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장해온 감정 컨트롤 에너지
이래저래 위축되고, 감정의 변화가 널뛰기를 하고, 내가 정말 잘못한 걸까, 진심으로 고민되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에는 최대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내가 남긴 여러 형태의 기록을 되살펴본다. 기억은 나의 생각만큼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아서, 혹 감정의 앙금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될 때가 많아서.
그리고 어제의 기록이 오늘의 나에게 같은 판단을 내리게끔 한다면 나는 안심한다. 그래, 이건 그냥 나야. 같은 일이 일어나도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 거야, 라는 마음은 힘든 일상에서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일을 막아준다.
내가 잘못한 걸까, 라는 물음에 위축되는 날. 꿋꿋이 버티다가도 잠시 멈춰서 땅바닥만 쳐다보게 되는 날. 그런 날은 나의 기록이 나를 조금 더 믿게 해 주고, 그 믿음으로 내가 나를 조금 더 보듬는데 시간을 낼 수 있다. 나와 나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한다. 따듯한 라테 한잔을 마시든, 맛있는 밥 한 끼를 먹든. 작은 꽃 한 송이, 공책, 연필, 작은 무언가라도 나만을 위한 것을 마련한다.
그리고 또 적는다. 다 괜찮을 거라고. 언젠가는 또 이 기록이 방향을 잃은듯한 나를 바로잡아줄 거라고 믿으며, 오늘은 자질구레한 일은 다 접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기로 한다.
이렇게 기록을 하다 보면 가끔 다 잊고 놓을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학생 때는 나를 위한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녔다면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일정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플래너 용도의 수첩을 많이 쓴다. 한동안 일기는 적지 않다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적힌 플래너 한 귀퉁이에 한 줄씩이라도 그날, 그 주의 감정을 다시 기록한다. 좋았다. 싫었다. 설렜다. 암울했다. 기뻤다. 희망. 절망. 다시, 시작.
무의미하리 마치 반복되는 일상과 감정의 기록들이 답답함을 넘어서 소중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린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감정이라도 나의 기록이 담긴 노트가 한 권, 두권 쌓여가며 그 무게가 제법 묵직해지면 그 기록은 힘을 가졌다.
한때는 힘든 날들이 오래 이어지면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고, 누군가의 들러리를 서기 위해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반복되는 감정들은 그때 당시에는 참 한심하게 느껴졌고, 발전하나 없는듯한 자신의 모습에 우울해지기도 하며, 반복되는 일상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했다.
하지만 꾸준히 쓰인 기록을 돌아보면 그 속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였다. '나'라는 나의 노트 속 주인공은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 상황들을 모두 견디며 살아낸 인물이었고, 지금까지 이어온 나의 이야기는 다양한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다시, 앞으로!'를 외치는 캐릭터가 각 페이지마다 숨 쉬고 있다.
매일매일 기록한 나의 모습은 나의 캐릭터를 다듬어간다. 나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모습을 갖춰가는 나의 캐릭터는, 페이지가 더해갈수록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 이루고 싶은 꿈, 취향과 선택을 끊임없이 수정해가며 하루하루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라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게 그 하루를 살아낸다. 고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고유하고, 각자의 스토리 속 주인공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 '의미 없다'라는 표현이 '다 똑같다' 혹은 '변하는 것이 없다'에서 기인한다면 나의 기록을 돌아봄만으로도 다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이의 기록은 타인은 흉내 낼 수 없는 오리지널 한 본인의 스토리이며, 스토리의 진가는 그 오리지널리티에 있다고 믿는다.
변함없이 흐르는 것 같은 일상을 그려낸 스토리를 살아가는 주인공으로서, 그 미세한 변화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기록하며 자신을 돌아보려 한다. 매일 같은 원을 그리며, 그 반복의 동그라미가 단단해지고 단단해져 고유의 울림을 내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