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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연 Sep 08. 2022

어느 퇴직 임원의 조언

승진보다 Job을 우선해라

며칠 전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다름 아닌 작년 말 갑작스레 퇴임하신 임원 분이었다.


그분은 내가 2년여를 상사로 모셨던 선배님이셨다


"어머, 상무님! 어떻게 잘 지내세요?
제가 경황이 없었어서 미처 연락을 못 드렸었네요.

건강하시죠?"


"잘 지냈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이번 주 잠깐 점심이나 같이 할 수 있을까?"


성격 급한 나는 바로 다음 날, 마침 선약이 없길래 약속을 잡았고,

조용한 곳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우리 후배들끼리는 그 선배를 가리켜 회사가 어떤 이유에서든 효용 가치가 없어져 '아웃' 시켰다고 얘기했다.
많이 아쉽다고, 남 일 같지 않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게 바로 정규직인 일반직원과 계약직인 임원의 큰 차이점이라고 안위하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정규직은 아무리 사기업이라도 함부로 퇴직 인사조치를 못 한다. 뚜렷한 결격사유, 이를테면 성희롱, 성폭력 또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공금횡령 등 누가 봐도 명백한 근거가 있지 않는 한,

못 건드린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등 공공연하게 압박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일종의 '훈장'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막연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이 분도 어쨌든 임원이 되신 후 1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유지하셨다.


임원도 계급이 별도로 나뉘어서 그다음 단계로 승진이 안되면, 승진 연한을 두어 안팎으로 압박을 받는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아니라 '운구 기일(運九技一)'이라는 말이 떠돌 지경이다.


 그만큼 직장생활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해서 일을 잘한다 해도 개인의 '運'이 다하면 그만 끝이라는 것. 운이 다하면 직장인들의 '별'인 임원 자리도 그만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모처럼 점심식사를 같이 한 그날, 선배님은 요즘 하신다는 일이 나와 관련한 일이 있다며, 궁금한 사항 몇 가지를 물어보시더니, 개인적인 조언을 많이 해 주셨다. 생각해보면 이 분은 퇴임 전 현역 시절에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셨다. 다른 사람들은 이 분을 무척 개인적이고 차갑다고 꺼려했지만,

나는 오히려 사람 관계에서 끈적이지 않고, 솔직 담백해서 좋았던 것 같다.


물론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속을 잘 모르겠다는 불평도 많았는데, 나 또한 그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누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기 속을 다 드러내 놓고 살겠는가? 많은 부분 이해와 공감을 해 주곤 했다.


"나는 자네가 어느 자리로 가서 승진할 생각을 하기보다, 좀 멀리 보고 확실한 기능, 역할을 할 수 있는 'Job'으로 보직 변경을 하면 좋겠어."


올해로 4년째 지금의 팀장 자리에 매너리즘을 느끼며, 성장이 정체된 것 같다는 나의 얘기를 유심히 들으시던 선배가 말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마음에 확 꽂혔다.


"인생? 길지 않아. 그리고 우리 직장생활 역시 그 끝이 정해져 있지. 근데 그 속에 있을 때는 막연히 내가 그 생활이 영원할 것 같다는 달콤한 착각에 사는 것 같아.


 현재도 그런 생각조차 안 하고 하루하루를 개미처럼 사는 후배님들이 있을 거라 보지.

많이 안타까워. 그리고 직장에서 승승장구를 하던, 그렇지 않던 사람마다 運이 분명히 작용해. 그 '運' 이란 게 다하면 내려올 수밖에 없어.


그래도 나는 꽤 오래 버텼다고 보지만, 또 아닌 사람들도 있고, 제법 좀 더 올라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라고 영원할까? 아니잖아? 그래서 회사를 은퇴하고서라도 밖에서 내가 하던 일의 인접 영역에서 다시 좀 눈을 낮춰서라도 계속할 수 있는 Job을 얻어보라는 거야.

지금부터 5년 이상 앞으로 유망해질 사내 기능 조직으로 옮겨보란 말이지."


그러면서 몇 가지 자리를 제안해 주셨다.


물론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리여서

참 뜬금없다고 생각되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건대 아주 현명하시고 인사이트 가득한 조언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누가 나에게 그런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었던 선배가 있었단 말인가?! 갑자기 훅 뭔가가 올라왔다.


그래서 오늘부터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단순히 돈벌이로만 생각하던 나의 직장생활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속 확장성 있게 해 나갈 수 있는 세부 분야, Job을 찾자고.


이런 자각이 10년만 더 빨리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아쉬움도 있지만, 그나마 지금이라도 선배님 덕분에 깨닫게 된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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