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는 역대급을 찍었다는데 나에게 얼마나 늘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항상 아이와 밥을 먹으면 원하는 식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내게 아이에겐 밥을 차려주고 나는 닭가슴살과 당근을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더니 정작 본인은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출근하면 매일 10분이라도 헬스를 하며 인증샷을 보내오던 남편은 내가 밀양에 있는 동안 단 하루도 헬스장에 가지 못했다. 아이를 등교시켜 주고 출근해서 급하게 할 일을 처리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나면 하교 시간이 빠듯하니 그럴만했다.
그 사이 남편의 수익은 4분의 1로 줄었다. 코칭과 영업 일을 하는 남편은 시간을 들인 만큼 버는 건 아니었지만 적게 일하면 아무래도 수익이 확 줄곤 했다. 일을 마치면최소한의 집안일과 육아만 하고 대부분 누워 지내는 내가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편은 밖에서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니 집안일도 육아도 나보다 훨씬 잘하는 엄마들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걸까.
고성에서 3개월 있을 때는 밀양 여행과 육아 패턴이 달랐다. 아이의 방학 기간을 포함해 한 달 반 정도는 내가 육아를 했는데 거의 격주로 집에 가거나 아이가 고성에 내려오는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긴 시간 아이를 돌본 건 남편도 처음이었다.
남편 혼자 아이를 케어한 건 아니었다. 며칠 동안 아이와 밀양에 내려오기도 했고 내가 없는 동안 독서모임과 중요한 미팅이 있는 주말에 아이를 친정에 2박 3일씩 보내고 중간중간 언니에게 다른 도움도 받았다. 그럼에도 힘든 건 당연한 일이다.
한 달도 안 돼 부쩍 늘어난 새치와 체중이 남편의 고단함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그런 한 달을 수십 번 보내왔기에 힘들었구나, 공감하면서도 또 그렇기에 완전히 공감할 수만도 없었다. 나의 10년이 힘들었듯 남편의 지난 10년도 경제적으로 큰 책임감에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계속 서로에게, 아이에게 맞는 일상과 양육 그리고 일을 모색 중이다.
밀양에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엄마가 물어보셨다.
“밀양 다녀와서 좋아? 이제 좀 힘이 나는 거 같아?”
일할 때가 아니면 일상의 대부분 늘어져 지내는 나를 아는 엄마는 이제 몸을 좀 꼼지락거릴 힘이 생겼는지 궁금해하셨다.
“아니, 별로. 다녀오고 일주일 동안은 화가 안 났는데 이제 화도 나고 몸도 너무 피곤해.”
수화기 너머 어이구, 하는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자기 위안하듯 말했다.
“그래도 거기 있으면서 좋았으면 됐지. 거의 한 달 가까이 있으면서 좋은 사람들 만나고 좋은 데서 지내고 맛있는 거 먹고 책 보고. 글은 조금밖에 안 썼지만.”
그래, 거기서 좋았으면 됐다. 여행의 효과가 며칠이나 갈까 궁금했지만 일주일도 채 가지 않아서 스스로 약간 실망한 참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그 말을 하면서 기분이 좀 나아졌다. 밀양에서 느꼈던 그 좋은 감정, 그 기억은 남는 거라고.
김영하 작가가 아이들이 여행에 대해 기억하지 못해도 그때의 감정은 남는 거라고 했던 말을 떠올려 본다.
아이가 어릴 때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변명으로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 애가 뭘 알겠어, 기껏 미국 일주를 하고 돌아와서 가장 좋았다는 게 인앤아웃 버거였다거나 호주에서 대자연을 경험하고 오며 제일 인상적이었던 게 아이스크림 가게였다는 지인들 아이의 여행 후기를 들을 때마다 어릴 때 데리고 다녀봤자 기억도 못하면서 서로 고생스러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 무지 탓에 아이에게 기억할 수는 없어도 좋은 감정을 느낄 기회를 주지 못해 많이 미안하다. 지금은 기억도 하고 감정도 느낄 수 있으니 그때 못했던 걸 더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아이는 나와 비슷하게 느린 여행을 좋아하고 가던 곳만 가려고 한다. 산청과 창원에서도 너무 그러면 안 될 텐데, 이번에 밀양 한 달 살기 보고서를 쓸 때는 간 곳이 너무 없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밀양 여행 지원금으로 총 1,415,000원을 받았다. 28박에 대한 숙박비(5만 원 곱하기 28박)에 얼음골 케이블카 1인 이용금액인 15,000원이었다. 밀양에는 입장료 없는 관광지가 많은 데다 내가 워낙 숙소와 동네, 카페만 다니다 보니 1인 체험비 가능 금액 월 8만 원 중 고작 15,000원만 사용했다.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하면 배고플 자유도 늦잠 잘 자유도 없으니 일찍 일어나 뭐라도 더 먹으며 어디든 더 많이 가긴 할 것 같다.
아이 방학이 예년보다 일주일 빨리 시작하는 걸 모르고 있다가 부랴부랴 산청 일정을 추가해 방학하는 날 내려가게 되었다. 산청에서 10일, 창원에서 20일로 꽉 채운 경남 한 달 살기가 될 것 같다. 아이는 아마 할머니집에 가기 위해 일주일 정도 일찍 올라갈 것 같고 남은 시간은 나 혼자 보낼 계획이다. 그때는 또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며 늘어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한 달 살기를 일주일을 남겨놓고 해야 할 일이 많다. 바빠서가 아니라 밀양에서 돌아온 후 너무 오래 쉬었기 때문이다.
미리 계획하고 알아보는 편이 아니라 숙소 등 최소한만 찾아봤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지역 정보들을 보면 조금 설레기도 한다. 얼마나 많이 다닐지는 모르지만, 하루 한 곳이라도 가겠지.
학원도 안 다니고 스마트폰도 TV도 보지 않는 아이와 하루종일 집에서 놀고 삼시세끼 고민하는것보다는 그래도 나을 거라고, 위안해 본다.(외식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 여행지에서도 두 끼는 숙소에서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