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오면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 원래 시간은 익숙할 때 더 빨리 지나간다는데 낯선 공간 낯선 지역인데도 왜 이렇게 빨리 지나는지 모를 일이다.
남사 예담촌
아이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여전히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아이는 혼자 이것저것 끄적이거나 그림을 그리고 7시 즈음 배가 고프다고 하면 간단한 계란밥이나 참치 주먹밥 같은 걸 과일과 함께 내준다.
아침 먹은 후 각자 조금 쉬다가 아이는 숙제를, 나는 글 작업을 한다. 지금 이 글도 그렇게 쓰는 것이다.
평일 하루 1시간 글쓰기를 지키고 있다. 매일 책 읽기와 30초 플랭크도 마찬가지다.
주말에는 아이가 숙제를 안 한다는 핑계로 나도 짧은 쪽글만 쓴다. 지난주는 산청 내려온 첫 주말이라 더 그랬고 이번 주말 역시 창원으로 이동해야 해서 집중이 어려운 날엔 한 줄이라도 쓰면 된다는 마음이다.
지리산애펜션
이틀째 날씨가 좋다. 비가 올 때는 안 좋은 소식도 많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일단 날이 좋으니 아이와 어디 다니기에도 수월하다.
비가 많이 올 때도최소한의 식사를 하거나 장을 봐야 할 때는 장대비 속에서 운전을 해야 했다.
그런 날 차가 다니지 않는 좁은 산속 도로를 운전하면 무척 긴장되는데 그래서인지 어제는 도로가 끊겨 운전하던 차가 그 아래로 뚝 떨어지는 꿈을 꿨다.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안 좋았다. 비 탓인지 생각보다 더 많이 긴장한 모양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길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지도만 보고 운전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작년 이맘때는 고성 바다에서 몇 시간씩 놀던 아이인데 비가 오는 내내 숙소에서만 지내고 멀지 않은 여행지를 잠깐 둘러보는 지금이 어떤지 슬쩍 물어본다.
펜션을 좋아하고 수영장에도 매일 들어가지만 지하수라 물이 너무 차갑기도 하고 혼자 놀다 보니 금세 지쳐 30분을 채 못 넘기니 이래저래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너무 좋다고, 재밌다고 해서 마음이 놓인다.
아쉬운 점은 생각보다 책을 못 읽고 있다는 것인데 산청에 있는 동안에는 매일 한 줄씩 짧게 읽는 책 말고 두 권 정도를 정독했다.
그중 한 권이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내 일상>이다. 브런치 이웃Starry Garden 작가님의 에세이인데 텀블벅 진행하시는 걸 알고 신청했다.
손편지도 써주시고 북토크에 초대해주셨는데 산청 여행 일정이 바뀌어 아쉽게도 북토크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조용히 읽기 좋아 산청에 있는 동안 가장 오래 본 책이다.
열한 살이 되어 제법 자란 아이는 숙제도 알아서 하고 책도(판타지 책만 가져왔지만) 혼자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나는 아이 옆에서 스마트폰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방학 때 집에 있으면 워낙 나가는 걸 싫어하는 아이라 둘 다 많이 늘어지는 편인데 그래도 여행 와 있으니 하루 한 곳 여행지를 가고 식당과 카페를 간다.
지리산 둘레길도 시도했는데 내가 먼저 일사병이 걸릴 것 같아서 둘레만 조금 밟고 다시 돌아왔다.
땡볕 구간을 채 다 지나지 못한 건데 산속 길로 접어들었으면 조금 나았을 것이다. 그래도 계곡과 나무 사이를 지날 때는 잠시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봄이나 가을, 날이 좋을 때 다시 걸어보고 싶다.
우리의 일정은 딱 그 정도다. 여행지 한 곳, 식당 한 곳, 그리고 카페에서 책 읽기.
여행지를 검색해 보고 아이의 의견을 묻고, 식당이나 카페를 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아이 뜻대로만 하는 건 아니지만 함께 결정하려고 한다.
아이의 일기. 날짜를 잘못 써서 좀 뒤죽박죽이다
간단한 일기도 쓴다. 일기장 한 귀퉁이에 작게 그림을 그린다. 아이가 일기 쓰는 걸 싫어해서 내가 먼저 써야 옆에 같이엎드려 쓴다.
숙제는 잘하고 있는지 따로 확인하지 않지만 일기는 썼으면 싶어서 색연필을 꺼내놓고 함께 별 내용도 없는 일기를 써본다. 그래도 지나고 나면 이 또한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하면서.
그저 별 탈 없이 잘 놀고 잘 쉬고 잘 먹고, 엄청나게 대단한 경험은 아니어도 엄마와 손 잡고 걷는 산책길의 기분 좋은 바람을 기억해 주길, 카페에서 함께 본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길, 밥집에서 연신 맛있다며 엄지를 척 올렸던 따끈한 부추전 같은 걸 떠올려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