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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May 24. 2021

정신과와 그곳의 사람들

   

   

   

    

      

      

    

정신과

유난히 큰 글씨로 쓰여진 병원 문 앞에 서니 긴장됐다.

‘결국 와버렸네. 잘한 선택이겠지? 병원에 오지 않고 치유하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그냥 자연 치유 같은 거 말이야.’

짧은 순간이지만 여러 생각이 들며 망설여졌다. 성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는 건 ‘정신’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거슬려서인 것 같았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공식적으로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점심도 포기하고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병원 문을 열었다.


병원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작은 안내데스크가 보였다. 그곳에는 간호사 한 명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전화로 예약도 받고, 진료 접수와 안내도 하고, 처방전이 나오면 약 조제까지 직접 하고 있었다. 정신과의 시스템은 일반 병원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신기했다.

바쁜 간호사를 제외하고 실내는 한없이 조용했다. 곳곳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많았는데 얼핏 세어봐도 스무 개가 넘었다. 언젠가 실내 식물이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런 의도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 외에 푹신해 보이는 소파와 1인용 윙 체어가 군데군데 놓여 있고, 조그마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이 더해져 공간 전체가 ‘긴장을 풀고 편히 계세요’라는 암묵적인 사인을 전하고 있었다. 왠지 살벌한 분위기를 상상했던 나는 덕분에 한결 편안해졌다.


먼저 간호사에게 신분 확인을 하고(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간다면 반드시 신분증을 챙겨가야 한다), 두툼한 검사지를 건네받았다. 첫 진료에 앞서 전반적인 정신 건강 상태를 검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항 수가 많아 응답에 꽤 시간이 걸렸다. 문항은 최근 3개월간 일상생활에 관한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였다. 가족관계나 성장과정처럼 나의 근본에 관한 것부터 성생활처럼 민감한 질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응답하려고 노력했고, 잠깐이었지만 답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검사지 작성에 총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검사지를 제출하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봤다. 당시 병원엔 나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 대기 중이었는데 대부분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어린 30대 초반처럼 보였다. 그들의 모습은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하나같이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고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었으며, 목에는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사원증의 로고만으로도 서로가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듯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정신과 대기실이 아니라 마치 회사 탕비실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각자 어떤 이유와 아픔으로 이곳을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책 정보 바로가기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저자: 김세경(꽃개미), 가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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