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빵이나 시리얼을 주지 않고 밥을 차려준다. 그게 아무리 간단한 계란밥이나 주먹밥이어도 꼭 쌀알이 아이 입에 들어가야 마음이 놓인다.
면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우동이나 파스타를 해줄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밥을 주려고 한다.
아이는 분주한 아침에 시리얼을 원하기도 하는데, 가뜩이나 마른 아이에게 밥 아닌 걸주고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먹을 세끼를 차리는 건 하루의 가장 큰 숙제였다. 물론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는 두 끼로 줄어들긴 하지만 코로나 기간에는 학교나 학원 등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아이에게 삼시 세 끼를 차려주다 보면 하루가 다 갔다.
막상 음식 하는 시간이 긴 건 아닌데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밥때가 돌아오곤 했다. 그 시절 아이를 돌봤던 양육자라면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밀양 동래 밀면, 금천가든, 밀양봉쥬르
재작년까지는 아이에게 배달 음식을 시켜주는 것도 드물었고 외식도 자주 하지 않았다. 코로나라 외식이 어렵기도 했지만 그보다 어릴 때도 그랬다. 입이 짧은 아이는 5분도 안 돼 다 먹었다며 밖에 나가고 싶어 했고 사 먹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돈은 돈대로 쓰고 와 밥을 다시 차려줘야 했다.
태어나자마자 입이 짧다는(위가 작다는) 소견을 들은 아이는 여전히 먹는 양이 무척이나 적다. 안 먹는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그 스트레스를 알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는 음식에 많은 신경을 쓰며 꽤 잘 차려주기도 했다. 아이 식기의 무게를 먼저 잰 후 먹기 전 음식량과 먹고 남은 음식의 그람수를 재서 얼마나 먹었는지 차이를 기록한 시기도 있다. 많은 양육자가 그랬겠지만 인스턴트는 주지 않고 유기농으로만 해 먹이려고 하고 외식 안 하고 배달 음식 안 주고...
9살 무렵이었나, 그 모든 것을 다 하기 시작했다. 쓱배송 받자고 이마트에서 식재료를 주문하고 아이 소풍날 문어 만들 때만 쓰던 비엔나소시지도케첩과 함께 내놓고 라면노래를 부를 때는 그것도 끓여준다. 종종 외식도 하고 치킨 먹고 싶다고 하면 못 이긴 척배달앱을 켠다.
예전보다는 많이 내려놓은 상태고, 앞으로 더 내려놓으려고 한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밥시간은 여전히 고민스러운데 밀양에 혼자 있는 동안에는 내 밥만 신경 써도 되니 좋았다.
부산집, 위양 448
숙소 가까운 곳에 비빔밥집들이 있는데 나는 비빔밥을 썩 좋아하지 않고, 밀양에 유명한 돼지국밥은 먹지못하니주로 먹는 게 밀면, 막국수, 냉면이었다.
다른 맛집을 찾아다니자면 먹을 데야 많겠지만 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곳까지 굳이 밥을 먹겠다고 나가는 게 몹시 귀찮게 느껴졌다.
지인과 있을 때는 뭐라도 먹게 됐지만혼자 있는 시간에는 밥 한 끼를위해식당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숙소에는 달걀도 있고 밭에서 캔 감자도 있었다. 냉동실에는 케이크와 떡, 과자도 있고 커피믹스와 우유도 있으니 라떼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라면과 김치가 있었다! 하루 이틀 정도는 마트나 식당에 안 가도 끼니를 해결하기 충분했다.
몸을 5미터 정도만 움직이면모든 걸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머무는 방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인스타에 밀양여행 숙제를 올리고 다른 피드도 구경 다니고, 쓸데없는 기사들을 클릭하고, 내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늘었나 확인하려고 들어갔다가 남의 쇼츠만 잔뜩 보고 나왔다.
게으른 시간이었다. 차라리 마당에 나가 새소리를 듣는 게 더 나을 텐데 창호에 들어오는 햇살에 의지하며 그렇게 배고플 때까지 누워있었다. 아니, 배가 고픈 걸 참아가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 배고픈 시간의 끝에이게 바로 내가원하던거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도 밥을 먹지 않을 자유, 밥을 하지 않을 자유.
세끼 밥에서 벗어나, 육아에서 벗어나, 집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벗어나, 그냥 배고픈 상태로 늘어져 있는 것.
굴림당, 집밥
배고픔을 참아가며 마음껏 게으를 수 있던 시간도 내일이면 끝난다. 집에 가면아이 밥을 준비해야 하고, 그 후에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는 흉내라도 내며 마주 앉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