠 먹던 새우깡 맛은 최고였다. 바사삭 거리는 소리가 선생님에게 들킬까 봐 입속에 넣고 스르륵 녹여 먹는 새우깡의 고소한 맛은 한 움큼씩 집어먹는 새우깡 하곤 비교 불가였다.
대학교 4학년 땐 과 아이들과 단체로 이천에 있는 OB맥주 공장으로 견학하러 갔다. 관광버스를 타고 공장에 도착하니 엄청나게 큰 공장에 사람들은 별로 보이질 않았다. 나중에 공장장님에게,
“수도권에서 먹는 OB맥주를 여기서 만드는데 사람이 별로 없네요” 하고 묻자
“요즘은 전 공정이 자동화되어 실제로 생산라인엔 몇 사람 없다” 했다.
아무튼, 공정과정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는 견학이 끝나고 맥주 시음 장소로 간다는 말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어 제일 먼저 시음장으로 달려갔다. 맥주 공장에선 견학 후 맥주 시음을 하는데 생산라인 하나를 돌려 시음 전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유행하던 독일식 호프집 콘셉으로 시음장은 만들어져 있었다. 둥그런 원목 탁자에 브라운 계열의 나무 의자에 빨간 벨벳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진한 생맥주 한 잔씩 했다. 안주는 각자 가져다 먹으라고 작은 접시를 테이블당 하나씩 줬는데 시음장 한편에 엄청나게 큰 누런 박스에서 가져다 먹으면 된다고 했다, 우르르 달려가 박스 안을 보니 새우깡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엄청나게 큰 새우깡 번들 상자를 처음 봤다. 농심에서 공장 시음용 제품으로 주문해온 거라고 했다. 나와 동기 몇 명은 진한 생맥주를 양껏 먹고 흥이 올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신나게 놀다 술을 한 방울도 못 드시는 교수님한테 혼났다. 그다음 날 나는 연구실에 가서 교수님에게,
“교수님 OB 공장에 취직하려면 어떡해야 하나요?”
하고 물으니
“어제 다녀온 게 맘에 들었니?”
“네! 술 만드는 일도 재미있을 거 같고 저는 서울보다 지방에서 살고 싶고 좋은 건 맥주도 공짜로 먹을 수 있어 너무 좋을 거 같습니다”
하니 교수님은 웃으시면서 공채가 생기면 알려줄게 하셨다. 하지만 그 이후 OB 공장의 사원 모집은 한동안 없었는지 나와는 연을 맺지 못했다.
새우깡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게 1971년이니 50년이 넘은 장수 과자 브랜드이다. 인기가 많으니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과자다. 아류작인 양파 깡과 고구마 깡이 있었지만, 새우깡의 아성을 무너트리지는 못했다. 쌀새우깡과 매운 새우깡도 출시되었지만, 이 또한 오리지널 새우깡의 아성을 무너트리지는 못했다. 새우깡의 CM 송처럼 ”손이 가요 손이 가는 과자처럼“ 편하고 매력적인 게 유행도 타지 않고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심심해도 새우깡, 술 한잔할 때도 새우깡, 마트 과자 판매대에 가면 별생각 없이 한 봉지 집는 새우깡처럼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손이 많이 타는 만큼 피곤하고 바쁘겠지만 싫은 내색 없이 응대하고 성격이 편해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얼굴에 속내가 드러나니 새우깡이 되긴 틀렸다,
우스갯소리로 ”빚쟁이 만나는 날은 비 오는 날 만나라“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리는 빗속에는 음이온이 많아 사람이 차분해진다고 한다. 오늘같이 비가 죽죽 내리고 한없이 늘어지는 휴일이면 유독 새우깡 생각이 난다. 달달한 웨하스나 구수한 에이스도 좋지만 잘 구워진 소금에 구워 찝찌름하고 고소한 새우깡이 심심한 입을 틀어막기엔 안성맞춤이다. 오래간만에 새우깡 한 봉지 사다 학창 시절 먹은 뜨거운 소주가 아닌 먹고 싶었던 시원한 맥주 한 캔과 새우깡 안주 삼아 낮술 한잔에 새우깡 같은 사람 흉내나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