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등학교 방역지원 알바입니다

코로나 19 시대를 사는 법

by 편성준

새벽 6시, 스마트폰 알람에 맞춰 눈을 떴다. 마루로 나가 물을 한 잔 마시니 바닥에 앉아 있던 순자가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요즘 매일 새벽에 나가느라 힘들겠어?"

"괜찮아. 운동삼아 한다 생각하면 그렇게 힘도 안 들어."

"학교까지는 얼마나 걸리는데?"

"십 분."


나는 샤워를 하고 면바지와 남방을 갖춰 입은 뒤 한가롭게 하품을 하고 있는 순자를 한 번 쳐다보고는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성북동 거리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전철역 쪽으로 걷고 있었고 가게 문을 일찍 연 건재사 사장님이 혼자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9월 첫 월요일부터 동네에 있는 홍익사대부속고등학교에 '방역지원' 근무를 나간 지 한 달째다. 이 학교는 전에 살던 집이 바로 옆에 있었기에 이미 익숙한 곳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계획했던 일들이 어긋나고 생활비도 다 떨어져 가는 와중이었다. 10월 중순에 나오는 첫 책을 준비 중이라 마음은 바쁘지만 당장은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답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혹시나 하고 주민센터에 가서 물어보니 구청에서 실시하는 '희망근로' 자리가 있으니 한 번 신청해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하는 방역사업을 신청했다. 중고등학교에 가서 방역도 하고 청소도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올라가면서 사업이 잠정 취소되었다가 학생들이 등교할 수 있는 2단계로 낮아지면서 불쑥 연락이 온 것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 7시까지 학교 행정실로 오라는 전화였다.


