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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글방 Jun 07. 2023

밀양 한 달 살기 중입니다(3)

늦잠 잘 자유

제.


아침잠에서 깨면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던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시곗바늘이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하다가 새벽 3시에 잠들었고 아침 8시에 잠에서 깼다. 그 정도면 괜찮네, 평소처럼 6시에 깨지 않은 게 어디야. 하지만 여전히 몸과 머리가 무거워서 조금 더 자면 좋을 것 같았다.     


원래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운 편이라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도 눈을 감았는데 3시간이나 잠을 다. 그 사이 연락이 안 돼서 놀랐는지 남편의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외쳤다.


“나 11시까지 잤어! 10년 만에 처음이야.”     


생각해 보니 그랬다. 아이를 낳은 후 지난 10년 동안 11시까지 자본 적이 내 기억에는 없다. 작년에 고성에 갔을 때도, 그전에 작은 작업실을 구해 잠을 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퇴로마을 소은고택


오륙 년 전부터였을까. 아이는 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7시보다 한 시간 먼저 깨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주말이고 방학이고 없었다. 아이는 때로 새벽 5시 반쯤 깨기도 하고 6시 반쯤 깨는 경우도 있었지만 6시 기상이 평균적이었다. 그 습관 탓인지 나 역시 알람 없이 6시에 깨게 된  몇 년이었다. 그 시간이 되면 눈은 떠지는데 몸을 움직이기에는 매일이 너무 고되게 느껴졌다.


보통 1시 정도에 자는 습관이 잘못 들어서 평균 수면이 5시간 정도인 채로 오래 지냈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안 좋은 많은 것이 수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바꾸지 못했다.






고성에 3개월 단기임대를 구해 지낼 때도 그랬다. 3개월의 반은 아이가 와 있거나 내가 집에 가 있거나 했지만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에도 알람을 맞춘 것처럼 6시에 눈이 떠졌다.     



밀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내려온 지인이 옆 방에서 자고 있을 땐 조용히 누워만 있었을 뿐 6시 즈음 눈이 떠지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동안 차츰 늦게 일어나는 날들이 늘어났다. 7시에 일어난 어느 날을 시작으로 혼자 있을 때는 8시까지 잠을 잤다.


잠을 일여덟 시간 잔 날은 기분도 좋고 몸도 개운했다. 지인은 우리가 머무는 고택에 꿀잠 귀신이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다녀간 다른 지인들도 잠을 잘 자는 편이었다. 알람이 울릴 때 안 깬 적이 없다는 후배는 한동안 울리는 알람에 내가 방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잠에서 깼을 정도였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빗소리 등등 한옥에서 듣는 자연 ASMR탓인가, 처음 다녀간 지인과 그런 얘기도 했다. 잠만 잘 자도 하루가 한결 편안하다. 수면은 몸보다 마음에 더 큰 영향을 다. 집에서도 모든 일에 한층 관대해진 내가 의아해 원인을 따지고 보면 밤 11시 즈음 잠이 든 날이었다.


전엔 지하철을 타면 내려야 하는 역의 한 정거장 전에도 깊이 잠들어서 종점까지 가곤 하던 내가 왜 낮잠도 못 자고 늦잠도 못 자는 사람이 된 걸까.     


돌이켜보면 임신한 순간부터 몸과 마음이 무척 예민해졌다. 이전엔 가끔 무단횡단을 했던 나는 도로를 건널 때는 초록불에도 두 번 세 번 좌우를 살폈다. 원래 세상과 사람에 경계심이 지나칠 정도로 없는 편이었는데 위험에 대한 감각이 평균 이상으로 발달한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더 심해졌다. 켁, 하는 작은 기침 소리에도 잠에서 벌떡 깨곤 했다. 일종의 각성상태구나, 나의 지독한 피로감에 대한 원인을 찾다가 작년에 고성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 각성상태는 엄마들이라면 많이 경험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아이가 서너 살 지난 후에는 괜찮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며칠 놀러왔다 집으로 간 아이


이제 아이는 스스로 하는 것이 많아진 열한 살이 되었는데, 나는 이렇게 먼 곳에 있는데, 왜 아이에 대한 신경이 무뎌지지 않는 걸까. 왜 혼자 있는데도 깨어나는 시간이 여전한 걸까. 스스로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하고 결론적으로는 일찍 못 자는 자기관리 문제라며 나를 탓하게 됐다.     


그런데 밀양에 온 후 드디어 그 소리 없는 알람이 꺼진 것이다. 어제는 깼다가 다시 잠이 든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11시에 깬 스스로가 딱히 잘한 것도 없는데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11시까지 늦잠을 자다니! 정말 잘했다 잘했어. 나 자신을 칭찬해 줬다.      


오늘은 8시 20분에 일어났다. 뿌듯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집에 가면 다시 6시에 일어나는 아이의 기상 시간에 맞춰지겠지만 며칠 안 남은 시간이라도 부디 8시 기상을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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