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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May 19. 2021

바쁜 마음에 보내는 작은 신호

 당신은 알바형 인간입니까?

 

  

  

 

나는 인사팀의 교육 담당자다. 과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를 받을 만큼 나는 내 일을 좋아하고,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10년 넘게 이 분야에서 일해온 내가 육아휴직을 다녀온 후 한동안 원치 않는 관리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 교육 업무는 출장도 많고 힘이 드니 당분간 쉬운 일을 하면서 회사에 적응하라는 팀장님 나름의 배려였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두 번 다시 나의 본업인 교육 업무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했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인 나는 교육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누군가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일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관리 업무는 몸은 편했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도태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다행히 묵묵히 관리 업무를 한 지 1년이 지나자, 다시 내 전문 분야인 교육 업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렵게 되찾은 자리인 만큼 실력과 성과로 나의 쓸모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당신은 알바형 인간입니까?


원하던 교육 담당자로 다시 발령이 난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크게 상처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회의 도중 높은 상사로부터 “정시에 퇴근하는 알바형 인간”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한창 교육 계획을 보고받던 중 그가 나를 향해 불쑥 내뱉은 그 말에 나는 순간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혹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그는 “너는 맞벌이잖아? 얘네들은 다 외벌이야”라며 계속해서 내게 무안을 줬다. 그는 나의 최종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팀에서 유일한 여성이자 워킹맘인 나는 그날 유리로 만들어진 투명한 벽을 보았다. 분명 사방이 뻥 뚫린 곳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양손을 쭉 뻗으면 자꾸만 무언가에 가로막혀 더는 나갈 수 없는 느낌이었다. 말로만 듣던 유리천장이었다.

나는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팀장님과 후배는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위로해주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나는 자주 악몽에 시달렸고, 능력이나 성과가 아닌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될까 봐 몹시 불안해졌다.


그 일로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잘 살던 사람도 예상치 못한 일로 상처를 입고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사의 막말에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버려서,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단단히 가로막힌 느낌이 들어서, 노력 하면 인정받았던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되어서 나는 괴로웠다. 그러던 중 첫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어쩌면 마음 아픈 상황이 지속돼서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우리의 몸은 어떤 신호를 보내 이런 마음의 상태를 알리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예민한 날이면 청량고추가 들어간 매운 떡볶이가 생각나고, 기분이 처지고 울적한 날엔 생크림을 듬뿍 올린 와플이나 진한 초콜릿을 찾게 되는 것처럼 어쩌면 내 아픈 마음은 공황발작으로 말을 걸어온 게 아니었을까?


정문정 작가는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서 “마음의 균형이 무너질 때 몸은 가끔 에러 메시지를 보내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그때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일은 어쩌면 몸을 찬찬히 이해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마음의 문제를 찾아 보듬어줄 때, 몸은 밸런스를 찾아 나간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 깊이 공감했다. 공황 증상이야말로 마음에 보내는 가장 강력한 경고이자 신호다. 나의 경우는 이것을 깨닫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나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마음이 아팠을 때 기를 쓰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었더라면 어땠을까. 분노하고 불안해할 그 시간을 상처받은 내 마음을 살피고 위로하는 데 할애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나의 공황발작은 공황장애로 이어지지 않고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책 정보 바로가기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저자: 김세경(꽃개미), 가나출판사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150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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