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근한 위로
어지러운 감정과 생각을 안고 잠자리에 눕게 되는 날이 있다. 긴 하루 끝에 그 마무리가 좋지 않거나, 자신이 마치 부품처럼 이곳저곳 자잘하게 소비된 느낌이 드는 날들.
그런 밤에는 향할 곳 없는 서운함에 사람이 조금씩 변하고는 한다. 어떤 이들에게서 조금 더 마음이 멀어지고, 여러 관계에서 조금 더 마음의 문을 닫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조금 더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만 그마저도 씁쓸해 자신에 대한 기대를 조금 더 접고.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밤들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냥저냥 피곤한 밤이 되었다. 일렁이는 감정의 폭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연하게 줄어든다. 박하게 고됐던 인생도 나중에는 그냥저냥 살만하였다고 기억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일까.
요즘은 하루가 피곤하면 잠을 자러 들어가기 전에 핫팩을 하나 챙긴다. 겨울에도 실내에서는 반팔을 입고 얼음물을 마시던 그 열은 다 어디 가고, 힘든 하루의 끝에 성질이라도 낼 수 있었던 그 열정은 다 어디 가고. 이제는 적당히 식은 몸에도, 무미건조한 마음에도 등허리에 댄 핫팩이 큰 위로를 준다. 사람도, 성취도, 영감을 주는 명언도 아닌 그 무생물의 온기에 위로받는다. 그 온기에 잠이 든다.
그러다가도 또 마음이 너무 메마른 날에는, 등에 핫팩을 고정시키고 스마트폰을 들어 인터넷 이곳저곳에 접속해본다.
운 좋게 깔끔하게 쓰인 글을 읽게 되면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조금 물렁해진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글은 특히 더 좋다. 내가 전혀 관심 없던 분야의 잘 정리된 글은, 나로 하여금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나의 하루가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구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답답한 나의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기를 가능케 해준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쉴 때 현실과 거리를 둘 줄 아는 것은 사는데 도움이 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자신의 삶을 일군다는 사실이, 각자 자신의 분야의 전문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간다는 것이, 그러한 현실도 있다는 것이 나의 현실에도 숨통을 트여준다.
한 개의 글에서는 단편적이나마 한 이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중 몇몇의 하루도 나만큼 길었겠음을, 나만큼 서운했겠음을 조심스레 짐작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이렇게나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안도와 영감을 얻는다.
언제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라는 생각에 힘든 날에도.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의문이 드는 날에도. 나의 모든 기다림을 가능하게 해 주던 믿음도, 사랑도 그 바닥이 드러난 것 같은 텅 빈 마음을 안고 잠드는 날에도. 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한번 더 읽고. 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에서 나오는 힘을, 조금이나마 얻는다.
좋은 글을 써준 사람들에게 일면식도 없는 내가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한다면 정말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이들에게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고 머릿속으로나마 무언의 감사인사를 한다. 그리고 모르는 이에게 건넨 마음만큼 나에게도 수고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찬란히 그리는 꿈에 끓어오르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나는 내일 오늘만큼의 나를 채워낼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늘어난 책임과, 현실과 조율하는 꿈을 감당해낼 수 있을 나를 믿는다고.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은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을 익혔다. 피곤하면 쉬면 된다. 힘들어도 쉬면 된다. 슬프면 그마저도 견디면 된다. 감정도 쉬어갈 수 있다.
핫팩으로 인해 등허리는 따땃하게 덥혀지고,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본 머리는 적당히 시원하게 가라앉는다. 뭉근한 몸과 마음의 온도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닫고, 아침이 오기까지 다시 긴 밤을 견딜 수 있게 한다.
편히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