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밀양 한달살기의 반 정도가 지나고 있다. 낯선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데 이곳에서는이상하게체감보다 빠르게 지난 기분이다.
중간 즈음 지나고 있는 한달살기를 돌아보자면 만족스럽다는 총평을 내리고 싶다.
집에 있는 아이와 남편이 신경 쓰이고 일을 많이 하지 못한 게 걸리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감사한 요즘이다.
주변에 지자체 지원을 받는 한달살기 중이라고 하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sns보시는 분들도 처음 알았다는 경우가 있어 간략하게나마 정보를 드리고자 글을 써본다.
내가 머무는 밀양의 지원금은 하루 숙박비 5만 원, 총 기간 체험비 8만 원이다.(체험비는 여행기간에 따라 줄어들기도 한다)
하루 5만 원에서 초과되는 숙박비용은 사비로 내야 한다. 내 경우 숙소 사장님께서 sns에올린 밀양 한달살기 선정 글을 보고 연락 주셨고 좋은 조건으로 머물 수 있게 됐다.
그래도 관리비와 추가 인원에 대한 비용, 결제 수수료를 더해 70 넘는 사비가 들었다.
결론적으로 이런 오래되고 보존이 잘 된 고택에머물 수 있다는 게 무척 운이 좋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옥 숙소 자체가 처음인 데다 한 집안과 마을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의미가 있고평소 느끼기 힘든 공간의 힘에 감탄할 때도 많다.
넉넉한 인심의 숙소 사장님 덕분에 마음껏 마당의 앵두와 딸기를 따먹었다.
사랑채 문을 열고 밥을 먹으면 낮달맞이 꽃 향기가 느껴지고 아침에는 새소리에 잠이 깬다. 닭 울음, 소 울음은 꽤 시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고 집에서 보기 힘든 큰 파리와 나방의 공격을 받기도 하는데 그 또한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일부분이다.
한옥이기 때문에 불편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한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점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일단 숙소에 오래 머물러도지루하지 않다는 게좋고 도보거리의 마을 식당과 카페만 다녀도만족스럽다.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은 이런 내 여행 스타일을 지자체에서 좋아할까, 하는 점이다.
밀양에서도 더 유명한 곳, 지자체에서 중요시하는 축제, 규모가 크고 여행객이 많은 장소를 찾아다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없진 않다.
카페 퇴로정, 밀양189, 카페 그로브
나는 주로 카페에서 읽은 책이나 숙소, 마을 풍경을 sns에올린다. 식당이나 카페는 좋으면 여러 번 가는 성향탓에 나를 알아보시고 또 오셨네요~ 친절한 인사를 건네는 사장님들도 몇 분 계신다.
좀 더 다양한 곳을 멋있게 홍보해야 하지 않나 고민을 하다가 한달살기는 하는 사람마다 다를 테고 나의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좋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달살기는 느린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방식이다. 주말에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건 싫어하고 맛집이라도 줄 서 있는 곳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편인데 밀양 여행지들을 평일에 느긋하고 조용하게 즐기고 주말에는 동네 산책이나 숙소에서 게으름 피우며 보내도 좋으니 말이다.
실제로 와보니 나는 밀양이 참 좋은데 사람이 많이 안 와서 좀 걱정이라고생각한 적이 있다. 얼마 안 가 나의 기우라는 게 밝혀졌지만.
주말이 되자 느긋하게 둘러보던 곳에 관광버스가 즐비해지고, 주차할 자리도 없어진 식당과 카페를 보며 한시름 놓기도 했다. 주말에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위양지, 영남루
밀양이 이 고즈넉함을 유지하면서도 여행지로서의 매력도 잃지 않는 그런 곳으로 남으면 좋겠다.
여행 방식은 억지로 바꾸지 않은 채 지내고 있지만 sns 활용법은 바꿀 필요가 있었다.
지자체마다 여행 선정자들에게 요구하는 홍보 횟수나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밀양의 경우 하루 2건의 게시글을 올려야 한다.
나는 밀양 한달살기 선정 후 전용 계정을 만들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출판사 계정과 한달살기 계정에 하나씩 게시글을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한달살기 계정 팔로워가 적다 보니좋았던 곳,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싶은 맛집이나 여행지를 그 계정에 올리면 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이 보는 공간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구독자가 몇 명 되지 않는 유튜브도 있는데 편집을 못하니 쇼츠만 올리는 것도 마음에 걸려 브이로그를 올리기 위해 조금 찍어보았지만 목소리가 들어가는 것도, 편집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 2건의 숙제(?)를 마감 시간이 다 되어 부랴부랴 올리기도 한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음식 사진 찍는 거다. 평소 음식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고 특히 누굴 보여주기 위해서 찍을 생각을 못해봤는데 그래도 일단은 찍어두려고 한다. 찍어놔도 올리기 애매한 수준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비용에 대한 부분도 쉽지 않다. 숙박비나 체험비는 지자체 공통으로 모두 후불로 지급되고, 보고서를 제출하면 보통 열흘에서 보름 안에 받을 수 있다. (보고서의 내용이 성실하고 약속을 잘 이행해야 한다)
정산받기전까지 숙박비라는 큰돈을 지불해야하고 식비와 유류비를 더하면 다른 여행에 비해 돈이 결코 적게 든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혼자 한달살기를 하고 싶어 강원도의 작은 생활숙박형 원룸 같은 곳을 알아보았는데 그 금액이나숙소추가금이 큰 차이가 없었다. 하루 5만 원의 숙박비는 한 달 기준 무척 큰돈이지만 여행 방식에 따라 개인이 쓰는 돈은 일상에서보다 지출이 클 수 있어 그 부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자체 한달살기 경험을 이어가고 싶어서다른지역에도지원했다.
지역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알리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한달살기 취지에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지자체 지원사업이 아니었다면 평소 연고가 없고 바다가 없는 밀양에는 오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사를 전공하기도 했고 옛 것과 역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하루하루 이곳에 스며들듯 지내고 있다.
지자체 한달살기 덕분에 가능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보름 정도의 기간에는 좀 다른 경험도 하고 밀린 일도 해야겠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