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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May 17. 2021

처음 내게 '그것'이 찾아왔던 날

1호선 공황장애 그녀


그날따라 지하철 플랫폼은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길게 늘어선 줄의 끝에 겨우 붙어 서자 등이 벽에 닿을 정도였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전광판을 바라보니 아무래도 이번 걸 타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무리해서라도 지하철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문틈으로 몸을 욱여넣자마자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퇴근길도 출근길만큼이나 고되구나.’

바로 그때였다.


‘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무척 커다랗게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두 귀에 음 소거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내 심장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지만 당장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 내리면 그다음 지하철이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리는 대신 버티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아이유의 <좋은 날>을 찾아 재생했다. 이럴 때 밝고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 조금은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증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그녀의 삼단 고음에 맞춰 심장박동은 더욱 격정적으로 요동쳤다.

‘심장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이러다 쓰러져 다시는  못 일어나는 건 아닐까?’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축축해졌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탈출해야 해.

알 수 없는 두려운 감정이 몰려왔다. 당장 이곳에서 나가지 않으면 어떤 끔찍한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지하철이 다음 역에 멈추기 무섭게 나는 주변 사람들을 마구 밀치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은 허겁지겁 내리는 내게 불편함을 표현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 가 없었다. 무조건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휴!”

플랫폼에 있는 작은 벤치에 앉아 가슴에 손을 얹었다.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며 제발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휴대폰을 켜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 내 위치를 알렸다. 혹시라도 정신을 잃게 되면 빨리 발견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얼마간 그곳에 앉아 몇 대의 지하철을 그냥 보냈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어느 평범한 회사원의 공황극복프로젝트,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에 수록된 글, 그림 입니다.


책 정보 바로가기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저자: 김세경(꽃개미), 가나출판사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150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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