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평선 Sep 11. 2021

한 달만의 외출

날씨가  많이 시원해진 날

 한 달만의 외출입니다.

그동안 폭염 때문에 어르신의 외출은 꿈도 꾸지 못했지요. 하지만 어르신은 외출하지 못하는 날 오히려 행복해하셨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외출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거든요.

윗옷과 스커트를 입어야 하고 양말도 신고 마스크도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장갑도 챙겨야 하고요. 걷는 것이 자유스럽지 못하는 어르신은 유모차 의지합니다. 약한 리에 힘을 주고 잔뜩 긴장한 채 유모차를 밀다 보니 어르신은 어깨와 손바닥의 통증을 호소합니다. 래서 한여름에도 두툼한 장갑은 필수입니다.

오늘도 어르신은 여러 가지 나갈 수 없는 핑곗거리를 찾았지만 결국 외출을 하기로 합니다.


 초록 정원에 들어서니 르신의 꽃무늬 블라우스가 화사합니다. 어르신의 볼을 어루만지듯 가을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옵니다. 초가을 매미의 합창이 어르신의 발걸음에 장단을 맞춥니다. 오랜 기간 동안 외출을 못했지만 어르신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잘 가꾸어진 아파트 정원의 꽃들과 눈빛 교환도 하시고 잠시 쉬어가는 곳에선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재잘 거림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마침 소풍 나온 놀이방 아기들이 줄을 지어 마주 옵니다. 아기들은 아기새들처럼 입을 모아 인사합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어르신 반갑게 인사합니다.


"아가들도 안녕!"


놀라운 변화입니다.

어르신은 누구를 만나든 외면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거든요. 심지어 눈을 흘기며 보기 싫으니 어서 가자고 하셨지요.

 청소기 돌리는 소리도 싫어하셨던 어르신이 아기들의 재잘거림에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아기 천사들이 어르신의 마음을 되돌려 놓았나 봅니다.

30여 년 전 어르신은 100여 명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유치원 원장님이셨대요. 한동안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르신은  눈가에 미소를 짓습니다. 인자한 선생님의 표정입니다.

한 달만의 외출에서 어르신의 나이는 거꾸로 갑니다. 50대의 유치원 원장님이셨다가 30대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그날 밤.

어르신은 대학생이 되는 꿈을 꾸셨답니다. 두툼한 교육학 책을 소담스레 안고 버스를 기다리는 20대 소녀가 되었습니다. 꿈속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어르신의 표정도 새내기 대학생입니다.


"오늘은 언제 외출해요?"


어르신은 어느새 장갑을 끼고 계십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