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이 가득한, 어느 퇴근길

세상이 망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던 날


늘 같은 길을 돌고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정류장. 사람들은 버스를 기다리며 안내문을 보기도 하고, 전광판을 보기도 하고, 시간표를 보기도 한다.


버스시간표를 모르면 메모해두는 게 당연하다. 스마트폰으로 그때그때 시간표를 볼 수도 있지만, 작은 수첩에 그 시간들을 적어놓는 것도 유용하니까. 하지만 왜, 나이 든 아저씨의 손에 들린 낡은 수첩의 꼬깃꼬깃한 시간표는 마음이 아릴까. 버스시간표를 모르면 메모해두는 게 당연한데.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경계선에 서계시는 그분은 버스 정류장 벽면에 붙은 시간표와 버스번호를 한번 확인하시고, 수첩 한번 보시고. 몇 번 더 확인하시고, 몇 번 더 보시고. 그 낡은 종이에 몇 자 더 적어 넣으신다.


해 질 녘의 버스 안은, 왜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같을까. 작은 가방을 엄마손에 들린 아이와, 그 아이를 자리에 앉히고 어르는 엄마. 버스가 모퉁이를 급히 돌 때 서로 부딪히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화내는 사람들. 매일 보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 해 질 녘의 버스 안은, 왜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같을까.


버스 아저씨는 매일 똑같은 길을 돌고 돈다. 우리도 매일 똑같은 길을 돌고 돈다. 가끔은, 답답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가끔은, 답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버스정류장에서, 내일도 또 모두를 만나겠지. 매일 보는, 모르는 사람들. 버스정류장에서, 모두 같이 버스를 기다리겠지.


가끔 이 세상이 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아마 그 이유는 세상에 보통 사람들이 가득해서. 무거운 눈물을 가득 머금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 정말 아픈 등허리를 기대지도 못한 채 열 몇 정거장을 버틸 수 있는 사람들. 그러고도 또 먼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 어깨에 진 짐보다 마음에 지고 가는 짐이 더 무겁지만, 걷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가득해서.


버티는 사람들. 자신의 세상이 두쪽 나도, 다시 일상을 일구는 사람들. 어릴 적 꿈은 다 잊었어도, 오늘의 꿈이 있는 그런 사람들. 그런 모든 사람들이 사실 초능력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날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 날, 나 같은 사람도, 상처 받고, 위로받고, 그냥 살아가면서, 또 다른 사람을 지킬 줄도 알게 되는, 그런 보통의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아챈 날. 조금 눈물이 나고, 조금 다행이라 생각했다. 세상이 망하지 않는 데에 나도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조금 기뻤다.



1.png A Bus Ride © TUW






언제나,


언제나 발전 있는 삶을 살 수는 없어요.

그저 일상을 유지시키기도 버거운 날들이

훨씬 더 많아요.


언제나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어요.

그저 나를 스쳐가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리고 또

언제나 살고 싶은 날들 일 수는 없겠지요.

분명히, 그렇지 않은 날들도 우리를 찾아오곤 해요.



세상은, 우리에게


온갖 미워할 요소를 다 주고

온갖 원망할 요소를 다 주고


미워하지 말고

원망치 말라고


가끔 어두운 구름 사이로

달 하나를 띄워놓아요.


그리고 가끔은, 답답한 가슴 뻥 뚫리라

바다 같은 하늘도 보여주곤 해요.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세상은, 무책임하게도


왜, 저런 색의 결들을 다 보게 해 주었을까요?

왜, 그 온도를 다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을까요?


그런 하늘 한번 올려다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 말이에요.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왜, 이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주었는지.


푸르고 긴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게 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들의 불빛들을 보게 하고.


경적소리, 담배 냄새.

웃음소리, 모래 냄새.


하나, 둘씩 들어오는 불빛들

집에 가까울수록 퍼지는 밥 짓는 냄새...


그 모든 것들을

다 내 안으로 떠밀어 넣는지.



나는 정말 하나도 괜찮지 않아서,

한숨을 가득 내뱉어 보지만.


나 힘들다고, 미워할 거라고 내뱉는 한숨에

그 한숨에, 또 사랑할 것들을 바로

한아름 가득 안겨줘 버리고.


나 슬프다고, 원망할 거라고 올려다본 하늘에

예쁜 하늘과 조각달

가끔 별 하나 띄워주네요.


또 내게 사랑하지 않을 거냐고 묻네요.


저 예쁜 하늘이

참 눈물 나게 나쁘죠.


이런 하늘 아래, 삶을 사랑하게 만든 당신이

어떤 날은 또 눈물 나게 밉지만.


또, 어차피. 사랑은 내 몫이니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