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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글방 Jul 21. 2023

지리산 산청일기(1)

산청여행 6일 차


산청 여행은 아이 방학이 예년에 비해 일주일 빠르다는 걸 뒤늦게 알고 갑자기 잡은 일정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지리산자락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슬슬 둘레길도 걷고 자연을 즐기며 보내면 좋을 것 같았다.



남편은 중간에 이틀 정도 합류하기로 하고 출발은 아이랑만 하려고 했는데 폭우 속 운전이 걱정돼 함께 내려왔다. 여행을 미뤄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미 숙소도 예약해 뒀고 비는 7월 내내 계속될 거라서 아이 방학식날 산청으로 향했다.     


운전 중에는 걱정했던 것보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중간중간 폭우 구간이 있긴 했지만 산청에 가까워질수록 비가 줄었다. 운무 가득한 지리산자락에 경호강을 앞에 둔 펜션을 아이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독채 펜션은 규모가 작았지만 복층이라 다락방처럼 아늑한 침실을 갖고 있었다. 앞에는 작은 수영장이 있는데 깔끔하게 관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지리산애펜션


펜션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대로 산청 IC 인근 마트에서 지리산 흑돼지를 사서 저녁으로 구워 먹었다. 근래 먹어본 고기 중 손꼽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어쩐 일인지 같은 마트에서 두 번째로 사다 먹은 고기는 그보다 한참 못 미쳤다)     


아이가 산청 오기 전부터 첫날은 삼겹살과 컵라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미리 챙겨 온 스낵면도 먹었다.      


첫날은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 맛있는 지리산 흑돼지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지나갔다.      


침실이 하나뿐인 복층 구조라 밤사이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도 아이는 늘 그렇듯 6시에 일어나고 나 역시 그때 깨서 아침을 맞았다.


산청에서의 둘째 날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침에 간단히 참치마요 주먹밥을 만들어 먹고 11시 체크아웃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숙소 예약할 때 연박이 안 되어서 하루는 다른 숙소를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작 10분 거리 다른 숙소로 이동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일단 남편이 9시부터 6시까지 오래전 예약한 온라인 강의를 듣겠다고 함양 스터디 카페로 가면서

차를 가져가서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었다.


멀지 않은 곳이니 택시를 타고 간 후 숙소 옆 동의보감촌에서 하루종일 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겼다.     


일단 택시에 휴대전화를 두고 내렸다. 택시 기사님 번호도 몰라서 택시를 불러준 펜션 사장님께 연락해 택시비를 드릴 테니 숙소에 가져다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사이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근처 족욕카페에서 아이와 족욕을 하고 숙소에 가 다행히 휴대전화가 돌아와 있었다.


택시비를 계좌로 입금하고 배가 고프다는 아이와 함께 동의보감촌 카페에 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파스타와 돈까스가 있어 맛있게 먹었다.      




동의보감촌은 이번 산청 한 달 살기의 필수 여행코스다.

산청 항노화 엑스포가 9월 15일부터 시작되는 곳이라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하고 볼거리도 많았지만 비가 오는 데다 아이는 오래 걷는 걸 힘들어해서(사실 내가 더 그렇다) 체크인 시간도 안된 숙소로 돌아갔다.


어쩐지 몹시 피곤한 기분이 들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숙소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내내 짜증을 냈고 비 탓인지 컨디션 탓인지 나 또한 머리가 아프고 기분이 점점 가라앉았다.     


남편이 그날 온라인 강의 듣는 건 알았지만 하루종일 듣는 것도, 차를 타고 함양까지 가는 것도 몰랐던 상황이라 말다툼도 했다. 아이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기운이 빠진다.


엄마 아빠한테 삐져버린 아이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해 맛집 검색 끝에 지리산 흑돼지가 들어가는 김치찜을 먹으러 갔다. 술을 한 잔 한 남편을 대신해 폭우 속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유난히 피곤한 하루는 길기도 했다.


잠을 자려는데 단체숙박객들이 10시가 넘도록 노래를 부르는 건지 단합대회 하는 건지 머리가 울리도록 시끄러운 함성이 들려왔다.     


7월 14일부터 23일까지 10박 11일 일정으로 산청 여행이 예정되어 있는데 펜션 예약 마감으로 15일과 22일만 다른 숙소를 예약한 거였다.


22일에 또 이렇게 옮겨와서 잠을 못 잘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머물고 싶지도 않고 한 달 치 짐 보따리를 들고 체크인 체크아웃을 여러 번 하기도 귀찮아서 일정을 이틀 줄였다. 구하려면 다른 숙소를 구할 수 있겠지만 성수기 펜션은 2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지금 머무는 펜션은 10만 원대인데 그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지 않은 곳도 그랬다.


그 돈을 들이면서 더 있고 싶지는 않아서 창원 호텔로 바로 넘어가도록 일정을 바꿨다.   


남편은 바로 올라갔고 아이와 나는 이래저래 삐걱거렸다.

 

요 며칠 계속 비가 와서 그런지 아이는 유난히 짜증을 부렸다. 나 역시 폭우로 인한 인명피해에 마음이 내내 무거워서 예민한 상태였다.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기분으로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와중에 산청에 온 지 4일 만에 처음으로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청 <수선사>

우리나라에서 연못이 가장 아름다운 사찰이라는 수선사에 갔다. 사찰부지 땅을 팠더니 물이 나와 자연스럽게 연못이 되었다는데 독특한 나무다리도 연못 위 연꽃들도 아름답다. 더 오래된 사찰인 줄 알았는데 1993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한 폭의 그림같이 개성 있는 사찰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찾는, 매체에도 종종 나오는 유명한 사찰이 되었다.


산청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연관 검색어가 수선사일 정도다. 주지스님인 여경스님의 애정과 안목이 돋보인다.



선사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생선구이 정식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왔다.     


나의 권유도 있었지만 피곤했는지 아이는 바로 낮잠을 잤다. 그 1시간 동안 산청에 온 후 처음으로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낸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숨처럼 몰아쉬고 있던 숨을 의식하고는 고르고 낮게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잠이 오지는 않아 끊어보던 드라마도 마저 보고 미뤄둔 연락들을 주고받았다.      


잠깐이라도 쉼이 있는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자 한결 너그러워진 마음이 느껴진다. 외부의 상황에 이렇게 쉽게 좌우돼서야. 몸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고 몸이 불편하면 마음도 거울처럼 불편해진다.



여행 오기 전, 아이에게 엄마는 꼭 한 시간 동안 작업을 해야 하니 그 시간은 혼자 보내야 한다고 약속을 하고 떠났다. 작업은 하루 한 시간, 이제 열한 살 아이는 내게 그 시간을 온전히 주진 못해도 함께 앉아 숙제를 할 정도로는 자랐다.


아이가 숙제를 하고 내가 일을 하는 시간, 여전히 내게 숙제를 물어보기도 하고(물어보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너무 하기 싫어' '어려워' '최악이야' 등등 혼자 중얼거려서 집중력을 흩어놓기도 하지만 그만하면 괜찮은 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남은 시간도 작업할 수 있는 한 시간, 한 장의 책 읽을 여유만 주어진다면 다른 욕심을 안 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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