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의식, 정리정돈
어릴 적부터 온 가족이 역마살이라도 낀 듯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것도 한번 가면 언제나 꽤나 먼 곳으로.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작은 발로 열심히 누비고 다니던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 것은 서운한 일이었고, 긴 이동 끝 낯선 곳에 도착해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손때 묻은 물건을 배치하고 쓸고 닦는 것도 늘 조금 힘들고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낯선 곳도 하루, 이틀 밤을 자고 쓸고 닦고 정리하다 보면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다시 쓸고 닦고, 다시 정리하고... 하루, 이틀을 살면서 내는 여러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또 남의 집 같던 그곳은 어느새 우리 집이었다. 우리 가족의 말소리, 노랫소리, 웃음소리, 울음소리, 음악소리, 발소리... 여러 소리가, 한 밤을 밝히는 전등 빛이, 한 이불 덮고 잠들기 전 담소를 나누는 가족의 온기가, 집을 만들었다. 세상 어느 곳이라도 내 집 삼을 수 있다는 걸 꽤나 어린 나이에 알게 된 것은, 좋은 것이었을까. 나는 이 세상에 집이 참 많아도 봤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언제나 나에게 주어진 공간에 애착을 갖는 편이다. 내 방, 내 일터, 인터넷의 나의 공간. 지하철 속 내가 항상 서있는 코너와, 서점에 가면 항상 내 자리처럼 찾아 앉는 나의 아지트 같은 구석. 내가 자주 파일을 저장하는 바탕화면. 냉장고를 열면 항상 먼저 눈길이 가는 곳. 크고 작고, 그 의미가 있든 없든, 언제나 나의 손과 눈길이 닿는 나만의 공간.
마음 잡고 하루 동안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면 그다음 날은 머리가 맑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몸을 움직여 정리되는 것은 언제나 신기한 경험이다. 주기적인 정리정돈과 계절맞이에 따른 공간의 재배치를 하며 나의 공간을 소중히 돌보는 것은 나를 소중히 돌보는 것과 같다.
청소를 하며 정리정돈을 하다 보면 집안 곳곳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모든 것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을 것 같은 내 집도, 찬찬히 훑어보면 곳곳에 서프라이즈가 많다. 이제는 듣지 않지만 왠지 버릴 수는 없는 카세트를 모아놓은 서랍을 한번 열어보면 도대체 언제 우리 집에 들어왔는지 모를 엘비스 프레슬리의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하기도 하는 것처럼.
나의 경우 집안 곳곳을 정리하다 역시 가장 마음잡고 정리해야 할 부분은 책상이다. 그저 외관만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한동안 쌓인 여러 종류의 노트, 바인더, 수첩 등등 더는 필요 없을 내용을 담고 있을 종이뭉치들을 정리하는 것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자리 잡고 앉아 한 달 전, 두 달 전, 반년 전 혹은 그 이전의 기록들을 훑어보면 해놓은 일 없이 휙 지나버린 것 같은 시간도 사실은 조금은 열심히 살았구나,라고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름 고군분투하며 머리를 쥐어짜던 기록이 남은 페이지들을 넘기다 보면 버릴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장들이 있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 페이지들이 그렇다. 거기다 핸드폰, 태블릿, 컴퓨터 속 파일들까지 정리하는 날은 더더욱 시간이 걸린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예전의 나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트들을 보다 보면 어떤 날은 오늘의 고민의 해답을 과거의 나에게서 찾는 경험을 한다. 나는 어릴 적에 더 똑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역시 뭣도 모를 때는 이렇게 패기 넘치는 글도 썼구나 하고 돌아보기도 하고. 이미 내 안에 답을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을 잊고 오랜 시간 고민한 일들도 있다. 결국 어떤 노트들은 분리수거함으로 향하지 않고 다시 나의 책장 한편에 꽂힌다.
청소를 하다 보면 조금씩 어른이 되면서 집안을 이루는 구성품들도 변한 것을 본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험상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물건은 잘 들이지 않게 되고, 또 예전에는 가성비를 많이 따졌다면 요즘은 취향에 맞게 물건을 하나, 둘 씩 장만하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느낀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흥미보다는 이질감을 먼저 느끼는 나로서는, 아날로그적인 물품들로 주변을 채우는 게 이상하리만치 마음의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기본에 충실한 물품들, 그리고 조금 가격이 있더라도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물건을 들이려고 한다.
주말, 마침 공기도 그리 나쁘지 않다길래 창을 열고 묵은 먼지를 털어냈다. 한 주만큼 정리되지 않은 집을 정리하면서 일주일을 돌아봤다. 이번 주는 이렇게 살았구나. 그 흔적이 마음에 들면 다음 주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조금씩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조금씩 정리해 나가면서 다듬어간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정리정돈과 청소를 마치고 몸까지 깨끗이 씻어내고 나면 마음의 번잡함도 같이 씻겨 내려간 듯 개운하다. 새로 깐 이불을 덮고 종일 노동의 지친 몸을 뉘일 때 그 고단함은 달콤하기까지 하다.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 나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일들은 언제나 대단한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제 나의 손길이 닿은 만큼의 집이 오늘의 나를 편하게 하고, 버릴 것 버리고, 남길 것 남기고, 그리고 내 곁에 남은 것들로 나를 다시 돌아본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 생각이 정리가 안될 때,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 이유불문 언제나 쓸고 닦는 일은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안정감이 주는 평범한 행복. 나의 두 손으로 이뤄낼 수 있는 행복, 그만큼의 행복은 이미 온전한 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