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영화
문이 열려있으면 룸이 아냐.
가로 × 세로 3.5m인 작은 방, '룸'에서 5살 아이 잭과 엄마 조이가 함께 살아간다. 조이는 7년 전,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며 다가온 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감금되었다. 그녀가 그 좁은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루 종일 TV를 보며 좀비처럼 사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다. 그녀의 아들, 잭. 잭을 키우기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매일 재미난 놀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잭과 이곳에서 살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은 전부 가짜라고 여기는 이 아이에게 진짜 세상을 보여주어야겠다. 그리하여 조이와 잭은 있는 힘을 다해 용기를 내려한다.
<룸>은 아이의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 17세 때 한 남자에게 감금되어 살아온 조이의 7년의 세월의 고통과 상처를 감히 어른의 시선과 폭력적인 시선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눈으로 본 그들의 삶이 가슴 아프고, 그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을 맛보고 진짜 하늘을 눈에 담은 순간의 희열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잭이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경험은 곧 우리에게도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선사하고, 눈 부시게 흔들리는 빛을 선물한다. 혹시 당신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면, 한 걸음 용기 내어 문 밖으로 나오라고.
하지만 조이와 잭의 이야기가 '룸'을 탈출한 것에만 그쳤다면 아주 무책임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문을 나간다고 꿈에 그리던 세상을 만나는 건 아니다. 조이는 삶의 여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이상하리만큼 잭에게 예의를 가르치고, 잃어버린 시간만큼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조이와 잭의 사건을 궁금해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한 기자는 '룸'에서 아이를 키웠던 조이에게 일정한 책임을 전가시키며 그녀의 잘못을 나무라기도하기도 한다. 엄마가 방황하고 있을 때, 잭도 마찬가지였다. 잭은 가끔 룸이 그립다고 말했다. 그리고 홀로 쌓아 올린 레고 집을 다시 무너뜨린다. 어린 잭이 만난 진짜 세상은 룸에서 조금 넓어진 집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때, 영화는 또다시 세상과 보이지 않는 벽을 쌓으려 하는 조이와 잭에게 한 번 더 손을 내민다. 누구보다 강인한 엄마가 되어야 했던 조이에게 잘못은 없다. 잭도 잘 크고 있고, 누구보다도 용감했다. 친구도 사귀고, 엄마에게 힘을 주기 위해 힘 샘 머리카락도 잘랐다. 가짜가 아닌 진짜 개와도 만났다. 귀에 맴도는 엄마의 목소리가 잭이 룸에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었다면, '그래도 엄마잖아.'라고 말하는 잭의 한 마디는 조이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끈 것이다.
소년에겐 엄마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이 곧 세상이자 전부였다.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건 힘든 여정도 견디게 할 만큼 소중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아닐까.
잭은 엄마와 함께 다시 룸으로 돌아와 매일 아침인사를 나누었던 가구들에게 이제는 작별인사를 한다. 룸이 작아진 것 같다고 말하는 잭의 말이 어른거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러한 감상은 이따금씩 찾아온다. 한 없이 커 보였던 어릴 적 동네는 왜 이리도 좁아 보이는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에겐 무서울 만큼 넓었던 서울의 거리가 이젠 어느덧 익숙해지는지.
우리의 세상은 문 밖의 세계에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이 쌓여 기억이 되고, 수없이 많은 경험이 쌓여 추억이 될 때 우리의 세상은 넓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문 밖의 문으로 또다시 나아간다.
평점: ★★★★☆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