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지하철 플랫폼엔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왕복 세 시간이 넘는 출퇴근 거리 중 지하철에서 보내는 두 시간은 어린 시절 자주 하던 ‘뽑기’ 같았다. 엄지손톱 만한 작은 종이를 펼치면 경품도 있고 꽝도 있던 것처럼, 공황 증상이 없는 날도 있고 있는 날도 있었다. 사전 예고나 전조 증상 같은 건 없었다. 출근을 하다가 증상이 나타나면 한 번 내렸다 타는 날도 있고, 두 번 내렸다 타는 날도 있었다. 어떻게든 회사에는 갔다.
그러던 중 교육으로 또 출장이 잡혔다. 전엔 교육을 하는 날이면 기대감에 가슴이 뛰고 설레었는데, 공황장애에 걸린 후론 걱정과 두려움에 가슴이 뛰었다. 교육 장소와 집과의 거리는 363킬로미터. 출장지는 멀고 교통이 불편했다. 어김없이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서둘러 준비하고 지하철을 한 시간 탄 다음, KTX로 환승해 두 시간을 달려야 한다. KTX에서 내린 후엔 택시를 타고 한 시간가량을 버텨야 겨우 도착하는 고된 일정을 생각하자 숨이 턱 막혔다. 지하철과 KTX 그리고 택시. 어느 것 하나 쉬울 게 없는 출장을 앞두고 공황장애 환자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병가를 내고 쉬어볼까? 아니면 사표를 내고 당분간 치료에 전념하는 건 어떨까?’
안 그래도 매일 출퇴근길을 견디는 게 힘들었던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던 중 문득 회사의 어떤 선배의 일이 떠올랐다. 나와 부서는 달랐지만 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을 때 집에 두고 온 아이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말라며 직접 찾아와 위로를 건넨 분이었다. 힘든 부서를 이끌면서도 후배들을 향한 따스한 격려를 잊지 않던 분. 나는 그가 가진 리더십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좋았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어딘가 좀 이상했다. 갑작스레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했다가 곧바로 퇴사를 했다. 퇴직 의사도 가족을 통해 회사에 전달했고, 끝까지 이유를 밝히지도 않았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니 자신에게 일체 연락하지 말라는 부탁만 남았다. 회사에 있던 개인 물품을 챙겨 가지도 못할 정도로 황급히 떠나버린 그 선배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완전히 숨어버렸다. 혹시 그도 공황장애는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그 선배처럼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장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거의 매일같이 겪고 있는 출퇴근길의 공포와 시도 때도 없는 예기불안에 시달릴 일도 그리고 출장이 잡힐 때마다 이렇게 두려워하고 걱정할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쉬면서 병을 극복하는 해피엔딩에 잠깐 마음이 쏠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상사와의 일이 떠올랐다.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했을 뿐인데 마음도 다치고 공황장애라는 병까지 얻어버렸지만 나는 그에게 어떤 사과의 말도 듣지 못했다.
이런 내 상태를 그 상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된 소모품처럼 잔뜩 고장이 난 상태로 떠나는 모양새도 싫었다. 지금 회사를 그만둘 경우 이런 이유들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괴로울 것이 뻔했다. 이런 나를 위해서는 퇴사보단 ‘존버(버티기)’가 필요한 때였다. 나는 잠시 품었던 사직서를 넣어두고 내가 퇴사하는 시점을 공황장애를 극복한 후로 정했다. 전처럼 마음껏 지하철도 타고 기차도 타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때로 말이다.
그렇게 퇴사 충동에 대한 일종의 내적 갈등을 정리하고 팀장님에게 이번 출장에선 택시 대신 렌터카를 이용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택시가 더 편한데 굳이 왜 렌트를 하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너무 위험하다며 극구 말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팀에서 유일한 장롱면허였다.
그럴듯한 핑곗거리가 떠오르지 않은 나는 그냥 운전 연습이 하고 싶어 졌다며 집요하게 졸라댔고, 팀장님은 회사가 운전 연습하는 곳이냐며 짜증을 냈지만 결국은 승낙해주셨다. 나는 렌터카를 예약하고 혹시나 중간에 내릴 것을 대비해 여분의 KTX 티켓을 사비로 한 장 더 사두었다. 그렇게 공황 이후 첫 출장을 겨우겨우 해냈다.
솔직히 아프고 힘든데 그깟 회사가 뭐가 중요하냐 묻는다면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진 않는다. 일보다 회복에 매진해야 할 시점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퇴사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지금 당장 두려움을 핑계로 숨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모습을 감추어버린 그 선배처럼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영영 사라지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게 그것은 공황만큼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공황 극복을 위해 잠시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선택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 일상을 유지하며 공황을 마주하는 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다만 나처럼 회사를 그만두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다면 온 마음을 다해 그 선택을 응원하고 싶다. 어찌 됐건 극복을 결심한 우리 모두는 이미 용감한 사람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공황에 맞서 보자. 아주 사소한 것도 좋으니 일상을 포기하지 않을 당신만의 이유를 만들어보자. 분명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부디 여러분의 퇴사 사유가 지하철이 무서워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