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중 최고는 역시 이사 스트레스!

도시형 한옥 집수리 27일째

by 편성준

아무리 가까운 곳으로 가더라도 이사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나 혼자 살 때는 짐이 단촐했고 그때도 이미 포장이사가 정착되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옮겨 다녔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가 없더라도 살림은 늘어 이사 가는 게 여간 거추장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아파트를 살 돈이 없었던 아내와 내가 이 년마다 다시 계약을 해야 하는 전세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 구입을 결정하게 된 데는 그런 사정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아내는 그동안 이사할 때마다 여자 혼자라서 당했던 억지나 부당함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나와 살림을 합치면서 처음 성수동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아파트 벽 구멍을 스카치테이프로 대충 붙여놓은 타일이 있는데도 돈만 받아먹고 나 몰라라 하는 부동산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튀어오라고 호통을 치던 내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남편이 믿음직스러웠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아래쪽 한옥으로 이사를 갈 날짜가 다가오자 아내는 이삿짐센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맨 처음 연락을 한 곳은 집을 계약할 때 부동산 사장님이 추천해 준 업체였는데 60대 중반의 사장님과 보조인 듯한 노인 두 분이 오셔서 집안을 둘러봤다. 우리 집은 이번엔 냉장고나 TV, 식탁 등 큰 짐들을 거의 다 놔두고 나가기 때문에 그릇과 책, 간장 된장이 가득 찬 항아리 등만 신경 쓰면 되지만 좁은 골목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하고 이사 갈 집도 골목으로 30미터 정도는 차 없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더니 일단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너무 좁다고 큰 소리로 난리를 치시는 것이었다. 거기서 일단 기분이 좀 상했다. 이삿짐을 나르다 보면 통로가 늘 넓은 곳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대충이라도 견적이 얼마나 나오겠느냐는 질문에는 "돈이 문제지 뭐."라는 소리를 두 번이나 하며 정확한 액수는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순간 우리는 기분을 더 잡치고 말았다. 돈이 문제인 건 우리도 알죠. 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하죠.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요즘 광고를 많이 하는 부동산 앱에서 운영하는 이삿짐센터였다. 아내가 전화로 먼저 문의를 하며 똑같은 조건을 제시했더니 대충의 금액을 얘기하며 연락을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직접 와서 견적을 뽑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으니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선이 있어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고 했다. 전화상담을 하는 사람이 젊어서 어느 정도 호감이 간다고 했다. 세 번째는 우리 동네 사는 배우(요즘은 양양에서 지내지만) 김혜나가 소개해 준 후배의 업체였다. 영화 현장에서 만난 친구인데 생계를 위해 이삿짐센터도 프로젝트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집은 짐이 적으니 그 친구와 상의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시로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아니면 급하게 사람을 모으기 힘들어서 그런지 주말까지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첫 번째 할아버지들이 다시 와서(이번에는 친절하게) 견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아내는 총견적이야 업체마다 결국 비슷하겠지만 태도는 천차만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인분과 돈 얘기를 하다가 "점심값은 따로 드려야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점심은 당연히 사주셔야죠."라는 대답이 돌아오더라는 것이었다. 이런 업체라면 당일에 가서 또 뭐가 추가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두 번째 이사업체를 선택하기로 하고 아예 10%의 계약금을 입금해버렸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이사 스트레스가 부부 사별 스트레스 다음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힘들지만 큰 일 없이 이삿짐이 잘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옥 수리공사는 차질 없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토요일에 가보니 바닥 기본 공사가 거의 다 끝났고 마루와 안채 쪽에 창호를 달더니 집은 더 번듯해졌다. 대문 안에 신발장도 달았다. 토요일엔 임정희 목수님과 김정국 목수님이 없는 날이라 다른 분들이 공사 현황에 대해 해 주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뒷집에서 다녀갔다는 소리가 나왔다. 우리보다 먼저 한옥 공사를 하던 집이었는데 몇 번 찾아가서도 뵙지를 못했던(고등학생인듯한 아들만 만났다) 분들이었다. 아내와 내가 가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마침 집에 계셔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집 뒤쪽 담과 맞닿은 부분이 있는데 담이 오래돼서 약하니 보강을 좀 했으면 하는 얘기를 하셨다. 월요일에 임 목수님과 상의를 하고 보강을 하기로 했다. 아파트에서 살다가 처음 단독주택으로 오시는 분들이라고 하는데 두 분 다 인상이 좋고 표정이 맑아서 참 다행이었다. 명함을 드리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이로써 우리 집을 둘러싼 집들과 다 인사를 텄다.


일요일 오전에 내가 커피숍에서 뭔가를 쓰고 있었는데 점심을 먹으러 내려왔던 아내가 공사현장에 있다고 카톡을 보내와 그쪽으로 갔다. 우리는 어제 얘기 들었던 뒷담 쪽을 살펴보고 마당에서 서성이다가 옆집 교회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 인사를 드렸다. 사모님이 나오시길래 공사하느라 시끄럽고 먼지도 많이 나는데 참아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뭐 힘든 일 없냐고 물었더니 "물론 소음도 먼지도 힘들지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어쨌든 일 잘하는 목수님들이 공사를 참 잘하시는구나, 하고 감탄하며 구경도 하고 그러고 삽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 집 구경이나 잠깐 하시라고 하고 아내가 마당으로 모시고 들어오니 서까래가 참 좋다고 칭찬을 하셨다. 옆집은 이사 들어오면서 공사를 크게 못했는데 우리가 공사하는 걸 보고 놀랐다는 말씀도 하셨다. 교회 사람 중 누가 우리가 쓴 글을 읽고 "읽어보니 옆집 같던데..."라고 말해서 재미있었다는 얘기도 하셨다. 공사비가 얼마나 드느냐고 묻길래 그냥 많이 든다고만 대답했다. 너무 돈이 많이 드는 것 아니냐고 하시길래 빚을 많이 냈다고 하며 웃었다.


집으로 올라오면서 한숨을 내쉬었더니 아내가 "왜? 돈이 없어서 그래?"라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우리, 죽자."라고 아내가 외쳤다. "에이, 그런다고 어떻게 죽어?"라고 말하며 내가 또 선수를 놓쳤음을 통감했다. 번번이 타이밍을 놓친다. 다음엔 내가 꼭 먼저 죽자고 말해야지, 하고 몰래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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