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아이가 행복한 나라

by 백작가

영국에서 우리 왼쪽 옆집에는 독신인 존 할아버지, 오른쪽 옆집엔 피터와 팜, 길 건너 앞집에는 데이비드와 메를린 등 모두 노부부가 살았다. 70대인 이들은 한 집에서만 40년 넘게 살고 있다. 이혼한 존 할아버지 말고는 모두 자녀들은 분가시킨 후 노부부만 이층 양옥집에 살고 있다.


그 연세에도 손을 꼭 잡고 다니며 휴가 때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가량 여행을 다닌다. 피터 할아버지는 세미 디태치트(Semi-Detached) 하우스로 밖에서 보면 한 집처럼 보이지만 우리와 벽으로 나뉘어 있는 바로 옆집 이웃이다. 할아버지는 이 지역 연고팀인 플리머스 아가일 축구클럽의 열혈팬이다. 연간 회원권을 사서 모든 홈경기를 그라운드로 직접 응원하러 간다.


경기날에는 들뜨고 행복한 소년 같은 표정이다. 심지어 휴가 계획도 경기 스케줄에 맞춰서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짠다. 이 분이 경기장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과연 우리나라에 270만 원이나 하는 축구리그 연간 티켓을 살 수 있는 70세대 중반의 은퇴한 노인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보호되고 운영되는 문화 및 관광 자원인 전국의 내셔널트러스트에 가면 일흔이 넘은 노인 자원봉사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갖고 영국의 문화와 자연유산에 대해 열성적으로 설명을 해준다.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60세 정년 후에도 파트타이머로 전환해 60대 후반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다. 마트나 병원, 우체국 등 어디에 가도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70세 가까이까지도 할 일이 있으니 건강도 지키고, 삶의 행복지수도 올라가는 것 같다.


관광지에 가면 황혼의 노인 커플들이 두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하거나, 스콘과 잼, 크림을 홍차와 곁들여 먹는 애프터눈 티를 사이에 두고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의 표정을 보면 물어보지 않아도 현재 즐기고 있는 노년의 삶의 얼마나 행복한 지 짐작이 간다.

연세 지긋한 노부부들이 다정스럽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영국 식당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copy right 백작가

처음 영국에 도착해 임시 숙소로 홀리데이인 호텔에 머무는 동안 11살 우리 아들과 3살 딸의 조식 뷔페가 무료였다. 우리 돈으로 3만 원가량 하는 훌륭한 아침 뷔페가 공짜여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처음엔 행사기간이라 무료로 줬는지 알았는데 틀렸다.


이 곳에서는 우리 나이로 중학생 이하는 어린이로 대한다. 호텔의 경우 어린이 식사는 무료인 경우가 많다. 여러 시설의 입장권, 버스 요금 등이 할인되는 것은 우리나라와 동일하다.


영국은 공공의료시스템인 GP(General Practitioner, 동네 주치의)를 운영하는데 예약한 후 대기 시간이 긴 편이다. 그러나 만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예약이 필요 없다. 상태에 따라 당일에도 우선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버스는 유모차와 함께 타기 쉽도록 되어 있다. 모든 버스는 출입구 높이를 유모차를 태울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다. 출입구에서 가장 가깝고 넓은 양쪽 자리를 유모차를 위해 비워놨다. 따라서 유아를 데리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데 별 불편함이 없다. 실제로 버스에는 항상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채 외출한 엄마들을 항상 볼 수 있다.


어른 보호자 없이 어린이를 혼자 두면 경찰 신고 대상이다. 한국에서는 학교에 혼자 다니던 초등학교 5학년 우리 아들도 걸어서 5분 거리의 학교를 매일 데려다주고, 데려 오고 했다.


심지어 집에 아이들끼리만 두고 부모가 외출을 하면 이웃이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만 5세 이하의 아이를 둔 가정에는 공무원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체크도 해준다. 참으로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따뜻한 사회 시스템을 갖고 있다.


시작과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말이 있다. 노인들이 행복하고, 아이들이 보호를 받는 나라. 이것이 행복한 나라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나라의 모습이 아닐까.


영국에서 노인과 어린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볼 때마다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깊게 주름 패인 우리나라의 노인들, 부모가 맞벌이를 해 혼자 밥을 챙겨 먹으며, 밤늦도록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들과 노인이 행복한 나라, 영국. 내가 이 나라에 대해 가장 부러워하는 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행복한 나라. 아이들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는 나라’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국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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