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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7. 2024

명쾌한 해결책을 의심하는 팩트주의자 장강명

『미세 좌절의 시대』

신문칼럼들을 모아 놓은 책은 웬만하면 읽지 않는 편이다. 일단 길이가 똑같은 글은 지루하고 모아 놓은 칼럼에 그 사람의 인생 총화보다 동어반복이 더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강명 작가의 칼럼집엔 일관성이 있다. 서문에서 밝히듯 그는 1) 개인은 존엄하다 2) 세상은 복잡하다 3) 사실은 믿음보다 중요하다 를 원칙으로 세운 글을 쓴다.


'미세 좌절의 시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한국사회는 뭔가 잘 안 풀리고 되는 것도 없는 느낌인데 그 좌절의 상처가 너무 미세해서 뾰족하게 불행하다고 하기엔 좀 민망할 지경이다. 불행의 원인도 애매하고 뚜렷한 적을 상정하기도 힘드니 삶의 목적을 정하는 것도 덩달아 쉽지 않다. 장강명은 mz세대에 대해 쓴 글에서 "나는 누구인가, 보다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사명을 발견하면 정체성의 위기가 없을 것이다"라며 그들을 공감하는 동시에 안타까워한다.


그럼 우린 무엇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의심해야 한다. 현실은 늘 복잡하고 회색지대에 있는데 그걸 단숨에 해결해 줄 신박한 방법이나 영웅은 등장하지 않으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사기꾼일 확률이 높다. 이게 액셀보다는 브레이크를 행해 다리를 자주 뻗는 '보수주의자' 장강명의 생각이다. 되는 것은 없고 마음은 공허한 우리들이 인터넷 밈을 즐기는 것을 '얄팍한 타격감'과 '잠시 도파민이 분비되는' 등으로 감자칩에 비유한 것은 정말 장강명다운 생각이요 글이다. 나는 이 칼럼집을 읽으며 이 부분과 'YouTube를 보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부분에서 서글픈 공감과 통쾌함을 느꼈다.


장강명은 말한다. 명쾌한 결론 없는 상태를 긍정하자, 그래도 왜 살아야 하는 지를 고민하는 게 낫다, 답은 얻지 못하더라도. '모든 글은 공론장에 제출한다는 생각으로 쓴다'는 그의 공언처럼 장강명의 칼럼들은 정직하고 객관적이다. 적어도 이 작가는 자기가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리뷰를 쓰려고 리뷰 노트도 채우고 A4지에 메모도 꽤 했는데 결국엔 짧게 쓰기로 했다. 130여 편의 칼럼 중에서 추렸다는 90여 편의 글이 모두 나름의 논리와 재미를 가지고 있어서다. 독서에 대한 논쟁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신문칼럼 ‘흥미로운 증년이 되기 위하여‘도 수록되어 있다. 직접 사서 한 편 한 편 읽어보시기 바란다. 책에서는 무엇 하나 뚜렷한 게 없다고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눈앞이 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일독 권유 지수 1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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