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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영화

<더 캐니언>

알 수 없는 협곡을 사이로 한 여정에서 비로소 삶의 방향을 찾다

by FREESIA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곳의 진실은 뭘까?
common (1).jpg 영화 < 더 캐니언>

안개가 자욱한 협곡 사이로 서쪽과 동쪽의 관측초소를 지키고 있는 두 요원이 있다. 이들은 협곡의 비밀에 대해 알아서는 안되고 알려고 해서도 안된다. 이 기밀 사항을 유지한 채 1년 간 경계 순찰을 하면서 기관포 탄약과 지뢰를 점검하고 관리하며 문지기 역할을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부터 미국과 소련이 중심이 되는 연합체의 기밀협정에 의해 약 75년간 이어져오고 있었다.


서쪽을 지키는 남자의 이름은 리바이. 전직 해병대 출신 용병인 그는 오랫동안 이 위험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일을 직업 삼아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잠을 못 이룰 만큼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져 있었다. 동쪽을 지키는 여자의 이름은 드라사.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뛰어난 저격 솜씨를 가진 그녀는 매사에 거침이 없고 대담하지만 내면에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임무를 시작한 처음 몇 달은 주어진 일과를 반복하며 조용하게 지나갔다. 사실 두 기지는 망원경으로 들여다봐야 상대방이 보일 정도로 꽤나 멀었고 물리적인 거리를 차치하더라도 규정상 서로에게 접촉해서는 안되지만 금기가 깨지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특히나 뛰어난 실력의 요원인 두 사람이라면 그리 무서울 것도 없었다. 그곳에는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들은 삶에 지쳤으니 기댈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스케치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원격으로 체스 게임을 하기도 하고 건배를 하고 춤도 추고, 어떤 날에는 상대방의 슬픔을 엿보기도 한다. 마음껏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도 마음의 거리는 차츰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그들 사이를 가르고 있는 협곡의 존재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협곡에서는 이따금씩 좀비 같기도 한 의문의 괴생명체가 벽을 타고 올라왔으니 말이다. 리바이와 드라사는 과연 이 협곡의 비밀을 풀고 자신들의 삶의 이유를 찾아갈 수 있을까.

common (3).jpg 영화 < 더 캐니언>

<더 캐니언>은 광활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미스터리한 협곡의 비밀이란 요소를 더해 다크한 분위기를 한껏 살린 어드벤처 액션 영화다. 의문의 장소를 발견한 주인공들이 그곳의 비밀을 파헤치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스토리는 어찌 보면 이와 비슷한 장르의 다른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라인이기는 하나 <블랙폰>과 <닥터 스트레인지>를 맡았던 스콧 데릭슨 감독의 작품인 만큼 리드미컬한 앵글과 초현실적인 연출이 단연 돋보이면서도 중후반부에 서서히 드러나는 협곡 아래 미지의 세계가 굉장히 리얼하게 담겨있어 보는 내내 몰입해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이 마주하는 공간도 독특하다. 원거리에 있지만 마주 보는 형태로 되어 있는 초소는 마치 드넓은 우주 속에 서로를 닮은 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이와 함께 많은 부분에 시를 녹여내며 인생에 있어서의 공허한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협곡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주인공들의 서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험난한 외부 상황에서 어지러운 심연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확장은 75년간 감춰진 협곡의 진실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실제 우리 역사 속에도 남아있을 수많은 죽음들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고, 이야기의 끝에 다다라서는 나의 삶과 방향까지도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common (2).jpg 영화 < 더 캐니언>

할로우맨(hollow man). 1947년, 이 임무를 처음 맡았던 자는 협곡에 존재하는 괴생명체를 할로우맨이라 명명했다. 리바이는 T.S. 엘리엇의 동명의 시로부터 그것이 인용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할로우맨이라는 건 협곡의 진실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공허한 자'를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소모품으로 살아가는 것만 같았던 리바이와 드라사에게 협곡의 비밀을 알아내고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는 건 이 세상에서 저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을 기리고, 타인의 희생을 이용하는 자들에게서 벗어나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것과도 같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뿐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싸워보지 않았던 이들이 난생처음으로 온전히 나를 위한 싸움을 자처한 것이다.

common.jpg 영화 < 더 캐니언>

<더 캐니언>은 설렘과 공포와 긴장감, 다양한 감정들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순식간에 이런 극과 극의 감정에 휘말리게 되는 상황은 어찌 보면 조화롭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아서 어쩐지 피하고 싶지만 한 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러하지 않은가. 두려움 속에서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슬픔 속에서 타인의 슬픔이 느껴지기도 하고, 눈앞에 펼쳐진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인생이 괜스레 두근거리기도 하듯. 이렇듯 삶은 무한한 우주만큼이나 다채롭고 아름답다. 드라사가 하늘 위로 총을 쏘며 리바이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것처럼, 리바이가 드라사를 위해 협곡을 넘어왔던 것처럼 삶의 이유라는 건 숨김없이 진실에 말을 거는 자에게 찾아오는 운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T.S. 엘리엇의 한 문장처럼.


'너무 멀리 갈 준비가 된 자만이 그 한계를 알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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