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의 역설

지속 가능한 책임감

by 고밀도

책임감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책임감이 뒤따르기도 하거니와 강한 책임감은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필수 불가결의 조건으로 여겨진다. 조직에서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하고 일을 하기가 좋다. 동료든지 선후배든지 책임감 있는 사람은 환영받는다. 책임감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낸다. 책임감은 성실과 성질이 비슷하지만 ‘마무리’라는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 책임감의 두드러진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가끔 지나친 책임감을 요구한다. 또 요구되는 책임감에 부응하려고 애를 쓰다가 미련한 책임감으로 일을 그르치는 일을 마주하곤 한다. 나는 그것을 책임감 역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나친 책임감으로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을 만나는 것.

나 또한 책임감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애를 쓰는 편인데, 책임감 역설에 마주하는 일이 가끔 있다.


몇 년 전, 영국 에이전시와 킥오프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 새롭게 업무를 전환하고 첫 미팅이어서 담당자로서 매끄럽게 잘 해내고 싶었다. 미팅 며칠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며칠만 버티라고 말하며 준비를 이어 나갔다.


미팅 당일 내 몸은 38도의 열을 내고 있었고, 목이 부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련하게 그 몸으로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내 몸이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다른 파트원에게 부탁하여 영국 에이전시에 상황설명을 부탁드리고 정신없이 집으로 와서 일주일 동안 병가를 내야 했다.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준비했던 미팅은 미뤄졌다. 혼자 끙끙 준비하느라 대신해줄 사람도 없었다. 지나친 책임감이 일을 그르쳤다. 적당한 책임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책임감에 대해 두 가지를 고려하면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서도 내 삶과 일에 능력을 올려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자신의 역량을 뛰어넘는 책임감을 발휘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책임감으로 일을 끝까지 완수하려고 무리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무언가를 내주어야 한다. 일을 겨우 끝마쳤지만, 감정이나 몸이 상할 수도 있다. 책임감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니면 좋겠다.


두 번째, 내가 없어도 누군가는 해낼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놔야 한다. 누군가에게 부탁하기 어렵고, 혼자 해내는 것이 책임감이라고 생각해서 버거워도 감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혼자만의 책임감은 변수에 대응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백업할 수 있도록 혼자 짊어지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문제가 없을 때는 잘 돌아가는 것 같지만, 변수가 발생했을 때는 조직에도 나에게도 되레 피해가 올 수 있다.


지나친 책임감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책임감은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한다. 책임감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밑거름이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면 끝까지 해낼 것이라는 믿음. 그런 신뢰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 아름다운 책임감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적당한 선을 지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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