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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6. 2024

도서관 도장 깨기 : 보령도서관 편

보령의 도서관 탐방

우리가 묵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도서관은 ‘보령도서관’이었다. 지난번엔 보령에 도착해서는 정작 보령 아닌 홍성에 있는 충남도서관부터 갔었으므로 이제 ‘보령 한 달 살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이름의 도서관이었다. 아내와 나는 보령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 전 잠깐 도서관에 들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대천중학교와 한내초등학교 근처였다. 도서관 가는 길에 ‘수청사거리’라는 도로표지판이 등장하자 아내가 변사또 같은 목소리로 “수정을 들라!”라고 작게 외쳐서 잠깐 웃었다.


도서관은 아담하고 깨끗한 3층 건물이었다. ‘충청남도보령교육지원청’이라는 수식이 붙어 있는 걸로 봐서 지역 주민을 위해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인 것 같았다. 1층엔 일요일만 제외하고 운영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각 방에선 여러 가지 교육 클래스가 진행 중이었다. 스피커로 영어가 크게 들리길래 가까이 가 보니 ‘영화로 배우는 역사’라는 과목명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같았다.


2층으로 올라가자 일반열람실로 들어가기 전 중앙 안내판에 심윤경 작가를 모시고 하는 강연 예고가 쓰여 있었다. 5월 3일 금요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쾌재를 부르며 스마트폰에 메모를 했다. 일반열람실은 작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나는 가방을 테이블 옆에 놓고 서가를 구경하다가 신간 코너에 가서 창비에서 나온 장이지 시인의 시집 『편지의 시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시집 뒤에는 오은 시인의 추천사도 보였다. 이 시인은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향기》를 보고 쓴 시가 마음에 들었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 얘기를 할 땐 ‘오버룩 호텔’ 얘기도 나왔다. 보통 책을 다룰 땐 중꺽쇠(『 』)를 쓰고 영화나 이벤트명을 쓸 때는 꺾어진 중괄호(《 》)를 쓰는데 이 책은 영화 제목을 다 중꺽쇠로 표시하고 있었다. ‘창비’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비는 된소리를 쓰는 등 타 출판사와는 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함께 꺼내 온 책 중 베스트셀러 작가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쓴 에세이를 들춰 보다가 “도대체 재미가 없어서 못 읽겠다”라고 말하고는 다른 책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그것도 ChatCPT를 다룬 거라 앞부분 말고는 읽기에 지루했을 것이다. 몇 권의 책을 건성으로 들춰 보던 우리는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 정문 앞에는 1층에서 뭔가 길게 수다를 떨던 남자가 상대방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역시 혼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할 말이 저렇게 많은가 싶을 정도로 쉬지 않고 얘기를 했다. 도서관 정문 앞으로 오겠다던 친구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저희는 도서관 주차장인데, 어디 계세요?”라는 문장이었다. 주차장을 쳐다보니 그 차는 없었다. 아내가 옆에서 “그럴 줄 알았어. 보령시립도서관으로 갔을 거야.”라고 말했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보령시립도서관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럴 줄 알았다고 크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두 도서관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이로써 도서관 도장 깨기 다음 장소가 자동으로 정해졌다. 세 번째는 보령시립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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