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즐기고 있는지도
이리 재고 저리 재봐도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통장잔고. 상사나 직원이나 출근하기 싫어하는 회사와, 점점 애매해지는 인간관계. 그리고 이제는 감기 한 번만 걸려도 일주일은 통으로 날려먹는 체력. 어딘가 개선할 점이 많아 보이는 어설픈 일상. 보완점이 많아 보이는 어른의 하루하루.
사실 내 일상은 늘 어설펐다. 아이일 때도, 학생일 때도, 지금도. 이제 어른이 됐다고 조금 더 조급해할 뿐, 그냥 이게 내 인생의 모양새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 어리숙하고, 어설프고, 따라가느라 바쁜 그런 인생... 하지만 쓰면서도 사실 큰 위기감은 없다. 포기해서라기 보다도, 아마 나 지금 할 수 있는 것만큼 하고 있어서, 랄까.
답답하지만, 그 끝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암울할 때도 있지만. 삶이 언제나 예상한 대로 풀리지만은 않고, 또 내가 지금 보완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채워져도 분명히 그 결핍-보완-결핍의 사이클은 변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금 덜 야무지게 살면서 지나치는 부분들이 많은 게 아마 나쁜 건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고... 정말 요즘은 머리 아픈 거보다 머리 빈 게 낫다는 생각도 가끔 들기 때문에...
예를 들면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으면, 어떤 것들은 이해되지 않는 채로 놔두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쪽으로는 길을 내지 않아도 되는 때인 것이라고 믿으며. 어떤 것을 한번 알고 나면 그 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하는데, 만약 내가 감당이 안된다면 어쩔 것인가. 굳이 고뇌와 괴로움을, 굳이 항상 매번 겪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아픔과 번뇌는 삶의 거름이 될지언정 감당치 못할 아픔을 인내하는 것은 별것 안 남겨주는 것 같다. 뭐든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어설퍼도,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재미있게.
뭐든지 다 알고 있으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영화도 스포 금지, 소설도 맨 마지막 장을 먼저 열어보면 안 된다. 왠지 다 알 것 같은 그 끝이라도 스토리의 마지막을 향해 갈 때 느끼는 설렘과,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그 스토리에 정을 붙여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재미있는데. 거기다가 만약에 엔딩에 반전이 있다면? 어느 순간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남아 있어야,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잘 알지 못해 어설퍼도, 아직 곳곳에서 감동할 수 있는 아이 같은 내가 좋다.
물론 내가 나의 어설픔을 인정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남도 나를 인정해주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이제 애가 아니잖아, 기타 등등의 말은 늘 어른이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제대로 된 어른의 정의도 모호한 요즘이다. 그런 시대다. 흔히들 말하는 어른이 돼서 따르면 좋은 인생의 수순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다니며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학업을 마치고 직장 들어가는 것 봐주며 결혼까지 신경 쓰고 그 아이가 아이를 낳는 것 까지 보는 것- 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 소위 이 '인생의 수순'에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상처 받고 살 수는 없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중한만큼 상처 받기 쉬운 사람들 포함. 그럴 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웃어넘기는 거다. 웃어넘기려면 고감각의 유머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논리의 어린아이의 천진함이 있어야 한다. 고감각의 유머는 고차원적이고, 어린아이의 천진함은 타고난 것이니. 천진함은 어른이의 타고난 강점 아닐까. 어찌 보면 무논리의 괜찮다는 말. 그래도 괜찮으면 괜찮은 거니까.
자의든 타의든 사회가 정의해놓은 그 수순에서 이탈한 자들도 열심히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정해진 수순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 말고도,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이 마치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으면 이점이 많다. 아이들은 늘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소소한 많은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애나 어른이나'라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도 남들 보기에는 조금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그는 마치 아이처럼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거다. 특히 이 시대에서, 어른이의 삶은 제법 괜찮은 것 같다. 사실 어느 시대에서나 어른이는 괜찮았을 것 같다.
사실 어린아이이고 싶은 마음에 머무는 것은 단순히 놓고 보면 그냥 재미없는 게 싫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지루한 일상,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끝나는 것 같은 게 싫어서,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것 같은 나의 이야기를 흘려보내는 게 싫어서일 수도 있다. 아직 열렬히 나의 미래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내가 아이의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찌 됐던 지금 이게 내 모습.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어른이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고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아직은 원하는 만큼 흥미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자신이 가진 만큼 끌어안고, 나는 오늘도 치열하게 산다. 인생 네가 웬만한 걸 들고 와도, 나도 만만하지는 않으리라 장담한다. 커다란 7살짜리의 고집을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어린아이 같으니 어린아이처럼 살련다.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천진함을 기억하며 살 거고, 매일 배우고, 매일 울고, 웃고, 많이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옆사람 앞사람 다 챙기고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하면서, 그리면서 쓰면서.
언제나 꿈을 꾸는 내 모습이, 나의 이야기에 커다란 반전이 없을지라도, 지금 하루하루를 읽어가며 나의 이야기에 정을 붙이는 내 모습이, 나는 싫지 않다.
사실 꽤나 괜찮다. 즐기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