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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계 다크호스의 북토크

김미옥 작가 교보문고 광화문점 북토크 후기

by 편성준


페이스북에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참 많죠. 그런데 그중에서도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눈에 띄는 필자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김미옥입니다. 2019년부터 온라인에, 그것도 페이스북에 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김미옥이 드디어 올해 5월 두 권의 책을 한꺼번에 냈습니다. 『미오기傳』이라는 곰국 에세이와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라는 서평집입니다. 두 권이 각각 이유출판과 파란북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그야말로 서점가에 '이유' 있는 '파란'을 일으켰죠.


저는 김미옥 선생한테 알게 모르게 받은 것도 많고 순화동천에서 열렸던 김언호 대표 북토크에서 출판평론가 김성신 선생과 함께 만난 이후부터 친한 사이라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북토크엔 한 번도 가지 못한 처지라 늘 미안한 마음이었죠. 그러다가 어제 광화문에서 열린 북토크에 참석하려고 했더니 350석이 벌써 다 매진이라는 공고가 떴지 뭡니까. 그래서 이유출판 유정미 대표에게 페북메신저로 사정을 했습니다. 예매를 못했지만 가고 싶다고 말이죠. 당장 답장이 왔습니다. 걱정 말고 오시라고. 그러니까 여러분도 뭐든 매진 됐다고 바로 포기하지 마시고 조금 끈질기게 도전해 보십시오. 저처럼 불쑥 메시지를 보낼 자신이 없다면 그냥 그 장소로 가보십시오. 현장에 가면 어떡하든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얘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죄송합니다.


행사 전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하응백 선생의 '아이스 브레이킹'이 잠깐 있었고 이어 바로 김미옥 저자가 나왔습니다. 자신은 평론가도 작가도 아니고 독자라고 하면서 고개를 숙였는데 강연장에 모인 350여 명의 청중은 그 얘기 만으로도 열렬히 박수를 쳤습니다. 김미옥 선생은 자신이 서평을 쓰면 문단에서 못마땅해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형식을 깨트리는 글이라 그렇다는 것이죠. 김미옥 선생은 서사가 먼저고 그다음이 형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형식을 깨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책의 원제가 어떤 것이었는지 소개했습니다. '그대가 읽지 않아 내가 읽는다'라는 원제는 시인이기도 한 정해종 대표의 간곡한 간언에 의해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가 되었더군요.


김미옥 선생은 가난 등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 온 '결핍'이 자신을 만든 동력원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에서도 읽었던 초등학교 중퇴 후 공장 생활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앵겔스 얘기를 꺼내는 걸 보고 역시 김미옥이다, 하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운명은 '환경+성격'으로 결정되는데 태어난 조건은 내가 결정하지 못하더라도 성격은 내가 조정할 수 있더라는 얘기를 이렇게 쉽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결핍'이 기본 조건이었다면 '복원력'은 김미옥의 무기였던 겁니다. 그중에서도 독서가 자신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는데 한동안은 죽어라 읽기만 하다가 어느 날 '나를 구원해 준 사람들이 다름 아닌 작가들이구나'라는 데 생각이 미쳐 그들에게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쓰는 게 아니라 세 가지 기준을 정했는데 1) 덜 알려진 작가 2) 작은 출판사 3) 좋은 작품 순이었죠. 여기서 마이너리티를 사랑하고 나름의 공정성을 엄중하게 지키면서도 형식을 마구 파괴하는 '김미옥표 서평'이 시작된 거죠.


그는 잘 팔리지 않는 책을 팔리게 하는 데 탁월한 선동가였습니다. 예를 들어 <뉘른베르크의 사형 집행인>이라는 탁월하지만 그리 친절하진 않은 책을 소개할 때는 황석영의 <장길산>에도 나오는 조사·추국기록문서인 '추안급국안'을 끌어들이고 강용흘 작가가 1930년대 미국에서 쓴 <The Grass Roof>를 얘기할 땐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함께 언급하는 식이죠. '삐삐 롱 스타킹'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국민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이라는 책은 우리나라 최말자 여사의 기막힌 사연을 오버랩시키며 작품의 의의를 되살렸고요. 그 결과 한 권도 안 팔리던 책이 갑자기 동이 나는 사태가 연달아 벌어지고 출판사에서 감사 전화가 쇄도했다는, 무슨 무협지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고 그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강연 도중 "이 자리에 편성준 작가와 와 계시는데요, 얼마 전 <읽는 기쁨>이라는 책을 쓴 제 동업자죠."라고 언급하시는 바람에 객석에 넋을 놓고 앉아 있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 년에 800권을 읽는다는 김미옥 선생에게 어떻게 그 책을 다 읽느냐고 누가 질문을 했더니 자신은 돈이 없어서 서점에서 서서 책을 읽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러다 보면 빨리 읽는 공력이 쌓인다고 하면서 "퇴직 후 아무도 안 만나고 읽었어요. 밥 하는 시간도 아까워 음식 배달 시켜 놓고 읽었어요."라는 진실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저도 마이크를 달라고 해서 '책을 내기 전과 낸 후 책에 대해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더니 이전까지는 책 한 권에 그렇게 많은 사람의 생각이 책 한 권에 모이는 건지 몰랐다, 그러니 책 한 권이 실패하면 작가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많은 관계자들에게 실패를 안겨주는 것임을 깨달았다,라는 요지의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잊혀지면 끝이다. 그래서 나는 북토크를 열심히 한다. 책은 출판사가 아니라 작가가 팔아야 한다. 홍보도 요즘은 작가의 몫이다. 나는 북토크 엄숙하게 안 한다. 떡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같은 실질적인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뭐 하나 질문을 하면 대답이 청산유수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회자가 제지를 시켜야 할 정도였습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 <오펜하이머>, <중력의 키스> 등등 할 얘기가 많은데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연극 보러 나갈 시간이 됐습니다. 북토크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김미옥 저자의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하응백 선생과 좌담회 제안을 받았고 '매듭'의 시인 한상호 선생, 이미루 선생, 도곡도서관 강연 참석자로 만난 성함 모르는 선생, 남북하나재단 이재연 대리, 윤정 서평칼럼니스트, 최희정 작가 등을 만났습니다. 윤정 서평칼럼니스트는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줄 알았는데 정작 처음 보는 사이라고 해서 무안해했고 <너의 애인에 되어줄게>를 쓴 최희정 작가를 얼른 알아보지 못해서 또한 죄송해했습니다. 사인 줄 맨 마지막에 서서 김미옥 선생에게 사인을 받으며 손으로 쓴 편지를 꺼내 드렸습니다. 내용은 별거 없습니다. '춘향전, 홍길동전, 유자약전, 아비정전 다 봤어도 미오기전이 최고이니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곁에 있어 주십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유출판에서 <금호동의 달>이라는 책을 내신 김정식 교수도 소개받았습니다.


'다크호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실력자라는 뜻의 경마 용어에서 나왔는데 김미옥 선생에게 딱 맞는 호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를 달리게 한 추동력은 이기적 유전자보다는 '이타적 유전자'가 힘을 쓴 게 분명해 보입니다. 다른 이를 위해 글을 쓰다 보니 유명해지고 돈도 벌게 되더라, 라는 좋은 본보기가 바로 김미옥이라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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