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어루만진다는 것의 의미를 말하는 영화
가지고 있는 것에 행복해하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후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하게 가슴속에 남기 마련이다. <케이크메이커>에서는 단순히 오렌의 죽음을 둘러싼 토마스와 아나트 두 사람의 감정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관습과 함께 이들이 가둬두고 있는 역사적인 상처를 함께 마주하게 하여 상실과 사랑에 대한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게 한다.
토마스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오렌이 자신을 두고 고향에 가족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기는 당신처럼 할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고작 오렌의 폰 속에 있는 아나트와 그의 아들의 사진으로 멀리서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오렌에게서 아내와 마지막으로 했을 때를 가만히 듣는다. 그에게 가족이 있다는 행복이란 이렇게 간접적으로 바라보며 느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랬던 토마스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이라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오렌 가족의 빈자리에 들어서며 직접 그들과 대면하기 시작한다.
토마스는 불안하거나 힘들 때마다 반죽을 만진다. 이는 토마스와 오렌이, 그리고 오렌과 아나트가 서로를 만지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과 겹쳐진다. 아나트가 어두운 텅 빈 부엌에서 그녀의 뻐근한 목을 주물러주는 오렌의 손길을 잊지 못하듯 '사람'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또한 '사람'의 손길이 아닐까 영화는 답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손길은 이토록 뻣뻣한 존재들을, 경계를 두고 위태롭게 서있는 것들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손으로 정성껏 만들어진 누군가를 위한 요리는 그저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속 허전함까지 달래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처음 토마스가 오렌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에 찾아왔을 때, 그는 마음 둘 곳 하나 없이 방황했다. 방 한켠에 풀지 않은 채 남겨진 캐리어처럼. 하지만 토마스는 조금씩 용기를 내서 오렌의 가족들에게 달달한 음식을 선물하며 그들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아나트에게는 그녀가 늘 좋아하던 시나몬 쿠키를 만들어주고, 아버지를 잃은 상처에 힘들어하는 그녀의 아들에게는 따뜻한 핫초코를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오렌의 어머니 집에서 함께 음식을 준비하며 오렌의 빈자리를 조금씩 대신해 채워주었다. 그렇게 토마스는 어느 순간부터 한 사람의
남자가 되고,
아빠가 되고,
아들이 되었던 것이다.
토마스 또한 아나트의 가족의 샤밧(이스라엘 유대교에서 지키는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이어지는 안식일)에 초대되어 함께 식사를 하고,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함께 나눠먹는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다른 무엇도 아닌 '음식'일까. 물론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이 있을 테다. 하지만 더 나아가 그 음식을 만들어내기까지에는 한 사람의 시간과 정성이 있고, 궁극적으로는 한 나라의 오랜 전통이라는 시간이 묻어있는 게 음식이다. 오늘날의 시간과, 오늘이 오기까지의 그 긴 시간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오랜 역사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숭고한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케이크메이커>는 케이크와 같은 음식이 아닌 그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증서는 없지만 코셔 음식을 만들어요. 손님이 결정하세요.
사실 토마스와 아나트 주위에는 독일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을 멀리하고, 코셔와 같이 종교적인 경계를 그으며 오랜 역사가 따라온 관습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과거의 상처로 인해 그 선이 생각보다 많이 선명해졌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드러나듯 토마스가 사실은 오렌의 연인이었고, 그 때문에 일어난 오렌의 죽음의 전말을 아나트가 알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한 가지 물음이 던져진다.
나의 상처와 고통이 그 사람 때문이라면,
이 모든 사실들을 알게 되면 토마스를 향한 그 사랑이 없던 게 되는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행복은 '상실'이라는 아픔을 통해서 찾아온다.
아나트는 그녀를 둘러싸던 관습과, 역사적 시간의 상처에서 벗어나 그 벽을 허물고
독일에서 이스라엘로, 토마스가 그녀를 찾아왔듯
이스라엘에서 독일로, 토마스를 찾아간다.
상처는 그저 마음의 문을 닫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치유된다. 그 과정에서 종교도, 국적도, 어떠한 관습도 중요치 않다. 그저 '사람'으로서, 같은 마음을 느끼는 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서 상처는 사랑으로 나아간다.
평점: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