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자기 몫만 해내면 된다

각자의 몫

by 고밀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소감을 말할 때 “그 친구의 몫까지 다해서 열심히 하겠다.”라는 말. 누군가의 빈자리를 위로하기 위해 “내가 그 몫까지 잘 챙겨줄게.”라는 말.


내게는 ‘누군가의 몫’이 참으로 익숙하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끝까지 아들을 보채는 할머니 앞에서 나의 닭똥 같은 반대의 눈물은 엄마 아빠의 좋은 방어막이 되었지만 나는 어느새 “아들 몫까지 해야 하는 딸”이 되었다. 취업난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을 때, 나는 따뜻한 코트 한 벌을 할머니께 안겨드리며 설명했다.


“할머니, 한국에서 가장 큰 회사에 들어갔어. 남자들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야.” 할머니는 오래전, 아들을 못 낳게 했다고 나를 꾸지람하던 것은 기억하지 못하시는 듯했지만, 나는 일종의 그 몫을 해냈다는 안도감을 얻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로도 내 몫을 넘어 누군가의 몫까지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긴 세월을 보내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말이다. 결혼하고 나서 동생은 먼 타국 땅에서 생활을 했다. 나에게는 ‘태어나지도 않는 아들 몫’과 더불어 ‘동생 몫’까지 해야 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캐나다로 향하는 동생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어른들과 통화를 할 때면, ‘네가 동생 몫까지 해야 하니 힘들겠구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동생의 몫, 1년 전 떠난 엄마의 몫까지 해내기 위해 어깨가 묵직해져 있었다.


누군가의 몫을 해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전혀 그 몫들을 잘 해내고 있지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내 몫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상태였다. 회사에서는 고 과장으로의 몫, 집에서는 엄마로서의 몫, 작가로서의 몫. 나에게 할당된 나만의 몫만 해도 나는 버거웠다. 젊은 날, 나는 그저 내 한 몸과 내 꿈만 챙기면 되어서 어쩌다 그 아들 몫까지 해낸 것처럼 보였을 뿐이고, 누군가의 몫을 대신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


내게 주어진 몫을 해내기에도 버거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저 제 몫만 잘 해내도 좋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안도해도 괜찮다. 내 안에서 끝없이 누군가의 빈자리, 누군가의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비집고 나올 때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착각하지 마. 네가 누군가를 대신하고 그 자리를 채울 수 없어.
모두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이 있을 뿐이야.
그게 인생이야.


음력설이 지나서 이제는 핑계를 댈 수 없는 2022년이 되었다. 올해는 우리 각자 자신의 몫만 잘 해내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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