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예찬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좋아함을 넘어 예찬할 때도 있다. 어쩌다가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되면 그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침에 한 잔, 사람 만날 때 한 잔, 쌀쌀하니 한 잔, 더우니 한 잔... 이렇게 저렇게 마시다 보면 어느새 3~4잔을 마셨고, 일이 좀 바쁘거나 집중이 필요한 날에는 하루에 커피를 5~7잔씩 마시기도 한다.
너무 많이 마시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말을 들을 때면, 나도 사실 '바쁘거나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핑계일 뿐 그저 정신없이 무언가가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내게 익숙한 행동을 먼저 취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리고 어느 오전, 나는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어쩌다가 동물 행동학에 관한 글을 읽으며 그 생각을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
탈억제(disinhibition)와 잘못된 지시(misdirection)에 관한 글이었는데, 간단히 글을 요약해보자면 '탈억제'란 동물이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당황하거나, 무서워하거나 혹은 불편할 때 간혹 그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고, '잘못된 지시'란 동물이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취하지만 그 행동이 엄한 곳을 향했을 때를 일컫는다. 인간의 행동으로 비유해보면, 한 학생이 지금 숙제도 해야 하고 방도 치워야 하지만 그 상황에 갈팡질팡하다가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탈억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것이 잘못된 지시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흥미로운 것은 탈억제로 일어난 행동의 경우 그 행동이 안락 행동(comfort behavior)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는데, 어렵거나 생각해야 하는 일 대신 바로 지금 당장 행하기 쉬운 먹기, 자기, 놀기- 즉 자신이 익숙하고 편한 행위를 한다는 것. 그것은 마치 나는 지금 미친 듯이 일을 해야 하지만 느긋하게 리스트레토 한 잔을 뽑으며 먼 곳을 바라보는 행위. 더 심한 날은 마감이 코앞인데 굳이 걸어서 5분 거리의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하는 행위. 종합하자면 나는 심히 하루가 불편한 날에는 그 불편함의 원인 파악 및 해소 대신 상황에 맞지 않게 습관처럼 커피나 퍼마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음?
에이 설마. 이상한 결론에 다다르자 나는 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동물행동학에 그래도 지성을 가진 인간인 나의 행동을 대입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커피 마시는 시간은 소리와 색과 향과 맛과 온도를 느끼는, 한 인격체의 오감을 충족시키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커피 원두를 재배해-선별해-갈아서-추출해-커피잔에-기호에 맞게 담아마시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 커피를 마신다 함은... 고차원적인 안락 행동인가...
하지만 그래도 내가 동물과 다른 것은,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마감을 하지 않는가? 고차원적이다! 장하다! 과연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지치는 하루의 계속적인 위안을 주는 것과 더불어 '나는 문명화된 인간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는 행위가 아닐까! 하루에 7번씩! 거기까지 생각하고 기껏 데운 커피를 개수대에 흘려버리고 컵을 씻었다. 뽀득뽀득.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날 이후로 커피를 줄인 건 아니다.
커피를 자주 마시는 이유 자체는 그리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해도, 커피를 예찬할 이유는 충분하다. 익숙하고 편한 행동을 취하며 거기에서 위안을 얻는 것 중, 어른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커피 한 잔 아닐까. 나는 매일 커피를 마시고, 무언가 매일 한다는 것은 의미를 가진다. 나에게 커피를 마시는 것은 어떻게든 하루를 완수해내기 위해 치르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당황스럽거나, 두렵거나 혹은 불편할 때 커피를 마심으로써 그 상황을 해결해보려 노력하는 것. 최대 하루에 7번이나!
살만한데 커피를 퍼붓지는 않는다. 출근길에 직장인들 손에 들린 커피 한 잔은 멋을 내기 위함이 아니지 않은가. 이거라도 마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마시는 아메리카노 더블샷. 결국 커피예찬은 나의 하루에 대한 예찬이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사는 우리에 대한 예찬. 오늘 하루도 제대로 살아보고 말겠다는 더블샷 모닝커피 한 잔의 결의.
... 물론 그냥 맛있어서 마시는 걸 지도.
찬 커피든 따듯한 커피든 커피가 좋다.
혼자 마셔도 좋고 둘이 마셔도 좋아요.
아침에 마셔도 좋고 밤에 마셔도 좋습니다.
늘 나의 곁에 있어주는 나의 동반자, 커피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