하루 네 시간 근무하고 받는 일급은 34,000원이 조금 넘는 정도다. 결코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당장 생활비라도 벌 수 있으니 나에겐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네 시간 동안 소독 장갑을 끼고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을 물티슈로 닦아내는 일을 맡았다. 함께 근무하는 분들 중엔 계단 입구에서 학생들의 체온을 재고 스마트폰 앱 속 자가진단 프로그램의 체크 여부를 묻는 분들도 있다. 희망 근로라고 하니까 노인들이 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막상 가보니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쉬는 시간에 함께 앉아 있는 3층의 작은 교실에서 '학교 폴리스'로 근무하시는 노인이 체온을 재는 남자분을 가리키며 "저분은 교수님이시고."라고 하니까 남자분이 웃으며 "에이, 아니에요. 그냥 대학원생입니다."라고 정정을 해주었다. 나는 젊은 여성분과 페어가 되어 2학년과 3학년 교실을 반씩 나눠 방역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 여성분도 갑자기 생활이 막연해져 혹시나 하고 구청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이런 게 있으니 신청해 보라'라고 해서 오게 된 케이스라고 했다. 나는 여성분에게 '저는 광고회사를 다니던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쉬는 시간에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사실 할 얘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침엔 좀 바쁘다. 7시에 도착하자마자 6층과 4층에 있는 3학년, 2학년 교실에 들어가 출입문 손잡이 근처와 전등 스위치, 책상을 모두 닦고(한 반 정원은 20명 정도다) 교탁과 보드 지우개, 마카펜, 교실 PC의 자판 등을 빠르게 소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7시 30분이면 벌써 학생들이 오기 시작하므로 그전에 기본 작업을 마쳐야 한다. 우리가 근무하면서 가장 유의해야 하는 점은 학생들과의 접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는 해도 가까이에서 움직이거나 동선이 겹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업이 시작되면 3층의 대기장소에 가 있다가 수업 중간쯤에 다시 복도로 가서 출입문과 창문 손잡이, 사물함 등을 소독하고 대걸레로 바닥청소도 한 번 한다. "아니, 대걸레질도 해야 돼요?"라고 함께 일하는 여성분이 가볍게 항의를 했으니 학생들이 다니는 복도의 먼지를 제거해 주는 작업이라 생각해 달라는 선생님의 설명에 흔쾌히 하기로 했다. 덕분에 요즘은 화장실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대걸레 짜는 기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교를 하지 않는 1학년 교실에 가서 소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은 1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보러 오기 전날 소독을 해달라고 해서 가보니 교실엔 시험지와 함께 에너지바, 오렌지주스 등이 책상 위에 하나씩 놓여 있었다. 다음날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 측의 배려인 모양이었다. 3학년은 매일 등교를 하고 2학년과 1학년은 번갈아 학교에 나온다. 그래서 가끔은 텅 빈 2학년 교실에 가서 책꽂이를 구경하기도 한다. 버틀란트 러셀의 책도 있고 혜민스님의 베스트셀러도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라는 책을 고등학생들에게 권하기는 좀 뭣하지 않나 하고 혼자 쓸 데 없는 걱정을 하다가 웃기도 했다. 고3들은 늘 잠이 모자라는 얼굴들인데 실제로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도 꽤 있다. 3학년 학생들 중엔 머리를 멋지게 기르고 고무줄로 묶은 친구도 있고 7시 15분쯤에 와서 스마트폰을 켜고 게임을 하는 친구도 있다. 아마 그때가 하루 중 유일하게 잠깐 쉬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잠깐만 닦을게요."라고 영해를 구하고 책상을 쓱쓱 닦아준다. 그들도 기꺼이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수업시간에 복도에서 작업을 할 때는 되도록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을 하지만 문을 닦다가 문고리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선생님이 돌아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리에 살짝 놀라던 선생님들은 내 목에 걸려 있는 '방역 지원'이라는 패찰을 보고는 미소를 짓고 눈인사를 한다. 그럴 때면 내가 마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이 런닝셔츠와 팬티 차림의 백광호를 고문하던 지하실로 들어와 무심하게 보일러를 고치던 수리공 아저씨기 된 기분이다. 봉준호는 어떻게 그런 장면들을 캐치해 냈을까. 대단한 감독이다. 선생님들의 강의 방식은 제각각인데 대부분 목소리가 크다. 아마도 강의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열심히 하게 되어 목소리도 커지는 것이리라. 여자 선생님 중 한 분은 작은 마이크와 앰프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 국어 선생님이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읽으며 그 의의를 설명해 주는 걸 듣고 슬그머니 웃기도 했다. 옛날 국어시간의 추억과 그때 친구들이 생각나서다. 한 번은 선생님 한 분이 소리를 버럭 지르시길래 놀라서 달려가 보니 "공부 잘하는 거 다 소용없다고 했잖아. 먼저 인간이 돼야지..."라고 학생들에게 불을 뿜고 계셨다. 아이들이 뭘 잘못했길래 저리 화를 내시는 걸까. 커닝을 하다 들켰나? 분명한 건 떨리는 목소리에서 학생들을 향한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런 선생님들의 마음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침 11시에 퇴근을 하면 집으로 와 아내와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요즘은 이렇게 하루 두 끼 먹는 걸 리추얼로 만들어가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집밥을 많이 먹었더니 몸무게가 2Kg 정도 빠졌다. 사 먹는 음식보다 집밥이 몸에 좋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는 나날들이다. 아내는 내가 학생들 등교 일정표를 들고 "내일은 더 빠르게 움직여야겠네...."라고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여보,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라며 웃었다. "응, 하다 보면 열심히 하게 되네."라고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다. 나는 글쓰기든 방역이든 마지못해서 하는 건 싫다. 요즘은 4층과 6층을 몇 번씩 오가다 보니 하루 만 보 걷기는 기본이 되었다. 그래도 즐겁다. 12월 초까지 계약이 되어 있으니 책을 출간하고 북콘서트를 하면서도 아침엔 계속 이 일을 할 생각이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마루로 나가니 순자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야, 이번에 낼 책 제목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며?"

"응. 재밌지?"

"참... 제목도. 둘 다 노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

"에휴, 니가 인간의 메타포를 이해할 리가 없지."

"헹."

"논다는 건 쉰다는 것과는 다른 거야. 혜자하고 나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려고 노는 걸 택한 거라고."

"책에서도 그런 뜻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만......"

"이거 참 삐뚤어진 고양일세."

"엥~."

순자는 입을 다물더니 창가 쪽으로 뛰어가 버린다. 오늘치 대화를 다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루 중 아침 일찍 몇 마디만 할 수 있는 순자와의 대화도 어느덧 리추얼이 되어가고 있다. 순자 말대로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뜻이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나로서는 오랫동안 준비한 첫 책이고 계속해서 내가 다양한 글과 책을 쓸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는 아주 중요한 결과물이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쓰는 글마다 되도록 책 광고를 겸할 생각이다. 이 책 재밌어요. 정말 열심히 썼습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이 했던 것처럼 저도 한 번 외쳐 보렵니다.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주라. 편성준의 첫 에세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10월 19일쯤 나옵니다. 10월 31일엔 서울에서 출간기념회도 할 겁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어, 어쩌다 보니 존댓말로 변했네요. 제가 원래 좀 비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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