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위가 아파서 힘들어 했었다는 1학년 담임이 아침에 병원에 입원했다며 급하게 불러서 나흘 동안 출근했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한가한 하루를 보내면서 잠시 사랑의 콜센타를 보고 있는데 장민호의 '터미널'과 영탁의 '개여울'로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한국 가곡 가운데 20%가 김소월 선생님의 시라고 한다. '개여울' 역시 김소월 선생님의 시로 영탁이 부르니 원곡자 정미조와는 또 다른 감성이고 느낌이다. 시 자체가 매우 서정적이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는데 문득 38년 전의 일이 생각나서 눈물이 흐른다. 그러잖아도 눈물이 많은 편인데 나이를 먹으니 눈물이 더 많아졌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남편과 나는 섬으로 내신을 내놓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당연히 부부가 함께 발령을 받을 거라는 선배들의 말과는 달리 어떻게 된 일인지 남편만 발령을 받아 난데없는 생이별을 해야 했다.
농촌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임신을 했다고 먹고 싶은 것을 쉽게 사다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누가 옆에서 챙겨줄 상황도 아니었다. 이런 와이프가 늘 염려였던 남편은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나면 서둘러 육지로 나왔지만 다음 날 오후에는 여지없이 또 다시 섬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고향을 떠나 멀리 타지에서 믿고 기댈 사람이라고는 남편 밖에 없는데 일주일 동안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러웠다. 시간도 왜 그리 빨리 가는지 하룻밤 자고 나면 금새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헤어지기 아쉬워 면 소재지의 버스정류장까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남편과 함께 손 꼭 붙잡고 걸어갔다가 되돌아 올 때는 늘 나 홀로였다. 남편을 떠나보내놓고 돌아오는 길 다리 밑 냇가에 주저앉아 외로워서 울고 몸이 힘들어서 많이도 울었다. 소리내어 운다 한 들 들릴 리 없고 지나가는 이 없으니 걸릴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다리 밑 냇가는 나만의 은밀한 아지트로 내 아픈 맘을 맘껏 풀어놓는 곳이 되었고 일기장과 함께 친구가 되어주었다.
세월이 흘러서 남편에게
"버스 정류장에서 당신과 헤어지고 오는 길에 다리 밑에 앉아서 많이 울었었어."라고 하자 그랬느냐며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말을 안 했으니 알 리 없다. 일기장에만 내 외롭고 힘든 심정을 빼곡히 적어두었을 뿐 그 때만 해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나이를 먹고 살다보니 성격도 변하고 말도 많아졌다.
울 딸을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다. 임신을 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몸을 이기지 못해 늘 힘들어하고 많이 외로워 했었다. 챙겨 먹은 것에 비해 건강한 아가로 태어나 주어서 고마웠고 뱃속에서 선생님인 엄마의 영향을 받아 자란 탓인지 친구들을 불러모아 선생님 역할을 하며 노는 것을 매우 좋아했었다. 이러한 딸의 모습을 보고 지인은
"누가 아빠, 엄마 선생님 아니랄까봐... 그래서 피는 못 속인다니까..."라며 웃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