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에 쓴 일 잘하는 VC 심사역 되기라는 글이 많은 관심을 받았었습니다. 아마 제 주위에 일을 잘하고자 하는 훌륭한 분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하는데요. 오늘은 그 글에 이어 2편을 써보고자 합니다. 다만 앞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일을 잘한다는 것은 사람마다, 회사마다 다르고 시기에 따라서도 또 달라지기 때문에 이 글은 그냥 '일 잘하고자 노력하는 한 직업인의 일기' 정도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병목이 되지 않게 하기
VC 투자는 기본적으로 여러 이해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스타트업 경영진, 기존 투자자 등 주주, 이번 라운드 공동 투자자들과의 협상과 조율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FDD, LDD 등 실사를 하게 되면 또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과도 자료를 주고받으며 일해야 하죠. 외부뿐만 아니라 팀 내부에서도 관리팀과의 계약 일정 조율, 캐피탈 콜이 필요할 시 그에 대한 조율, 컴플라이언스 팀과의 협업 등 수도 없이 많은 이해관계가 하나의 딜을 구성합니다. 그 과정에서 심사역은 해당 투자를 리딩하는 담당자이기 때문에 일이 몰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럴 때면 항상 본인이 병목이 되지 않도록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를 해야 하고 시간이 늦어지면 정확한 예상 일정과 프로세스를 이해관계자들에게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여 투자를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 잘하는 심사역으로의 소양일 것입니다.
산업과 스타트업에 관한 공부
저는 요즘 AI에 대한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공부를 하기 전과 하고 난 이후, IR 미팅의 깊이가 달라짐을 확실하게 느낍니다. 공부를 하고 난 이후에 관련 스타트업과 미팅을 할 때는 해당 아이템에 대한 피상적인 질의응답이 아닌 그 안에 녹아 있는 어떤 '관점'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토론을 통해 스타트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에 대한 공부는 기본적으로 지속해야 하는 것이고, 추가로 하면 좋은 공부는 그 스타트업에 대한 공부입니다. 미팅 전 IR 자료를 미리 숙지하고, 관련 정보들을 찾아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미리 정리하고, 가장 최신의 뉴스는 무엇인지 파악하고 미팅을 진행한다면 훨씬 의미 있는 IR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은 모아서 한 번에 전달하기
스타트업 대표님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투자 검토를 진행하다 보면 빠르게 궁금한 점을 해결하고 싶은 욕심에 카톡, 전화 등으로 바로바로 물어보게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받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 온다면 시간을 관리하기 어려울뿐더러 좋은 답변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심사역은 하고자 하는 질문들을 모아서, 논리적으로 잘 정돈한 후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궁금할 때마다 연락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욱 좋은 답변을 받는 데에 유리한 전략입니다.
투자 거절 의사는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전달하기
VC 투자의 특성상 투자를 하게 되는 경우보다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투자 제안을 거절하게 될 때는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보통 초도 미팅 이후 일주일 내에, 전화와 메일로 검토 결과 및 구체적인 의견을 전달합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한 사항, 우려됐던 사항을 나누어 전달하고 우려됐던 사항이 이렇게 개선이 되면 다시 검토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의사소통하면 좋은 것은 두 가지인데 1)심사역 본인의 투자 관점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2)차후 투자 검토 기회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투자 관련 의사소통은 냉정할 만큼 정확하게
투자 의사소통은 아주 정확해야 합니다. 서로 조금 불편할 것 같아서 혹은 예외적인 사항이 생길 확률이 아주 낮아서 정확하지 않게 의사소통을 한다면 이후에 리스크는 아주 커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투심위원의 의견으로 A라는 조건이 투자의 전제 사항인 투자 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A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확률은 아주 낮고 피투자사에게 이 조건을 말하기엔 아주 불편한 상황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선결 조건인 A를 말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데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작은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려다가 딜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으니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라도 의사소통은 아주 정확해야 합니다.
머릿속 어딘가에는 항상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해 생각하기
직원이 20명인 스타트업이라면 전 세계에 그 스타트업이 진심으로 잘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20명 이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기업처럼 많은 사람이, 많은 자원을 써가며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그 스타트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특히 VC는 일종의 '경험 플랫폼'으로서 내부에 쌓여있는 네트워크와 노하우가 많습니다. 그것들을 활용해서 투자한 스타트업을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 VC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머릿속 한 구석에는 항상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작은 기회라도 빠짐없이 제공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