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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May 12. 2021

오늘도 공황과 함께 출근하는 당신에게

프롤로그

연말 시상식에서 한 수상자의 행동이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19년 MBC 연예대상 시상대에 오른 웹툰 작가 기안84가 산만한 태도와 적절하지 못한 멘트로 대중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그해 그는 예능 파트너인 헨리와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는데, 시상대에 오른 그는 어쩐지 산만해 보였다. 보다 못한 헨리가 자세를 바로잡아줘야 할 정도였다. 그는 수상 소감 도중 이런 말을 했다.  

  “(헨리는) 죽이고 싶을 때도 있고 너무 예쁠 때도 있고….”


논란은 바로 이 발언 때문에 일어났다.

아무리 친근 함의 표현이라고 해도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방송에서 죽이고 싶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 방 송을 보고 있던 나도 깜짝 놀라 ‘왜 저런 말을?’ 하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가 나와 같은 공황장애 환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탓에 그는 시 상식 날에 평소보다 많은 양의 약을 복용한 후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시상식 내내 그가 왜 그리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는지, 동료들은 왜 그리 그를 챙겼는지, 준비했다는 수상 소감은 왜 그리 두서없이 장황했는지 말이다.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여전히 그를 보며 웃었지만,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연예인이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게 놀랍지 않은 일이 되었다. 정찬우, 김구라, 정형돈을 비롯해 강다니엘, 현아 같은 나이 어린 아이돌 가수들도 앓고 있다는 이 병에는 연예인들이 많이 앓고 있다는 이유로 ‘연예인 병’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TV에 나와서 공황장애를 밝히고 정보를 공유하는 연예인의 모습은 그간 이런 종류의 정신질환을 숨겨야 하는 것으로 여겨온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새로운 변화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기류이며 반가운 움직임이지만, 한편으론 염려도 된다. 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치료 방법은 배제된 채 ‘연예인들이 걸리는 병’ 내지는 ‘잠시 쉬면 낫는 병’처럼 가볍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게 두렵다.


공황장애라고? 이야, 연예인이네!


처음 내가 공황장애를 밝혔을 때 들었던 주변의 반응을 아직도 기억한다. 걱정이나 위로가 아닌 장난 섞인 말에 나는 여러 번 상처를 입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 그럼 자기도 공황장애에 걸린 거냐며 웃으면서 떠들어댔다. ‘이 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그러는 거겠지. 얼마나 괴롭고 지독한지 몰라서 그러는 걸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 또한 이 병에 걸리기 전에는 그 고통을 몰랐으니 한편으론 이해하면서도 사람들의 그런 반응 때문에 힘이 들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친한 대학원 동기와 대화를 나누던 중 불쑥 그의 입에서 내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공황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 이 나를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그 말을 하곤 깜짝 놀란 그가 곧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나는 그 일로 사람들 마음속의 편견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공황장애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과 마주했던 편견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공황 장애는 치열하게 현재를 살고 있는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마음의 병이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성실하게 사는 사람도 하루아침에 공황장애 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우리 모두를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일상을 지키며 공황을 극복하는 방법과 불안한 마음을 돌보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먼저 공황장애가 어떤 병인지 환자로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담았다. 갑작스러운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여 야 하는지, 정신과 진료를 결심한 계기와 치료 과정 그리고 내가 시도한 것 중 효과적이었던 방법들을 정리했다.

치료 외에 특별히 노력한 게 하나 더 있었다. 평소 내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실감했던 나는 열심히 사느라 상처 입은 마음을 하나하나 꺼내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과 변화의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괜찮아요. 공황은 누구나 걸릴 수 있어요. 저를 보세요. 누가 저를 보고 공황장애 환자라고 생각이나 하겠어요? 정신적 결함이 있어서 혹은 당신이 잘못해서 공황장애에 걸린 게 아니니 절대로 부끄러워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세요.”

얼마 전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힘들어하는 회사 동료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2년 전 공황장애에 걸렸다는 사 실에 절망하고 울던 나는 그것을 극복했고, 놀랍게도 전에 비해 훨씬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때의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되었다. 끔찍했던 공황과 함께한 수많은 날들이 모두 지나고 난 지금,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극복하고 전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이 책이 지금 막 공황장애를 만나 절망에 빠진 이 들과 오랫동안 이 증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왔을 이들 그리고 꼭 공황장애가 아니더라도 극복해야 할 어떤 힘듦을 마주한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더는 혼자서 두려움에 떨며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이 책 이 오늘도 공황과 함께 출근하는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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